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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일 (토) 00:07 판
왕비의 대례복 (王妃의 大禮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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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왕비의 대례복 |
---|---|
한자표기 | 王妃의 大禮服 |
이칭별칭 | 적의(翟衣) |
분류 | 예복 |
착용신분 | 왕비 |
착용성별 | 여성 |
목차
정의
국가의 큰 제례를 올리거나 혼례를 올릴 때 또는 책봉을 받을 때 착용하는 예복이다.[1] 조선시대 적의 제도는 명에서 사여받은 것으로 대홍색 대삼에 수원적을 붙인 적의이며 대한제국시대의 적의 제도는 『대명회전』에 근거하여 새로 마련한 심청색 적의이다.[2] 적의는 꿩무늬[翟紋]가 직조된 직물로 만든 옷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3] 대한제국시대의 적의 제도는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꿩무늬 줄수에 차등을 두었으며 왕비는 황태자비와 같은 9등(等)이다.
복식구성
조선시대[4]
-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1638년): 체발(髢髮), 대삼(大衫), 배자(褙子), 단삼(單衫), 오(襖), 군(裙), 하피(霞帔), 옥대(玉帶), 후수(後綬), 패옥(佩玉), 대대(大帶), 적석(赤舃), 적말(赤襪), 규(圭)
- 『상방정례』(1750~1751년): 면사(面紗), 적의(翟衣), 별의(別衣), 내의(內衣), 후수(後綬), 폐슬(蔽膝), 상(裳), 대대(大帶), 패옥(佩玉), 하피(霞帔), 적석(赤舃), 적말(赤襪), 규(圭)
- 임진왜란 이전 왕비의 대례복인 적의에 쓰는 관은 적관(翟冠)이다.
대한제국시대
대수(大首), 적의(翟衣), 전행웃치마, 중단(中單), 대대(왕실여성)|대대(大帶), 옥대(玉帶), 폐슬(蔽膝), 패옥(佩玉), 후수(後綬), 하피(霞帔), 청석(靑舃), 청말(靑襪), 규(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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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00쪽.
- ↑ 이민주,『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105쪽.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00쪽.
- ↑ 이민주,『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104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아름다운 시작』,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