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재
낙서재 (樂書齋) |
|
대표명칭 | 낙서재 |
---|---|
한자표기 | 樂書齋 |
유형 | 유적 |
시대 | 조선 |
지정번호 | 미지정 |
관련인물 | 윤선도 |
관련유물유적 | 고산유고 |
|
정의
낙서재는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병풍바위 아래 위치한 유적지이다.
내용
낙서재는 고산(孤山) 고산 윤선도가 거처하던 곳이다. 윤선도는 해남에서 병자호란으로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산이 깊고 물이 맑아 아름다운 섬인 보길도(甫吉島)에 은거하고 정착한 그 일대를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였다. [1]
이후 보길도의 격자봉(格紫峯)에 올라가서 주산(主山)의 형국(形局)을 파악하고 그 혈맥(穴脈)이 세 차례나 꺽여 내려오는 곳에 소은병(小隱屛)바위 아래 낙서재 터를 잡았다. 풍수지리에 밝은 고산이 격자봉의 혈맥을 찾아 길지(吉地)에 낙서재 터를 잡은 것이다. 낙서재란 독서를 즐기며 학문하는 선비의 삶을 상징한다. 윤선도는 이곳에서 많은 책을 쌓아두고 독서하며 자제들을 가르쳤으며 부용동원림(芙蓉洞圓林)중에서도 낙서재 지역을 추천 주거공간(住居空間)으로 삼았다. 윤선도가 『고산유고』를 저술한 것도 이 곳이다..[2] 또한 윤선도는 이곳에서 「어부사시사」 또한 이곳에서 쓰여졌다.
외관
낙서재의 형국 요처가 되는곳은 소은병과 귀암(龜岩) 그리고 뒤에 자리잡고 있는 격자봉이다. 소은병은 낙서재터의 뒤에있는 2.5m 높이의 병풍바위로. 소은(小隱)은 세속을 싫어하여 은둔해 있다는 뜻이다. 낙서재의 소은병에 부는 소슬바람을 은병청풍(隱屛淸風)이라는 부용동팔경에 꼽았다. 또 낙서재 앞뜰에 있었다는 바위가 귀암이다. 2.8m의 거북바위라고도 한다. 윤선도는 이 바위를 『고산유고』 귀암 시편에 나오는 4령(봉황 기린 용 거북)중에 하나로 꼽으면 저녁이면 귀암에 앉아 보름달을 즐겼다고 한다.[3]
지식 관계망
- 조선중기의 대표적 문인들과 한글시가에 관한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낙서재 | 윤선도 | A는 B에 의해 건립되었다 | A ekc:founder B |
낙서재 | 고산유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해남윤씨 녹우당 | 낙서재 | A는 B와 인접해 있다 | A ekc:isNear B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김학성, "윤선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낙서재",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통건축,
『문화콘텐츠닷컴 』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2002. 온라인 참조: "낙서재", 문화원형백과,『네이버지식백과』online . - ↑ "낙서재",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통건축,
『문화콘텐츠닷컴 』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2002. 온라인 참조: "낙서재", 문화원형백과,『네이버지식백과』online .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 김종화, "孤山 윤선도, 그가 사랑한 섬 '보길도'", 『경인일보』, 작성일: 2011년 07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