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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일 (일) 17:34 판
지엄(智儼) | |
대표명칭 | 지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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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智儼 |
호 | 지상대사(至相大師), 운화존자(雲華尊者) |
성씨 | 조씨(趙氏) |
출신지 | 천수(天水, 지금의 간쑤(甘肅)성 텐수이) |
목차
정의
중국 수나라-당나라 시대의 화엄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지엄(智儼, 602-668)은 천수(天水, 지금의 간쑤(甘肅)성 텐수이) 사람으로 속세의 성은 조(趙)이다. 부친은 신주(申州, 지금의 허난성 신양(信陽)시) 참군(参軍, 참모)을 지낸 조경(趙景)이라 했다.[1]
출가 수행
어릴 때부터 불도(佛道)에 뜻을 두어 놀이를 할 때도 항상 돌을 쌓아 탑을 만들거나 친구들을 청중으로 삼아 스스로 법사(法師)를 맡았다. 12살 때 두순(杜順)을 따라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 가서 두순의 제자 달법사(達法師)에게 배워 밤낮 정성을 다했다. 14살 때 출가(剃染) 하고, 나중에 법상(法常)에게 『섭대승론(攝大乘論)』을 들었다. 20살 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2]
활동
지정(智正)에게 『화엄경(華嚴經)』을 배우면서 장경(藏經)을 두루 열람하고 여러 가지 주석서를 찾으면서 『십지론(十地論)』 육상원융(六相圓融)의 뜻을 깊이 연구해 크게 계발(啓發)되었다. 27살 때 『화엄경수현기(華嚴經搜玄記)』를 편찬해 일종(一宗)의 규모를 완성했다. 항상 화엄을 강설하면서 화도(化導)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일찍이 지상사에 있어 지상대사(至相大師)로 불렸고, 만년에는 운화사(雲華寺)에 있어 운화존자(雲華尊者)로도 불렸다.[3]
입적
당 고종 총장(總章) 원년(668)에 청정사(清淨寺)에서 원적(圓寂, 승려의 사망을 칭함)했다. 그의 문하에 박진(薄塵), 법장, 혜효(慧曉), 회제(懷齊), 의상(義湘, 신라의 승려) 등이 있다.[4]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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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