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 진영(선암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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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작품은 고려시대의 승려인 [[의천|의천(義天)]]의 [[진영|진영(眞影)]]으로, 1805년 승려 화가인 [[도일|도일비구(道日比丘)]]에 의해 수정·보완되었으며, | + | 이 작품은 고려시대의 승려인 [[의천|의천(義天)]]의 [[진영|진영(眞影)]]으로, 현재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805년 승려 화가인 [[도일|도일비구(道日比丘)]]에 의해 수정·보완되었으며, [[혜근|나옹선사 혜근(懶翁禪師 惠勤, 1320-1376)]]의 글이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10440000,36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재검색』<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
그림에서 [[의천]]은 장식적인 의자에 앉아 오른쪽으로 몸을 틀고 있는데, 이 자세는 당시 보편적인 영정의 구도법을 보여준다. 오른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 긴 [[주장자|주장자(拄杖子)]]를 살짝 잡으면서 의젓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의천]]의 내면세계를 적절히 묘사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영롱한 눈매, 듬직한 주먹코, 꽉 다문 입, 여기에 이마와 입가의 주름살을 그려, 학식과 수행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던 초로의 고승의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비교적 육중한 체구에 녹색의 [[장삼|장삼(長衫)]]을 입고 이 위에 붉은 가사를 [[우견편단|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걸치고 있는데, 가사의 깃과 이음에 정교한 꽃무늬를 금선으로 그리고 옷자락과 띠를 날카롭게 날리게 한 점 등에서 이 작품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말기 영정의 특징은 물론 앞시대의 양식적 특징도 잘 전해주는 당시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f>문명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3978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그림에서 [[의천]]은 장식적인 의자에 앉아 오른쪽으로 몸을 틀고 있는데, 이 자세는 당시 보편적인 영정의 구도법을 보여준다. 오른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 긴 [[주장자|주장자(拄杖子)]]를 살짝 잡으면서 의젓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의천]]의 내면세계를 적절히 묘사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영롱한 눈매, 듬직한 주먹코, 꽉 다문 입, 여기에 이마와 입가의 주름살을 그려, 학식과 수행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던 초로의 고승의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비교적 육중한 체구에 녹색의 [[장삼|장삼(長衫)]]을 입고 이 위에 붉은 가사를 [[우견편단|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걸치고 있는데, 가사의 깃과 이음에 정교한 꽃무늬를 금선으로 그리고 옷자락과 띠를 날카롭게 날리게 한 점 등에서 이 작품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말기 영정의 특징은 물론 앞시대의 양식적 특징도 잘 전해주는 당시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f>문명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3978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2017년 7월 16일 (일) 17:37 판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 | |
한자명칭 | 順天 仙巖寺 大覺國師 義天 眞影 |
---|---|
영문명칭 | Portrait of State Preceptor Daegak in Seonamsa Temple, Suncheon |
제작시기 | 1805년 |
소장처 | 선암사성보박물관 |
문화재지정사항 | 보물 제1044호 |
유형 | 진영 |
크기(세로×가로) | 110.2×144㎝ |
정의
고려시대의 승려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1055-1101)의 진영(眞影).
내용
이 작품은 고려시대의 승려인 의천(義天)의 진영(眞影)으로, 현재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805년 승려 화가인 도일비구(道日比丘)에 의해 수정·보완되었으며, 나옹선사 혜근(懶翁禪師 惠勤, 1320-1376)의 글이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1]
그림에서 의천은 장식적인 의자에 앉아 오른쪽으로 몸을 틀고 있는데, 이 자세는 당시 보편적인 영정의 구도법을 보여준다. 오른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 긴 주장자(拄杖子)를 살짝 잡으면서 의젓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의천의 내면세계를 적절히 묘사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영롱한 눈매, 듬직한 주먹코, 꽉 다문 입, 여기에 이마와 입가의 주름살을 그려, 학식과 수행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던 초로의 고승의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비교적 육중한 체구에 녹색의 장삼(長衫)을 입고 이 위에 붉은 가사를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걸치고 있는데, 가사의 깃과 이음에 정교한 꽃무늬를 금선으로 그리고 옷자락과 띠를 날카롭게 날리게 한 점 등에서 이 작품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말기 영정의 특징은 물론 앞시대의 양식적 특징도 잘 전해주는 당시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의천 진영(선암사) | 진영 | A는 B에 해당한다 | |
의천 진영(선암사) | 의천 | A는 B를 묘사하였다 | |
의천 진영(선암사) | 선암사성보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
도일 | 의천 진영(선암사) | A는 B를 제작하였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805년 | 도일이 의천 진영(선암사)을 수정·보완하였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
『문화재검색』online , 문화재청. - ↑ 문명대,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문명대,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선암사대각국사의천진영",
『두산백과』online . -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
『문화재검색』online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