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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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7일 (목) 10:16 판

나옹(懶翁)
BHST Monk1.png
대표명칭 나옹
한자 懶翁
생몰년 1320년(충숙왕 7)-1376년(우왕 2)
시호 선각(禪覺)
나옹(懶翁), 강월헌(江月軒)
성씨 김씨
본관 경주(慶州)
속명 아원혜(牙元惠)
출신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승탑 양주 회암사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승탑비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정의

고려시대의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선각왕사 나옹은 1320년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寧海)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아씨(牙氏)이고 이름은 원혜(元惠)이다. 아버지는 아서구(牙瑞俱)로 벼슬은 선관령(膳官令)을 지냈다. 어머니는 정씨(鄭氏)이고, 금색(金色)새가 오색(五色)이 찬란한 알을 떨어뜨려 가슴으로 들어오는 태몽(胎夢)을 꾸고 나옹을 낳았다고 한다.

Quote-left.png 휘는 혜근(惠勤)이고 호는 나옹(懶翁)이며 처음 이름은 원혜(元惠)였다. 세수는 57년을 살았고 법랍은 38하였다. 고향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寧海)이며, 속성은 아씨(牙氏)이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瑞俱)이니 벼슬은 선관령(膳官令)을 지냈다. 어머니는 정씨(鄭氏)이니 영산군(靈山郡) 사람이다. 어머니 정씨가 꿈에 금색(金色) 새가 날아와 그의 머리를 쪼다가 오색(五色)이 찬란한 알을 떨어뜨려 가슴으로 들어오는 태몽(胎夢)을 꾸고, 임신하여 연우(延祐) 경신년(庚申年, 1320) 1월 15일에 탄생하였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양주 회암사 선각왕사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고려편4,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7, 361-362쪽.


출가수행

나옹은 20세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으나, 모두들 모른다 하였다. 이에 매우 슬픔 심정으로 공덕산 묘적암(지금의 문경 대승사)의 요연선사(了然禪師)에게 출가하였다고 한다. 요연선사는 당시 사굴산문 출신으로 깨닫지 못하여 혜근을 지도할 수 없었다.[1]

Quote-left.png 나이 겨우 20살 때이웃에 사는 친한 벗이 사망하므로, 슬픔에 잠겨 부로(父老)들에게 묻기를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하니, 모두 말하되 “어느 곳으로 가는지 알 수 없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답답하여 슬픔만 더하였다. 그리하여 그 길로 공덕산(功德山) 대승사(大乘寺) 묘적암(妙寂庵)으로 달려가 요연선사(了然禪師)에게 몸을 던져 삭발하고 사미계를 받았다. 요연선사가 이르되 “너는 무슨 목적으로 출가(出家)하였는가”라 하니, 대답하기를 “삼계(三界)를 초월하여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고, 중생을 이익(利益)케 하고자 함입니다”라 하고 또 스님의 지도를 청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네가 여기에 온 정체가 무슨 물건인가”라 하니, 대답하기를 “능히 말하고 능히 듣고 능히 여기까지 찾아온 바로 그 놈입니다. 다만 닦아 나아갈 방법을 알지 못하나이다”라 하였다. 요연(了然)스님이 말씀하되 “나도 너와 같아서 아직 알지 못하니, 다른 명안종사(明眼宗師)를 찾아가서 묻고 배우라”고 하였다.

지정(至正) 갑신년(甲申年, 1344)에 회암사로 가서 주야로 홀로 앉아 정진하다가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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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지관, "양주 회암사 선각왕사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고려편4,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7, 362-363쪽.


구법유학

Quote-left.png 이로 말미암아 중국에 가서 선지식을 참방(參訪)하고 유학할 뜻을 굳히고, 출국하여 무자년(戊子年)3월 연도(燕都)에 도착하여 지공(指空)스님을 참방하고 법(法)을 물었는데 서로간의 문답이 계합(契合)하였다. 10년 경인(庚寅) 정월(正月)에 지공스님이 대중을 모아놓고 법어(法語)를 내리니 아무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으나, 혜근(惠勤)이 대중 앞에 나와서 몇 마디의 소견(所見)을 토출(吐出)한 다음, 삼배(三拜)하고 물러나왔다. 지공은 서천(西天)의 백팔대(百八代) 조사(祖師)이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양주 회암사 선각왕사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고려편4,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7, 361-362쪽.



Quote-left.png 그 해 봄에는 남쪽으로 강절(江浙) 지방을 두루 순례하고 8월에는 평산처림(平山處林)을 친견하였더니, 평산(平山)이 묻기를 “나에게 오기 전에 누구를 친견하였는가”라 하니, 대답하되 “서천의 지공스님을 만나 뵈었는데 일용천검(日用千劒)하라 하더이다”라 하였다. 평산이 이르기를 “지공천검(指空千劒)은 그만두고 너의 일검(一劒)을 한 번 보여 보아라”고 하였다. 혜근이 좌구(坐具)로 평산을 덮여 씌워 끌어 당겼다. 평산은 선상(禪床)에 거꾸러져서 “도적이 나를 죽인다”라고 고함을 질렀다. 혜근이 이르되 “나의 이 칼은 능히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또한 능히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라고 하면서 평산을 붙들어 일으켰다. 이 때 평산은 설암(雪嵒)이 전수(傳授)한 급암종신(及庵宗信)의 법의(法衣)와 불자(拂子)를 신물(信物)로 주었다. Quote-right.png
출처: 이지관, "양주 회암사 선각왕사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고려편4,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7, 361-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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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병신년(丙申年) 10월 15일 지공(指空)으로부터 수법(受法)한 기념법회(紀念法會)를 가졌는데, 순제는 원사(院使)를 보내어 축하하였고, 야선첩목아(也先帖木兒)는 금란가사(金襴袈裟)와 폐백(幣帛)을 하사하였으며, 황태자(皇太子)도 금란가사와 상아불자(象牙拂子)를 가지고 와서 선사하였다. 혜근스님이 가사 등의 선물을 받고 대중에게 묻기를 “담연공적(湛然空寂)하여 본래부터 일물(一物)도 없는 것이다. 이 가사의 휘황하고 찬란함이여! 이것이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하니, 이에 대하여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스님께서 천천히 말씀하시기를 “구중궁(九重宮) 금구중(金口中)에서 나왔느니라” 하고, 곧 가사를 입고 염향(拈香)하고 성복(聖福)을 축원한 다음 법상(法床)에 올라 앉아 주장자(柱杖子)를 가로 잡고 몇 말씀 하고 곧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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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지관, "양주 회암사 선각왕사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고려편4,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7, 361-362쪽.


활동

입적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나옹 A는 B를 위한 비이다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양주 회암사지 A는 B에 있다
양주 회암사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나옹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1381년
양주 회암사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양주 회암사지 A는 B에 있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나옹 A는 B를 위한 비이다 1379년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여주 신륵사 A는 B에 있다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나옹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1379년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여주 신륵사 A는 B에 있다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나옹 A는 B를 위한 승탑이다 1388년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원주 영전사 A는 B에 있었다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국립중앙박물관 A는 B에 있다
나옹 개성 광명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1370년
나옹 양주 회암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1344년, 1370년
나옹 순천 송광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1371년
나옹 여주 신륵사 A는 B에서 수행하였다 1372년
나옹 문경 대승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1339년
나옹 벽성 신광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1361년
나옹 춘천 청평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1367년
지공 나옹 A는 B의 스승이다
나옹 원 순제 A는 B와 관련있다
나옹 요연 A는 B의 스승이다
나옹화상어록 나옹 A는 B와 관련있다
나옹화상가송 나옹 A는 B와 관련있다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김방룡, 「나옹혜근의 원나라 유학과 귀국 후 활동」, 『회암사지박물관 연구총서Ⅳ - 회암사와 불교사』, 2016,142쪽

참고문헌

  • 강호선, 『高麗末 懶翁慧勤 硏究』, 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 김효탄, 『고려말 나옹의 선사상연구』, 민족사, 1999.
  • 염중섭, 『懶翁의 禪思想 硏究 : 指空의 영향과 功夫選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 이철헌, 『懶翁 惠勤의 硏究』, 동국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7.
  • 황인규, 「나옹혜근의 불교계 행적과 유물·유적」,『대각사상』11, 대각사상연구원,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