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총통"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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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김지|김지(金墀)]]가 발명한 개인용 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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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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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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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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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성,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7577 승자총통],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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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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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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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한국 전통무기 조사(-도검․화포류-)』, 경희정보인쇄㈜, 2003.

2017년 7월 24일 (월) 19:49 판

틀:물품유물


정의

조선 중기 김지(金墀)가 발명한 개인용 화기

내용

1575년에서 1578년까지 김지가 만든 개인용 화기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개인이 직접 화약을 장전하고 들고 쏠 수 있다. 개인용 용도와 별도로 화차위에 설치 될 수 있는데, 약 최대 40개의 승자총통을 한꺼번해 화차위에 설치 할 수 있었다. 망암화차가 바로 이 승자총통 40개를 발사대에 설치하여 사용한 것이다. 전체 길이는 55cm 이고, 구경은 20mm 이다. 최대 사거리는 600보(약 180미터) 정도라고 한다. 승자총통의 동체인 동신(筒身), 화약을 채우는 약실(藥室), 그리고 손잡이 이렇게 3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용 화기라는 의미가 있으나 20년 후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군이 가져온 조총에 그 위력을 잃었다. 그러므로 대부분 망암화차처럼 대규모 탄약 발사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크기가 작은 철환만 쏜 것이 아니라, 화살을 넣어서 발사 할 수도 있었다. [1]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한국 전통무기 조사(-도검․화포류-)』, 경희정보인쇄㈜, 2003, 151.

참고문헌

유용한 자료

  • 웹자원
    • 윤용성, 승자총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더 읽을거리

  • 참고문헌
    •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한국 전통무기 조사(-도검․화포류-)』, 경희정보인쇄㈜,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