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내용) |
|||
28번째 줄: | 28번째 줄: | ||
[[원지|도오원지(道吾圓智)]]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은 후 호남성(湖南省) 석상산(石霜山)에서 20여 년 동안 수행하였다.<ref>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6904&cid=50763&categoryId=50784 경제]", 용어해설,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앉거나 눕지 않고 우뚝하기가 나무줄기와 같아 세칭(世稱) 석상고목중(石霜枯木衆)이라 불렸다.<ref>한보광, 임종욱,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이회문화사, 2011.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88503&cid=42980&categoryId=42980 석상]",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원지|도오원지(道吾圓智)]]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은 후 호남성(湖南省) 석상산(石霜山)에서 20여 년 동안 수행하였다.<ref>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96904&cid=50763&categoryId=50784 경제]", 용어해설,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앉거나 눕지 않고 우뚝하기가 나무줄기와 같아 세칭(世稱) 석상고목중(石霜枯木衆)이라 불렸다.<ref>한보광, 임종욱,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이회문화사, 2011.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88503&cid=42980&categoryId=42980 석상]",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 | 신라시대의 승려인 [[행적|낭공대사 행적(朗空大師 行寂, 832-916)]]은 당나라로 유학하여 경제의 선법을 | + | 신라시대의 승려인 [[행적|낭공대사 행적(朗空大師 行寂, 832-916)]]은 당나라로 유학하여 경제의 선법을 전해받았다.<ref>김위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837 행적]",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Blockquote | {{Blockquote | ||
|석상(石霜) 경저화상(慶諸和尙)이 여래의 집을 열고 가섭(迦葉)의 뜻을 베푸니 보리수(菩提樹) 그늘에 참선(參禪)하는 무리들이 모였다는 소리를 듣고, 대사는 은근히 예를 행하고 간절히 정성을 바쳤으며, 그대로 방편(方便)문에 머물러 마침내 마니(摩尼)의 보배를 얻었다, 얼마 후 형악(衡岳)을 찾아 노닐어 선지식(善知識)이 참선하는 거처를 배알하고, 멀리 조계산(曹溪山)에 이르러 6조 혜능(慧能)의 보탑(寶塔)을 배례하였으며, 동산(東山: 5조 홍인의 도량이 있던 산) 홍인(弘忍)의 먼 자취를 가까이 하여 6조의 남은 행적을 찾았으며, 사방 먼 데까지 찾아보아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 |석상(石霜) 경저화상(慶諸和尙)이 여래의 집을 열고 가섭(迦葉)의 뜻을 베푸니 보리수(菩提樹) 그늘에 참선(參禪)하는 무리들이 모였다는 소리를 듣고, 대사는 은근히 예를 행하고 간절히 정성을 바쳤으며, 그대로 방편(方便)문에 머물러 마침내 마니(摩尼)의 보배를 얻었다, 얼마 후 형악(衡岳)을 찾아 노닐어 선지식(善知識)이 참선하는 거처를 배알하고, 멀리 조계산(曹溪山)에 이르러 6조 혜능(慧能)의 보탑(寶塔)을 배례하였으며, 동산(東山: 5조 홍인의 도량이 있던 산) 홍인(弘忍)의 먼 자취를 가까이 하여 6조의 남은 행적을 찾았으며, 사방 먼 데까지 찾아보아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
2017년 9월 17일 (일) 00:51 판
경제(慶諸) | |
대표명칭 | 경제 |
---|---|
한자 | 慶諸 |
생몰년 | 807년-888년 |
이칭 | 석상경제(石霜慶諸), 석상경저(石霜慶諸) |
성씨 | 진씨(陳氏) |
출신지 | 강서성(江西省) 길주(吉州) |
정의
당나라의 선승(禪僧).
내용
도오원지(道吾圓智)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은 후 호남성(湖南省) 석상산(石霜山)에서 20여 년 동안 수행하였다.[1] 앉거나 눕지 않고 우뚝하기가 나무줄기와 같아 세칭(世稱) 석상고목중(石霜枯木衆)이라 불렸다.[2]
신라시대의 승려인 낭공대사 행적(朗空大師 行寂, 832-916)은 당나라로 유학하여 경제의 선법을 전해받았다.[3]
석상(石霜) 경저화상(慶諸和尙)이 여래의 집을 열고 가섭(迦葉)의 뜻을 베푸니 보리수(菩提樹) 그늘에 참선(參禪)하는 무리들이 모였다는 소리를 듣고, 대사는 은근히 예를 행하고 간절히 정성을 바쳤으며, 그대로 방편(方便)문에 머물러 마침내 마니(摩尼)의 보배를 얻었다, 얼마 후 형악(衡岳)을 찾아 노닐어 선지식(善知識)이 참선하는 거처를 배알하고, 멀리 조계산(曹溪山)에 이르러 6조 혜능(慧能)의 보탑(寶塔)을 배례하였으며, 동산(東山: 5조 홍인의 도량이 있던 산) 홍인(弘忍)의 먼 자취를 가까이 하여 6조의 남은 행적을 찾았으며, 사방 먼 데까지 찾아보아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 ||
출처: 임세권 저, 이우태 편저,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 『한국금석문집성 17 : 고려1 비문1』, 한국국학진흥원, 2014, 30쪽. 온라인 참조: "한국금석문집성 17 : 고려1 비문1", |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원지 | 경제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경제 | 지원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경제 | 도연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경제 | 행적 | A는 B의 스승이다 | A ekc:hasDisciple B |
각주
-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경제",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한보광, 임종욱,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이회문화사, 2011. 온라인 참조: "석상",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김위석, "행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경제",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한보광, 임종욱,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이회문화사, 2011. 온라인 참조: "석상", 중국역대불교인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