"진양하씨 단지종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진양하씨와 남명학파)
(진양하씨와 남명학파)
26번째 줄: 26번째 줄:
 
=='''내용'''==
 
=='''내용'''==
 
===진양하씨와 남명학파===
 
===진양하씨와 남명학파===
진양하씨는 고려시대 이후부터 진주에 세거하며 명문가문으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하륜]]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 공을 세우고 진주정씨와 혼인하여 진주지역에서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하순경]]과 아들 [[하기룡]]대에 거주지를 옮겼다. [[하순경]]은 진주부 남쪽으로 [[하기룡]]은 진주부 북쪽의 단목리로 이주하였다. 하기룡의 후손들은 단목리를 중심으로 사회적 기반을 유지해갔다. [[하숙]]의 아들 [[하위보]], [[하진보]], [[하국보]] 대에 그 위세가 크게 확장된다. 하위보와 하국보는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하진보는 155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3형제는 모두 남명 [[조식]]의 문인이었다. 뒤를 이어 하위보의 아들 단지 [[하협]]과 그 후손들 또한 남명학파의 핵심구성원으로서 활약하였기에 17세기 이후 단목리는 진양하씨의 세거지인 동시에 남명학파의 본거지로 자리잡았다.  
+
진양하씨는 고려시대 이후부터 진주에 세거하며 명문가문으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하륜]]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 공을 세우고 진주정씨와 혼인하여 진주지역에서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하순경]]은 진주부 남쪽으로 [[하기룡]]은 진주부 북쪽의 단목리로 이주하였다. 하기룡의 후손들은 단목리를 중심으로 사회적 기반을 유지해갔다. [[하위보]], [[하진보]], [[하국보]] 대에 그 위세가 크게 확장된다. 하위보와 하국보는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하진보는 155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3형제는 모두 남명 [[조식]]의 문인이었다. 뒤를 이어 하위보의 아들 단지 [[하협]]과 그 후손들 또한 남명학파의 핵심구성원으로서 활약하였기에 17세기 이후 단목리는 진양하씨의 세거지인 동시에 남명학파의 본거지로 자리잡았다.  
 
<ref>정수환·박준호, 「晋州 晋陽河氏 丹池宗宅 所藏 典籍類의 내용과 그 성격」,
 
<ref>정수환·박준호, 「晋州 晋陽河氏 丹池宗宅 所藏 典籍類의 내용과 그 성격」,
 
  『장서각』6, 한국학중앙연구원, 2001, 211-214쪽.</ref>
 
  『장서각』6, 한국학중앙연구원, 2001, 211-214쪽.</ref>

2017년 10월 1일 (일) 02:01 판

진양하씨 단지종택
(晉州 丹牧理 澹山古宅)
기록유산 디지털 스토리텔링 자원개발 연구팀
대표명칭 진양하씨 단지종택
한자표기 晉州 丹牧理 澹山古宅
영문명칭 House of Damsan in Danmok-ri, Jinju
이칭 진양하씨 단목종택, 진주 단목리 하협종택,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유형 주택(한옥)
시대 조선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38호
소장처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746
관련인물 하협
관련유물유적 호산춘주 제조법



정의

진양하씨 단지 하협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종택이다.

내용

진양하씨와 남명학파

진양하씨는 고려시대 이후부터 진주에 세거하며 명문가문으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하륜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 공을 세우고 진주정씨와 혼인하여 진주지역에서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하순경은 진주부 남쪽으로 하기룡은 진주부 북쪽의 단목리로 이주하였다. 하기룡의 후손들은 단목리를 중심으로 사회적 기반을 유지해갔다. 하위보, 하진보, 하국보 대에 그 위세가 크게 확장된다. 하위보와 하국보는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하진보는 155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3형제는 모두 남명 조식의 문인이었다. 뒤를 이어 하위보의 아들 단지 하협과 그 후손들 또한 남명학파의 핵심구성원으로서 활약하였기에 17세기 이후 단목리는 진양하씨의 세거지인 동시에 남명학파의 본거지로 자리잡았다. [1]

단지종택의 건립과 구조

단지 하협이 분가할 때 터를 정해 지은 집이다. 당시 집터를 조성하고 땅을 고를 때 나무 위에 앉아 있던 학(鶴) 두마니라 앞산으로 날아갔다고 해서 이곳을 '해기터(학터:鶴基)'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2] 경상남도에서는 이 단지종택을 창주의 후손인 담산 (1875~1943)의 호를 따서 담산고택으로 명명하였다. 단지종택은 가운데 솟을대문이 있는 중심채영역과 좌우에 담장으로 구획된 아래채영역, 윗채영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1864년, 사랑채는 1871년에 건립되었는데, 두 건물은 하계롱(1851~1932)이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별채는 1916년에 건립되었다.[3] 그외에 광채, 행랑채, 부속사, 정암정, 문간채 등이 있고 마당에는 효자목이라는 감나무가 있다. 지방사족의 가옥 특징이 잘 나타나며 1800년대 중엽부터 1900년대 중엽까지 차례로 건물이 지어져 가옥의 형태변화를 살살펴 볼 수도 있다. [4]

진양하씨 단지종택 소장 고문헌

현재 고택 내에는 하진태의 고문서 약 5000점, 고서 약 3000책 등 많은 고문헌들이 소장되어 있다. 진양하씨 가문은 대부분 남명 조식의 문인이었다. 진양하씨 단지종택에 남아있는 많은 고문헌들에서 이들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호산춘주 제조법 진양하씨 단지종택 A는 B에 있었다 A edm:formerLocation B
진양하씨 단지종택 하협 A는 B에서 이름을 땄다 A ekc:isNamesakeOf B
진양하씨 단지종택 진양하씨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진양하씨 단지종택 하기룡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진양 하씨 하기룡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A foaf:member B
하기룡 하숙 A는 B의 후손이다 A ekc:hasDescendant B
하숙 하위보 A는 아들 B를 두었다 A ekc:hasSon B
하숙 하진보 A는 아들 B를 두었다 A ekc:hasSon B
하숙 하국보 A는 아들 B를 두었다 A ekc:hasSon B
하위보 조식 A는 B의 제자이다 A ekc:hasMaster B
하진보 조식 A는 B의 제자이다 A ekc:hasMaster B
하국보 조식 A는 B의 제자이다 A ekc:hasMaster B
하위보 하협 A는 아들 B를 두었다 A ekc:hasSon B
하계룡 하협 A는 B의 후손이다 A ekc:hasDescendant B
하계룡 하우식 A는 아들 B를 두었다 A ekc:hasSon B
진양하씨 단지종택 안채 하계룡 A는 B에 의해 건립되었다 A ekc:founder B
진양하씨 단지종택 사랑채 하계룡 A는 B에 의해 건립되었다 A ekc:founder B
진양하씨 단지종택 별채 하계룡 A는 B에 의해 건립되었다 A ekc:founder B

시간 정보

시간정보 내용
15세기 중엽 하기룡이 단목리로 이거하였다.
1864년 하계룡진양하씨 단지종택 안채를 건립하였다
1871년 하계룡진양하씨 단지종택 사랑채를 건립하였다
1916년 하계룡진양하씨 단지종택 별채를 건립하였다

공간 정보

위도 경도 내용
35.257146 128.136781 진양하씨 단지종택은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마을에 위치한다

시각자료

가상현실


가상 현실 - 전체 화면 보기

갤러리

주석

  1. 정수환·박준호, 「晋州 晋陽河氏 丹池宗宅 所藏 典籍類의 내용과 그 성격」, 『장서각』6, 한국학중앙연구원, 2001, 211-214쪽.
  2. "단지공 하협종택", 『진양하씨종사연구회』online, 진양하씨종사연구회.
  3. 경상남도,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문화재 안내판.
  4.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문화유적, 『진주시청』online, 진주시.
  5. 허창식·안승준, 「晋州 丹牧 晋陽河氏의 사회적 지위와 家傳 고문서에 대한 고찰」, 한국고문서자료관, 『한국학자료센터』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 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명가의 고문서1 선비가의 묵향 : 진양하씨 창주후손가』,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2.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집성(47)-진주 단목 진양하씨 창주후손가(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0.
    3.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문서집성(48)-진주 단목 진양하씨 창주후손가(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0.
  • 논문
    1. 김학수, 「고문서를 통해 본 진양하씨 창주가의 토족적 위상 - 사회경제적 기반을 중심으로」, 『남명학연구』25,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08.
    2. 장서각, 「晉州 晉陽河氏 滄洲後孫家所藏 典籍[文集類]의 현황과 내용」, 『장서각』3, 한국학중앙연구원, 2000.
    3. 조계영, 「문중의 고문헌 관리와 보존 - 진주 진양하씨 단지종택 사례를 중심으로」, 『고문서연구』27, 한국고문서학회, 2005.
  • 웹자원
    1. 김규형, "진주 담산 고택", 『디지털진주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