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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李适 | |한자표기= 李适 |
2017년 11월 6일 (월) 23:38 판
이괄(李适) | |
대표명칭 | 이괄 |
---|---|
한자표기 | 李适 |
본관 | 고성(固城) |
자 | 백규(白圭) |
출생지 | 1587년 |
사망지 | 1624년 |
시대 | 조선 |
국적 | 조선 |
대표직함 | 형조좌랑, 함경북도병마절도사 |
성격 | 무신 |
목차
정의
조선 중기 인조 대에 반란을 일으킨 무신이다.
내용
인조반정의 주역
이괄은 무과 출신이었으나 문장과 서예에도 능하였다.[1] 1622년(광해군 14) 함경북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떠날 준비를 할 즈음, 평소 친분이 있던 신경유(申景裕)의 권유로 광해군을 축출하고 새 왕을 추대하는 계획에 가담하였다. 1623년 3월의 인조반정 때[2] 주도적인 역할을 해내면서 큰 공을 세웠다. 반정을 위해 거병하였을 때 장졸들이 동요하자 '이귀(李貴)가 병사(兵使) 이괄을 추대하여 대장으로 삼은 다음 편대를 나누고 호령하니 군중이 곧 안정되었다'고 기록될 정도로 무인 이괄의 역량은 반정 성공에 확실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3] 그러나 반정 과정에서 주도 세력인 거의대장(擧義大將) 김류(金瑬)의 우유부단한 처사에 크게 반발하면서 불화가 생겨, 반정 뒤에 겨우 한성부판윤에 머물렀다.[4]
이괄의 난을 일으키다
이괄은 1623년(인조 1) 당시 변방에 병란의 조짐이 있다고 하여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 휘하에 부원수 겸 평안병사로 삼아 영변에 머물게 되었다. 같은 해 윤10월 인조반정 때 공이 많았음에도 반정모의에 뒤늦게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부하 이수백(李守白), 기익헌(奇益獻) 등과 모의하여 1624년 1월 반란을 일으켜 서울을 점령하자 인조는 공주로 피난하였다.[5]
하지만 그날 안령(鞍嶺: 현 무악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장만이 이끄는 토벌군에 크게 패하여 한밤중에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광희문(光熙門)을 통해 경기도 이천(利川) 방면으로 퇴각하였다. 그리고 4월 1일(음력 2월 14일)에 경안역(慶安驛) 부근에서 한명련과 함께 부하 장수인 이수백ㆍ기익헌에게 살해되었다.[6]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이괄 | 인조반정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이시백 | 인조반정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이괄 | 정사공신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인조반정 | 이괄의 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이괄 | 이괄의 난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임경업 | 이괄의 난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장만 | 이괄의 난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한명련 | 이괄의 난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이시백 | 이괄의 난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이수백 | 이괄의 난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기익헌 | 이괄의 난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이괄 | 이수백 | A는 B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 A edm:isRelatedTo B |
이괄 | 기익헌 | A는 B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 A edm:isRelatedTo B |
한명련 | 이수백 | A는 B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 A edm:isRelatedTo B |
한명련 | 기익헌 | A는 B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 A edm:isRelatedTo B |
이괄의 난 | 정묘호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임경업 | 정묘호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 ↑ 하현강, "이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하현강, "이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태훈, "이괄의 난",
『한국사 콘텐츠』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 ↑ 하현강, "이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의 공신』, 장서각, 2012, 168쪽.
- ↑ "이괄의 난",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하현강, "이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그 내용은 당나라 때 신선(神仙)을 매우 좋아했던 고변(高騈)의 〈보허사(步虛詞)〉에, "청계산 도사를 사람들은 알지를 못하니, 하늘을 오르내리는 학 한 마리뿐이로다. 동굴 문 깊이 잠기고 푸른 창은 춥기만 한데, 이슬방울로 주묵 갈아 주역에 권점 찍노라.(靑溪道士人不識 上天下天鶴一隻 洞門深鎖碧窓寒 滴露硏朱點周易)"로 추정된다. - 번역문 출처 : 임정기(역), "즉사(卽事)", 고전번역서,
『한국고전종합DB』online ,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