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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머리", 문화원형백과 전통머리모양과 머리치레거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콘텐츠닷컴』<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 2004. 온라인 참조: "[https://tv.naver.com/v/331077 조선시대 - 대수머리]", 문화원형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TV』<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04월 18일. | "대수머리", 문화원형백과 전통머리모양과 머리치레거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콘텐츠닷컴』<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 2004. 온라인 참조: "[https://tv.naver.com/v/331077 조선시대 - 대수머리]", 문화원형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TV』<sup>online</sup></online></html>. 최종확인: 2017년 04월 1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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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 ===인용 및 참조=== | ||
+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 ||
+ | * 高美娟, 「韓國女性의 頭飾에 관한 硏究 -朝鮮時代를 中心으로-」,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br/>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br/> | ||
− | * | + | * 金正子, 「우리나라 女性의 髮樣에 대한 硏究 - 文獻과 遺物을 中心으로-」, 『服飾』6권, 한국복식학회, 1982. |
− | + | * 柳寶英, 「우리나라 女性의 쓰개에 관한 硏究-현존 유물을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 |
+ | * 박영미, 「조선 후기 가체 유행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
+ | * 박정균, 「조선시대 여인의 가체금지령 전ㆍ후 신분별 머리 모양분석-드라마 왕과 나, 이산을 중심으로-」,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
+ | * 朴貞植, 「朝鮮時代의 女子髮樣考察-中·後期操作方法-」, 『대한가정학회지』 제21권 3호, 1983. | ||
+ | * 宋昇姬, 「가체를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 여성의 머리장식 연구 –신윤복의 풍속화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
+ | * 李映周, 「조선시대 加髢변화에 관한 연구」, 동덕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 ||
+ | * 이은주, 「19세기 조선 왕실 여성의 머리모양」, 『服飾』 58권 3호, 2008. | ||
+ | * 임영자ㆍ조미영, 「조선후기 기녀의 머리형태가 일반여성의 머리 형태에 미친 영향」, 『服飾』 54권 3호, 2004. | ||
+ | * 張暎淳, 「朝鮮時代 以來 女性의 머리 型態變遷에 關한 史的 考察」, 계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8. | ||
+ | * 최경순, 「조선조 加髢논의와 그 요인」, 『복식문화연구』 4권 1호, 1996. | ||
+ | * 崔民植, 「조선후기 내명부의 머리 양식 및 고찰」,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
===더 읽을거리=== | ===더 읽을거리=== | ||
2017년 9월 7일 (목) 01:17 판
대수 (大首) |
|
대표명칭 | 대수 |
---|---|
한자표기 | 大首 |
구분 | 수식 |
착용신분 | 황후, 황태자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
착용성별 | 여성 |
목차
정의
황후, 왕비, 황태자비, 왕세자빈, 왕세손빈이 국가의 큰 제례에 참여하거나 혼례를 올릴 때 또는 책례를 받는 등 적의를 착용할 때 쓰는 머리모양이다.[1]
내용
임진왜란, 병자호란 양란 이후 궁중의 제도를 정비하면서 적관(翟冠)을 구비할 수 없게 되자 국속에 따라 마련한 머리 장식이다.[2] 머리통 전체를 덮는 가발처럼 형태를 만들어 직접 머리에 쓰도록 한 것이다. 위가 높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넓게 퍼지는 삼각형 모양이며, 어깨까지 넓게 펼쳐진 머리의 양쪽 끝에는 봉황 비녀를 꽂아 좌우로 팽팽하게 뻗치도록 하였다. 또한 앞머리에는 떨잠과 비녀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뒤는 두 갈래로 머리를 땋아서 하나는 쪽을 지어 비녀를 꽂았고, 나머지는 새앙머리와 같이 둥글게 밑으로 말아 올려서 자색 댕기로 장식되어 있다.[3] 현존하는 유물로 유일하게 영친왕비의 대수가 있다. 사진자료로는 순정효황후와 영친왕비가 적의에, 의왕비가 대례복으로 착용한 원삼에 대수를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
왕비 | 대수 | A는 B를 착용하였다 |
왕세자빈 | 대수 | A는 B를 착용하였다 |
왕세손빈 | 대수 | A는 B를 착용하였다 |
대수 | 적의 | A는 B에 착용하였다 |
왕비의 대례복 | 대수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왕세자빈의 대례복 | 대수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대수 | 의궤 |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친왕비의 적의 착용 사진.[4]
영상
"대수머리", 문화원형백과 전통머리모양과 머리치레거리,
갤러리
영상
주석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00쪽.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235쪽.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235~236쪽.
- ↑ 국립민속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민속박물관, 2013, 100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 高美娟, 「韓國女性의 頭飾에 관한 硏究 -朝鮮時代를 中心으로-」,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金正子, 「우리나라 女性의 髮樣에 대한 硏究 - 文獻과 遺物을 中心으로-」, 『服飾』6권, 한국복식학회, 1982.
- 柳寶英, 「우리나라 女性의 쓰개에 관한 硏究-현존 유물을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 박영미, 「조선 후기 가체 유행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박정균, 「조선시대 여인의 가체금지령 전ㆍ후 신분별 머리 모양분석-드라마 왕과 나, 이산을 중심으로-」,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朴貞植, 「朝鮮時代의 女子髮樣考察-中·後期操作方法-」, 『대한가정학회지』 제21권 3호, 1983.
- 宋昇姬, 「가체를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 여성의 머리장식 연구 –신윤복의 풍속화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李映周, 「조선시대 加髢변화에 관한 연구」, 동덕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 이은주, 「19세기 조선 왕실 여성의 머리모양」, 『服飾』 58권 3호, 2008.
- 임영자ㆍ조미영, 「조선후기 기녀의 머리형태가 일반여성의 머리 형태에 미친 영향」, 『服飾』 54권 3호, 2004.
- 張暎淳, 「朝鮮時代 以來 女性의 머리 型態變遷에 關한 史的 考察」, 계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8.
- 최경순, 「조선조 加髢논의와 그 요인」, 『복식문화연구』 4권 1호, 1996.
- 崔民植, 「조선후기 내명부의 머리 양식 및 고찰」,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