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해납약증치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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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 ==시각자료== |
2017년 4월 3일 (월) 23:48 판
언해납약증치방 | |
한자명칭 | 諺解臘藥症治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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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A book about the effects and precautions of pills |
작자 | 미상(허균으로 추정됨) |
작성시기 | 17세기 |
간행시기 | 조선후기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C7-78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8×19.8㎝ |
판본 | 목판본 |
수량 | 1冊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정의
납약의 효능 및 납약을 복용할 때 피해야 하는 사항 등을 기록한 책
내용
납약臘藥의 효능 및 납약을 복용할 때 피해야 하는 사항 등을 기록한 책이다. 언해문의 한글 표기 특징으로 보아 17세기경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두에 37종의 약재명을 열거한 목록이 실려 있다. 납약이란 해마다 12월 납일臘日이 되면 내의원內醫院에서 청심원, 소합원 등을 제조하여 왕실에 올리거나, 혹은 왕실에서 근신近臣에게 내려주는 가정상비약을 말한다. 매년 납일에 내의원에서 환약을 제조하여 올리면, 임금이 신하들에게 상비약의 용도로 하사하였다. 이 책에는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구미청심원九味淸心元, 소합원蘇合元, 지보단至寶丹 등 37종의 납약이 소개되어 있다. 각각의 납약 이름 아래에 약의 효능과 복용법을 한문으로 기술한 뒤, 언해문을 덧붙였다. 한문 뒤에 언해문을 병기한 것은 뜻밖의 다급한 상황에 여인들이 납약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1]
부연설명
『언해납약증치방(諺解臘藥症治方)』은 본래 응급상황을 대비하여, 미리 약재를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긴급하게 필요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한약 제제 방법과 복용법 그리고 금기사항을 기록한 일종의 투약지침서인 『납약증치방』을 언해한 것이다. 본래 납약(臘藥)은 조선시대 세시 풍속으로 매년 12월 날씨가 추워져 약재의 부패 및 변이를 막을 수 있었으니, 이 때를 노려서 한 해 동안 쓸 수 있는 응급약을 만든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왕실과 사대부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동지 뒤 셋째 미일(未日)을 납일(臘日)이라 하며, 이때 궁중의 내의원(內醫院)에서 환약(丸藥)을 지어 올리면 임금이 이것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납일에 내리는 눈은 약이 된다고 하여 환약을 만들 때 녹인 물을 쓰기도 하였다. 즉 이것을 다시 말하면 궁중과 사대부만 사용하던 투약지침서를 한글로 번역하여 일반 백성들도 사용할 수 있게 전파 한 것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태의선생안』의 기록에 의거하여 허준(1539~1615)이 저술한 것으로 보는 것이 지배적인데 그 근거로는 『동의보감』에서 나오는 약재의 종류와 『납약증치방』에 수록된 약재가 두 종류를 제외하고 모두 일치하기 때문이다. 현재 존재하는 판본은 서울대학교 한국학연구원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이화여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2]
시각자료
관련항목
중심 | 연결정보 | 대상 |
---|---|---|
언해납약증치방 | 개념 | 납약 |
언해납약증치방 | 개념 | 내의원 |
공간정보
중심 | 연결정보 | 공간정보이름 | 경도 | 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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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해납약증치방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37.39197 | 127.054387 |
시간정보
중심 | 시간정보명 | 시간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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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해납약증치방 | 간행년 | 17세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