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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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6일 (일) 17:39 판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영문명칭 A Korean book produced for the ritual of bestowing posthumous title to Queen Myeongseong of Gojong
작자 미상
간행시기 1890년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2-4047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26.9×15.8cm
판본 필사본
수량 1첩
표기문자 한글



개요

1890년(고종27) 고종의 왕비인 여흥민씨(驪興閔氏, 1851~1895)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위하여 제작한 한글본 책문이다.

내용

1890년(고종27) 고종의 왕비인 여흥민씨(驪興閔氏, 1851~1895)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위하여 제작한 한글본 책문이다. 5절 10면의 첩장으로, 겉면을 붉은색 비단으로 감싸고 흰색 제첨에 ‘명셩황후상됴호옥책(*고한글)문’, 좌측 상단에 ‘경인이월십일일’이라고 명기하였다. 표지는 왕후 여흥민씨의 시호를 ‘명성(明成)’으로 정한 1897년(고종34) 이후에 개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문은 한 면에 7행 12자를 쓸 수 있도록 붉은 인찰선을 긋고 격식에 맞추어 썼다. 고종은 1890년(고종27) 1월 27일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헌종 계비 홍씨(1831~1903)의 보령 60세를 경하하기 위하여 존호를 가상하는 의례를 행했는데, 이때 왕세자(순종)는 중전 민씨의 보령이 40세에 이른 것 또한 경하하기를 원하였다. 이에 따라 2월 11일에 고종경복궁 근정전에서 대왕대비 조씨(1809~1890)와 왕대비 홍씨에게 옥책, 옥보, 치사(致詞), 전문(箋文)을 친히 올렸고, 왕세자는 고종과 중전 민씨를 위하여 옥책, 옥보, 전문을 올렸다. 당시 의례의 구체적인 내용은 『가상존호도감의궤(加上尊號都監儀軌, 1890)』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중전 민씨의 옥책문 제술관은 홍문관대제학 한장석(韓章錫, 1832~1894), 서사관은 광주부유수 민영소(閔泳韶, 1852~1917)였다. 본 옥책문은 한문본의 한자음을 한글로 옮기되 격식은 동일하게 갖추어 썼다. 책보를 올리는 의례에는 책문을 낭독하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는데, 비빈의 경우에는 여관(女官)이 낭독하므로 한글본을 별도로 제작하였다.[1]


관련항목

중심 연결정보 대상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인물 고종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인물 여흥민씨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인물 헌종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인물 계비홍씨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인물 순종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인물 한장석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인물 민영소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장소 경복궁 근정전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시간정보

중심 시간정보명 시간값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간행년 1890년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간행년 고종27년

공간정보

중심 연결정보 공간정보이름 경도 위도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37.39197 127.054387
명성황후 상존호옥책문 거행장소 경복궁 근정전 37.578507 126.976965

참고문헌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