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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경주에서 출발하였고, 두 사람은 몇날 며칠을 걸어 충청남도 직산 지방에 이르렀는데, 밖이 어두워지자 동굴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ref>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7617&cid=47306&categoryId=47306 원효]", 어린이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원효가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한 그릇 마셨는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 속의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깨닫기를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마음이 죽으면 곧 해골이나 다름이 없도다(심생칙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심멸칙촉루부이(心滅則髑髏不二)).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 뿐이라 한 것을 어찌 잊었더냐"하고 바로 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ref>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83385&cid=43671&categoryId=43671 원효]", 인명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공부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경주에서 출발하였고, 두 사람은 몇날 며칠을 걸어 충청남도 직산 지방에 이르렀는데, 밖이 어두워지자 동굴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ref>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7617&cid=47306&categoryId=47306 원효]", 어린이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원효가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한 그릇 마셨는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 속의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깨닫기를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마음이 죽으면 곧 해골이나 다름이 없도다(심생칙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심멸칙촉루부이(心滅則髑髏不二)).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 뿐이라 한 것을 어찌 잊었더냐"하고 바로 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ref>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83385&cid=43671&categoryId=43671 원효]", 인명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원효는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깨달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책쓰기에 몰두했다. 그는 일생 동안 150여 권의 책을 세상에 남겼는데, 그중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십문화쟁론》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ref>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7617&cid=47306&categoryId=47306 원효]", 어린이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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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깨달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책쓰기에 몰두했다. 그는 일생 동안 150여 권의 책을 세상에 남겼는데, 그중 『[[대승기신론|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금강삼매경론|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십문화쟁론|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ref>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7617&cid=47306&categoryId=47306 원효]", 어린이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대중화====
요석 공주와 결혼해 아들 설총을 얻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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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요석공주]]와 [[설총]]을 낳은 후, 원효는 스스로 승려의 계율을 어겼다고 생각하여 승려복을 벗고 자신을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하며 광대들이 가지고 노는 큰 박을 본떠서 바가지를 만들어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신라 땅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불교를 전했다.<ref>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7617&cid=47306&categoryId=47306 원효]", 어린이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원효의 삶은 파격2) 그 자체였어. 원효의 연구와 저술 활동을 지원해 준 사람은 요석 공주로 알려져 있어. 요석 공주는 태종 무열왕의 둘째 딸로 과부였는데,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터서 요석 공주는 원효의 아이를 가지고 말았어. 그 아이가 커서 신라의 대학자가 된 ‘설총’이야.
 
  
설총은 학문이 뛰어나 많은 유교 서적을 번역하고, 학교를 세웠어. 또 이두라는 글자를 정리해 통일 신라의 문화를 다듬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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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가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술집이나 기생집에도 드나들었고, 혹은 쇠칼과 쇠망치를 가지고 다니며 돌에 글을 새기기도 하고, 가야금과 악기를 들고 사당에 가서 음악을 즐기기도 하는 등 세상에 거리낌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는데, 이러한 삶을 살면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그럼으로써 백성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 백성들과 함께 하려고 했고, 그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부처님께로 돌아간다)’만 외우면 누구나 극락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다고 설교하며 불교를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확산시켜 나갔다.<ref>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7617&cid=47306&categoryId=47306 원효]", 어린이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나무아미타불’만 외워도 불교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설총을 낳은 후, 원효는 스스로 계율3)을 어겼다고 하여 승려복을 벗고 자신을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했어. 그리고는 광대들이 가지고 노는 큰 박을 본떠서 바가지를 만들어 무애가를 부르며 신라 땅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불교를 전하러 다녔어.
 
 
 
원효는 가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술집이나 기생집에도 드나들었고, 혹은 쇠칼과 쇠망치를 가지고 다니며 돌에 글을 새기기도 하고, 가야금과 악기를 들고 사당에 가서 음악을 즐기기도 하는 등 세상에 거리낌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어. 이러한 삶을 살면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 같아.
 
 
 
그럼으로써 백성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 백성들과 함께 하려고 했어. 그는 ‘나무아미타불(부처님께로 돌아간다)’만 외우면 누구나 극락4)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다고 설교하며 불교를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확산시켜 나갔어.
 
 
 
그래서 오두막집의 더벅머리 아이들까지도 모두 부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 같은 염불 한마디는 할 줄 알게 되었어. 이 모두 원효의 노력 덕이었지.
 
  
 
=='''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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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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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66054&cid=49242&categoryId=49242 원효대사]", 문화원형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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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83385&cid=43671&categoryId=43671 원효]", 인명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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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7617&cid=47306&categoryId=47306 원효]", 어린이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분류:인물]]
 
[[분류:인물]]

2017년 8월 23일 (수) 17:53 판

원효(元曉)
대표명칭 원효
한자표기 元曉
영문명칭 Wonhyo
생몰년 617년-686년
이칭 서당(誓幢), 신당(新幢)
시호 원효(元曉)
화정(和淨)
출생지 경상북도 경산
시대 신라시대
국적 신라
대표저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배우자 요석공주(瑤石公主)
담날(談捺)
자녀 설총(薛聰)



정의

신라시대의 승려.

내용

개요

성은 설(薛)씨, 시호 및 법명은 원효(元曉), 호는 화정(和淨)이며, 아명은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이다.[1] 경상북도 경산 출신이다.

담날(談捺)의 아들인 원효는 655년에서 660년 즈음에 요석공주(瑤石公主)의 사이에서 설총(薛聰)을 낳았다.[2]

업적

원효의 깨달음

661년,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마저 점령하기 위해 한창 통일전쟁을 치르고 있던 시기에 신라의 승려 원효와 의상(義湘)은 선진불교를 배우기 위해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3]

공부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경주에서 출발하였고, 두 사람은 몇날 며칠을 걸어 충청남도 직산 지방에 이르렀는데, 밖이 어두워지자 동굴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4] 원효가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한 그릇 마셨는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 속의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깨닫기를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마음이 죽으면 곧 해골이나 다름이 없도다(심생칙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심멸칙촉루부이(心滅則髑髏不二)).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 뿐이라 한 것을 어찌 잊었더냐"하고 바로 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5]

원효는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깨달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책쓰기에 몰두했다. 그는 일생 동안 150여 권의 책을 세상에 남겼는데, 그중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6]

불교의 대중화

원효는 요석공주설총을 낳은 후, 원효는 스스로 승려의 계율을 어겼다고 생각하여 승려복을 벗고 자신을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하며 광대들이 가지고 노는 큰 박을 본떠서 바가지를 만들어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신라 땅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불교를 전했다.[7]

원효는 가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술집이나 기생집에도 드나들었고, 혹은 쇠칼과 쇠망치를 가지고 다니며 돌에 글을 새기기도 하고, 가야금과 악기를 들고 사당에 가서 음악을 즐기기도 하는 등 세상에 거리낌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는데, 이러한 삶을 살면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그럼으로써 백성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 백성들과 함께 하려고 했고, 그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부처님께로 돌아간다)’만 외우면 누구나 극락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다고 설교하며 불교를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확산시켜 나갔다.[8]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담날 원효 A는 B의 아버지이다
원효 설총 A의 아들은 B이다
원효 요석공주 A의 아내는 B이다
원효 의상 A는 B와 관련이 있다
대승기신론 원효 A는 B가 저술하였다
금강삼매경론 원효 A는 B가 저술하였다
십문화쟁론 원효 A는 B가 저술하였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시각자료

영상

주석

  1. "원효대사", 문화원형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2. "원효대사", 문화원형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3. 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원효", 어린이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4. 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원효", 어린이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5.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원효", 인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6. 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원효", 어린이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7. 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원효", 어린이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8. 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원효", 어린이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

  • "원효대사", 문화원형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원효", 인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공미라, 『한국사 개념사전』,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0. 온라인 참조: "원효", 어린이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