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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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2일 (화) 16:40 판
낙서재 (樂書齋) |
|
대표명칭 | 낙서재 |
---|---|
한자표기 | 樂書齋 |
유형 | 유적 |
시대 | 조선 |
지정번호 | 미지정 |
정의
낙서재는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병풍바위 아래 위치한 유적지이다.
내용
낙선재는 고산 윤선도가 거처하던 곳이다. 윤선도는 해남에서 병자호란으로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산이 깊고 물이 맑아 아름다운 섬인 보길도(甫吉島)에 은거하고 정착한 그 일대를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였다. [1]
이후 부용조의 격자봉(格紫峯)에 올라가서 주산(主山)의 형국(形局)을 파악하고 그 혈맥(穴脈)이 세차례나 꺽여 내려오는곳에 소은병(小隱屛)병풍바위 아래 낙서재터를 잡았다. 풍수지리에 밝은 고산이 격자봉의 혈맥을 찾아 吉地에 낙서재 터를 잡은 것이다. 낙서재란 독서를 즐기며 학문하는 선비의 삶을 상징한다. 주로 이곳에서 많은 책을 쌓아두고 독서하며 자제들을 가르쳤다 한다. 부용동원림(芙蓉洞圓林)중에서도 낙서재 지역을 추천 주거공간(住居空間)으로 삼았다 한다.
외관
낙서재의 형국 요처가 되는곳은 소은병과 귀암(龜岩) 그리고 뒤에 자리잡고 있는 격자봉이다. 소은병은 낙서재터의 뒤에있는 2.5m 높이의 병풍바위이다. 소은(小隱)은 세속을 싫어하여 은둔해 있다는 뜻이며 은병청풍(隱屛淸風)이라는 부용동팔경이 있다. 또 낙서재 앞뜰에 있었다는 바위가 귀암이다. 2.8m의 거북바위라고도 한다. 고산은 4령(봉황 기린 용 거북)이라고 하고 저녁이면 귀암에 앉아 보름달을 즐겼다고 한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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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 낙서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