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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8일 (목) 11:44 판
저고리 (赤古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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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저고리 |
---|---|
한자표기 | 赤古里 |
착용신분 | 황후, 황태자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궁녀 |
착용성별 | 여성 |
목차
정의
조선시대 여자 상의류를 총칭하는 용어이다.[1]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황후, 황태자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궁녀, 일반 부녀자 등이 착용한다.
착용상황
외출용 웃옷으로 일상적인 저고리 위에 착용하였다. 소례복(小禮服)인 당의보다는 아래급의 예복이다.
형태
저고리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赤古里' 기록은 세종실록 중 세종 2년 9월 원경왕후 국상의 천전의에서 처음 확인된다.
여자 저고리는 외의의 성격이 강하여 장식적인 경향이 있다. 여자 저고리는 길이와 구성상의 차이 색상 그리고 소재 깃의 형태 등의 차이에 의해서 더 다양하게 나뉘며 시대에 따라서는 길이가 점차 짧아지고 품이 작아지는 경향이 보인다. [2]
기타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
저고리(여성) | 왕비 | A는 B를 착용하였다 |
저고리(여성) | 왕세자빈 | A는 B를 착용하였다 |
저고리(여성) | 왕세손빈 | A는 B를 착용하였다 |
저고리(여성) | 치마 | A는 B에 착용한다 |
저고리(여성) | 악학궤범 |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10쪽.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