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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신라 30대 왕 [[신라 문무왕|문무왕(文武王, ?-681)]]의 [[표준영정]]으로, 1976년 [[김기창|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 1913-2001)]]이 그렸다. 1977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으며, 1977년 [[경주 통일전]]에 봉안된 이후 [[경주 통일전]]에 지금까지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신라 30대 왕 [[신라 문무왕|문무왕(文武王, ?-681)]]의 [[표준영정]]으로, 1976년 [[김기창|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 1913-2001)]]이 그렸다. 1977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으며, 1977년 [[경주 통일전]]에 봉안된 이후 [[경주 통일전]]에 지금까지 소장되어 있다.
  
관복차림의 이 인물상은 직접 보고 그린 것은 아니지만 얼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옷은 간략하게 담채(淡彩)만 곁들여 그린 전통 초상화이다. 말총이 촘촘히 보이는 방건, 포실포실한 수염과 이마의 주름살까지 놓치지 않는 세밀함은 그가 초기에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의 문하에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굳건해 보이는 얼굴 표정과 두 눈은 의병장으로서의 기개를 보여주고 있다. 얼굴의 윤곽선과 눈 주위, 코선을 붉은 선으로 둘러놓은 것도 전통적인 초상화 기법이다.<ref>"[https://www.mmca.go.kr/collections/collectionsDetail.do?menuId=2010000000&wrkMngNo=KO-00324 조헌 영정]", <html><online style="color:purple">『소장품』<sup>online</sup></online></html>, 국립현대미술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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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표준영정 제작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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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표준영정]]의 제작 배경은 사적지 정화 작업과 관련이 있다. 사적지 정화 작업은 [[박정희]] 정권이 1970년대부터 전통문화유산인 사적에 대한 ‘종합적, 근본적인 보수 복원을 통한 적극적인 정화를 통해 발전’시키고자 한 문화재 정책이었다. 선현들의 사적지 정화 작업에는 사당 내에 봉안되는 선현의 초상 화가 [[표준영정]]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예로는 <[[강감찬 표준영정|강감찬 영정]]>, <[[김유신 표준영정|김유신 영정]]>, <[[무열왕 표준영정|무열왕 영정]]>, <[[문무왕 표준영정|문무왕 영정]]>, <[[유관순 표준영정|유관순 영정]]>, <[[윤봉길 표준영정|윤봉길 영정]]> 등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제작배경에 있어 ‘사적지 정화사업’ 이라는 국가시책으로 제작된 만큼 당시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ref>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한국근현대미술사전공 석사학위 논문, 2015, 103-10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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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표준영정 제작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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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표준영정]]의 제작 기간은 다른 [[표준영정]]에 비해 제작기간이 짧다. 당시 표준으로 지정된 영정의 평균제작기간이 5-6개월 정도였다면, 이들 영정은 50-60일 정도의 단기간에 제작되었다. [[경주 통일전]]에 봉안된 무열왕·문무왕 영정은 [[김기창]]에 의해 영정이 제작되었고, 제작기간은 4개월(1976.9.1.-1976. 12.31)이다. 그러나 작가 혼자서 2개의 영정을 제작해야 했으므로 작품 1점을 기준으로 하면 60일로 그리 길지 않다.<Ref>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한국근현대미술사전공 석사학위 논문, 2015, 104-105쪽.</ref>
  
 
=='''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2017년 9월 2일 (토) 22:57 판

문무왕 표준영정
한자명칭 文武王 標準影幀
작가 김기창
제작시기 1977년
지정연도 1977년
소장처 칠백의총관리소
유형 표준영정
재질 비단에 채색(영정화)
크기(세로×가로) 181×121㎝


정의

신라 30대 왕 문무왕(文武王, ?-681)의 모습을 그린 표준영정.

내용

이 작품은 신라 30대 왕 문무왕(文武王, ?-681)표준영정으로, 1976년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 1913-2001)이 그렸다. 1977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으며, 1977년 경주 통일전에 봉안된 이후 경주 통일전에 지금까지 소장되어 있다.

문무왕 표준영정 제작 배경

문무왕 표준영정의 제작 배경은 사적지 정화 작업과 관련이 있다. 사적지 정화 작업은 박정희 정권이 1970년대부터 전통문화유산인 사적에 대한 ‘종합적, 근본적인 보수 복원을 통한 적극적인 정화를 통해 발전’시키고자 한 문화재 정책이었다. 선현들의 사적지 정화 작업에는 사당 내에 봉안되는 선현의 초상 화가 표준영정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예로는 <강감찬 영정>, <김유신 영정>, <무열왕 영정>, <문무왕 영정>, <유관순 영정>, <윤봉길 영정> 등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제작배경에 있어 ‘사적지 정화사업’ 이라는 국가시책으로 제작된 만큼 당시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1]

문무왕 표준영정 제작 과정

문무왕 표준영정의 제작 기간은 다른 표준영정에 비해 제작기간이 짧다. 당시 표준으로 지정된 영정의 평균제작기간이 5-6개월 정도였다면, 이들 영정은 50-60일 정도의 단기간에 제작되었다. 경주 통일전에 봉안된 무열왕·문무왕 영정은 김기창에 의해 영정이 제작되었고, 제작기간은 4개월(1976.9.1.-1976. 12.31)이다. 그러나 작가 혼자서 2개의 영정을 제작해야 했으므로 작품 1점을 기준으로 하면 60일로 그리 길지 않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문무왕 표준영정 표준영정 A는 B에 해당한다
문무왕 표준영정 조헌 A는 B를 묘사하였다
문무왕 표준영정 경주 통일전 A는 B에 있다
김기창 문무왕 표준영정 A는 B를 그렸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76년 김기창문무왕 표준영정을 그렸다.
1977년 문무왕 표준영정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1977년 문무왕 표준영정경주 통일전에 봉안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5.798318 129.240159 문무왕 표준영정경주 통일전에 소장되어 있다.

주석

  1. 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한국근현대미술사전공 석사학위 논문, 2015, 103-104쪽.
  2. 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한국근현대미술사전공 석사학위 논문, 2015, 104-105쪽.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더 읽을거리

  • "조헌 영정", 『소장품』online, 국립현대미술관.
  • "조헌", 『한민족정보마당』online, 한국문화정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