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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帳殿, 왕의 자리) 앞뜰에 지위에 따라 북향하여 설치하는데, 동쪽이 윗자리이다. 활쏘는 자리를 계단 아래 동쪽과 서쪽에 설치해 서로 마주보게 하는데, 북쪽이 윗자리이다. [[영조]]는 [[왕의 상복]]을 입고 악차를 나서 어좌에 앉는다. 2품 이상은 서쪽 계단으로 올라 조금 서쪽으로 동향하여 서는데 북쪽이 윗자리이다. [[백관]]이 자리에 위치하면 무과시험이 시작된다. 무과에 응시한 [[학생]]들은 활과 화살을 잡고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기다렸다 활을 쏘았다. 무과시험이 끝나면 [[영조]]는 어좌에서 내려와 악차로 돌아간다.<ref>『大射禮儀軌』 「儀註帙」</ref> 이날 무과시험에서는 60명을 뽑았다.<ref>『영조실록』 권57, 영조 19년 윤4월 7일, ‘새벽에 작헌례를 거행하고, 대사례를 거행하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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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帳殿, 왕의 자리) 앞뜰에 지위에 따라 북향하여 설치하는데, 동쪽이 윗자리이다. 활쏘는 자리를 계단 아래 동쪽과 서쪽에 설치해 서로 마주보게 하는데, 북쪽이 윗자리이다. [[영조]]는 [[왕의 상복]]을 입고 악차를 나서 어좌에 앉는다. 2품 이상은 서쪽 계단으로 올라 조금 서쪽으로 동향하여 서는데 북쪽이 윗자리이다. [[백관]]이 자리에 위치하면 무과시험이 시작된다. 무과에 응시한 [[학생]]들은 활과 화살을 잡고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기다렸다 활을 쏘았다. 무과시험이 끝나면 [[영조]]는 어좌에서 내려와 악차로 돌아간다.<ref>『大射禮儀軌』 「儀註帙」</ref> 이날 무과시험에서는 60명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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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0일 (일) 21:16 판

무과시취의
(武科試取儀)
대표명칭 무과시취의
한자표기 武科試取儀
이칭 무과시험
유형 의례
관련개념 군례(대사례)



정의

대사례의성균관 하연대에서 치러진 무과시험이다.[1]

내용

장전(帳殿, 왕의 자리) 앞뜰에 지위에 따라 북향하여 설치하는데, 동쪽이 윗자리이다. 활쏘는 자리를 계단 아래 동쪽과 서쪽에 설치해 서로 마주보게 하는데, 북쪽이 윗자리이다. 영조왕의 상복을 입고 악차를 나서 어좌에 앉는다. 2품 이상은 서쪽 계단으로 올라 조금 서쪽으로 동향하여 서는데 북쪽이 윗자리이다. 백관이 자리에 위치하면 무과시험이 시작된다. 무과에 응시한 학생들은 활과 화살을 잡고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기다렸다 활을 쏘았다. 무과시험이 끝나면 영조는 어좌에서 내려와 악차로 돌아간다.[2] 이날 무과시험에서는 60명을 뽑았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영조 무과시취의 A는 B에 참석하였다
무과시취의 A는 B를 거행한다
백관 무과시취의 A는 B에 참여한다
학생 무과시취의 A는 B에 참여한다
무과시취의 대사례 A는 B의 부분이다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大射禮儀軌』 「儀註帙」
  2. 『大射禮儀軌』 「儀註帙」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國朝五禮儀』
  • 대사례의궤
  • 『世宗實錄五禮儀』
  •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시대 대사례와 향사례』, 국립민속박물관, 2009.
  • 신병주, 「영조대 대사례의 실시와 『대사례의궤』」, 『한국학보』 28권 1호, 일지사(한국학보), 2002.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