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용혈리 달성서씨재사(榮州 龍穴里 達城徐氏 齋舍)"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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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부호군(副護軍)인 서승절(徐承節)의 묘소수호를 위해 조선후기에 건립된 재사이다. 각 부재에서 중수한 흔적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후대에 여러차례 중수하면서 규모를 눌렸던 것으로 보여진다. 건물배치는 "一"자형 4칸 아래채와 까치구멍집 안채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고 안채 앞 양쪽으로 방안간채와 뒤주채가 마주보고 있다. 안채의 상부가구는 5량가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정면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 이 건물은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부호군(副護軍)인 서승절(徐承節)의 묘소수호를 위해 조선후기에 건립된 재사이다. 각 부재에서 중수한 흔적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후대에 여러차례 중수하면서 규모를 눌렸던 것으로 보여진다. 건물배치는 "一"자형 4칸 아래채와 까치구멍집 안채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고 안채 앞 양쪽으로 방안간채와 뒤주채가 마주보고 있다. 안채의 상부가구는 5량가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정면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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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곳은 조선시대의 학자 서승절(1657-1747)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달성 서씨]] 가문에서 세운 재사이다. 재사가 위치한 용혈리 시낼마을은 [[달성 서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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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사 건물은 18세기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건물의 각 부재에서 고친 흔적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여러 차례 중수하면서 규모를 늘렸던 것으로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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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재사는 안채, 아래채, 방앗간, 광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의 지붕에는 통풍과 채광을 위해 지붕의 양쪽 합각 부분에 둥근 구멍을 냈다. 이러한 구멍은 ‘까치구멍’이라고 부르는데, 주로 초가 지붕에 이와 같은 구멍을 내고 구멍의 모양이 까치 둥지 모양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기와지붕에 까치구멍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한 안채는 일반적인 까치구멍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반달 모양의 대들보를 사용하고 있다. |
2022년 11월 6일 (일) 14:32 판
영주 용혈리 달성서씨재사(榮州 龍穴里 達城徐氏 齋舍)
소재지 :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642
이 건물은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부호군(副護軍)인 서승절(徐承節)의 묘소수호를 위해 조선후기에 건립된 재사이다. 각 부재에서 중수한 흔적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후대에 여러차례 중수하면서 규모를 눌렸던 것으로 보여진다. 건물배치는 "一"자형 4칸 아래채와 까치구멍집 안채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고 안채 앞 양쪽으로 방안간채와 뒤주채가 마주보고 있다. 안채의 상부가구는 5량가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정면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학자 서승절(1657-1747)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달성 서씨 가문에서 세운 재사이다. 재사가 위치한 용혈리 시낼마을은 달성 서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재사 건물은 18세기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건물의 각 부재에서 고친 흔적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여러 차례 중수하면서 규모를 늘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재사는 안채, 아래채, 방앗간, 광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의 지붕에는 통풍과 채광을 위해 지붕의 양쪽 합각 부분에 둥근 구멍을 냈다. 이러한 구멍은 ‘까치구멍’이라고 부르는데, 주로 초가 지붕에 이와 같은 구멍을 내고 구멍의 모양이 까치 둥지 모양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기와지붕에 까치구멍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한 안채는 일반적인 까치구멍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반달 모양의 대들보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