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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0일 (월) 19:09 판
목호의 난(牧胡의 亂) | |
대표명칭 | 목호의 난 |
---|---|
한자표기 | 牧胡의 亂 |
유형 | 사건 |
시대 | 고려시대 |
날짜 | 1372년(공민왕 21) - 1374년(공민왕 23) |
정의
고려 말 제주도의 몽골족 목호(牧胡)들이 일으킨 반란.
내용
원(元)은 탐라(耽羅)에서 삼별초(三別抄)를 평정한 뒤, 1273년(원종 14) 일본 원정에 대비하여 이곳에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를 설치하고 다루가치(達魯花赤)를 파견하여 감독하게 하였다. 또한 후에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하였으며 목호(牧胡: 몽골의 목자)를 보내어 소·말·낙타·나귀·양 등을 기르게 하였다. 1294년(충렬왕 20) 탐라가 고려에 반환되면서 탐라의 이름은 제주(濟州)로 개칭되었으며, 조정에서는 목사(牧使)·판관(判官)을 두어 다스렸다.[1]
1372년(공민왕 21) 고려와 명나라의 국교가 굳어지고, 명나라에 말을 보내기 위해 제주의 말을 징발하였다. 이때 목호 석질리(石迭里)·필사초고(必思肖古)·독불화(禿不花)·관음보(觀音保)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 제주에 가있던 명나라의 유지별감 겸 간선어마사(宥旨別監兼揀選御馬使) 유경원(劉景元)과 목사 겸 만호(牧使兼萬戶) 이용장(李用藏)을 죽였다. 이에 제주를 치려했으나, 제주인(濟州人)이 판관 문서봉(文瑞鳳)을 권지목사(權知牧使)로 추대하고, 말을 바치겠다고 해 더 이상 사태의 악화는 없었다.[2]
1374년(공민왕 23) 명나라가 북원(北元)을 치려고 제주의 말 2천 필을 요구하였다. 이에 문하평리(門下評理) 한방언(韓邦彦)을 제주에 보냈을 때에도 목호 석질리·필사초고·독불화·관음보 등은 공출을 거부하고 다만 3백 필만 내놓았다. 명나라 사신 임밀(林密)과 채빈(蔡斌) 등은 2천 필에 차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고 하자, 공민왕은 목호를 토벌하기로 결정하였다.[3]
이에 조정에서는 최영(崔瑩)을 양광·전라·경상도 도통사(都統使)에, 염흥방(廉興邦)을 도병마사(都兵馬使)에, 이희필(李希泌)을 양광도상원수(楊廣道上元帥)에, 임견미(林堅味)를 부원수(副元帥)에, 지윤(池奫)을 경상도상원수에, 김유(金庾)를 삼도조전원수 겸 서해교주도도순문사(三道助戰元帥兼西海交州道都巡問使)에 임명하여, 각기 2개 도의 군사를 거느리고 진압하도록 하였다.[4]
최영이 제주에 와 한 달여간 전투를 벌였던 목호 정벌은 "우리 동족이 아닌 것이 섞여 갑인년(1374)의 변을 불러들였다. 칼과 방패가 바다를 뒤덮고 간과 뇌는 땅을 가렸으니 말하면 목이 메인다"고 묘사될 정도로 고려와 목호 세력이 총력전을 벌였다. 이로써 목호 세력은 영향력을 상실했다. 한편 최영이 탐라 목호 세력을 평정하느라 개경에 없을 때, 개혁 정치를 단행해 나라를 바로 잡아보려던 공민왕은 시해(弑害)되었다.[5]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고려 공민왕 | 목호의 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최영 | 목호의 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염흥방 | 목호의 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이희필 | 목호의 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임견미 | 목호의 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지윤 | 목호의 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김유 | 목호의 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주석
- ↑ "목호의 난",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민병하, "목호의 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민병하, "목호의 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목호의 난",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김일우, "목호의 난",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