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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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구성<ref>이민주,『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104쪽.</ref>==
 
==복식구성<ref>이민주,『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10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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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진왜란 이전 적의 관은 [[적관 | 적관(翟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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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조장렬왕후가례(1638년): [[체발 | 체발(髢髮)]], [[대삼(大衫)]], [[배자 | 배자(褙子)]], [[단삼 | 단삼(單衫)]], [[오 | 오(襖)]], [[전행웃치마 | 군(裙)]], [[하피 | 하피(霞帔)]], [[옥대(玉帶)]], [[후수(왕실여성) | 후수(後綬)]], [[패옥(왕실여성) | 패옥(佩玉)]], [[대대(왕실여성) | 대대(大帶)]], [[적석(赤舃)]], [[적말(赤襪)]], [[규(圭)]]
 
**인조장렬왕후가례(1638년): [[체발 | 체발(髢髮)]], [[대삼(大衫)]], [[배자 | 배자(褙子)]], [[단삼 | 단삼(單衫)]], [[오 | 오(襖)]], [[전행웃치마 | 군(裙)]], [[하피 | 하피(霞帔)]], [[옥대(玉帶)]], [[후수(왕실여성) | 후수(後綬)]], [[패옥(왕실여성) | 패옥(佩玉)]], [[대대(왕실여성) | 대대(大帶)]], [[적석(赤舃)]], [[적말(赤襪)]], [[규(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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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방정례]](1750~51년)』: [[면사 | 면사(面紗)]], [[적의 | 적의(翟衣)]], [[별의 | 별의(別衣)]], [[내의 | 내의(內衣)]], [[후수(왕실여성) | 후수(後綬)]], [[폐슬(왕실여성) | 폐슬(蔽膝)]], [[전행웃치마 | 상(裳)]], [[대대(왕실여성) | 대대(大帶)]], [[패옥(왕실여성) | 패옥(佩玉)]], [[하피 | 하피(霞帔)]], [[적석(赤舃)]], [[적말(赤襪)]], [[규(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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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전 적의 관은 [[적관 | 적관(翟冠)]]이다.
  
 
*대한제국시대: [[대수 | 대수(大首)]], [[적의 | 적의(翟衣)]], [[전행웃치마]], [[중단(왕실여성)|중단(中單)]], [[대대(왕실여성) | 대대(大帶)]], [[옥대(玉帶)]], [[폐슬(왕실여성) | 폐슬(蔽膝)]], [[패옥(왕실여성) | 패옥(佩玉)]], [[후수(왕실여성) | 후수(後綬)]], [[하피 | 하피(霞帔)]], [[청석(靑舃)]], [[청말(靑襪)]], [[규(圭)]]
 
*대한제국시대: [[대수 | 대수(大首)]], [[적의 | 적의(翟衣)]], [[전행웃치마]], [[중단(왕실여성)|중단(中單)]], [[대대(왕실여성) | 대대(大帶)]], [[옥대(玉帶)]], [[폐슬(왕실여성) | 폐슬(蔽膝)]], [[패옥(왕실여성) | 패옥(佩玉)]], [[후수(왕실여성) | 후수(後綬)]], [[하피 | 하피(霞帔)]], [[청석(靑舃)]], [[청말(靑襪)]], [[규(圭)]]

2017년 7월 22일 (토) 08:21 판


왕비의 대례복
(王妃의 大禮服)
대표명칭 왕비의 대례복
한자표기 王妃의 大禮服
이칭별칭 적의(翟衣)
분류 예복
착용신분 왕비
착용성별 여성



정의

국가의 큰 제례를 올리거나 혼례를 올릴 때 또는 책봉을 받을 때 착용하는 예복이다.[1] 조선시대 적의 제도는 명에서 사여받은 것으로 대홍색 대삼에 수원적을 붙인 적의이며 대한제국시대의 적의 제도는 『대명회전』에 근거하여 새로 마련한 심청색 적의이다.[2] 적의는 꿩무늬[적문(翟紋)]가 직조된 직물로 만든 옷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3] 대한제국시대의 적의 제도는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꿩무늬 줄수에 차등을 두었으며 왕비는 황태자비와 같은 9등(等)이다.

복식구성[4]

관련항목

참고문헌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아름다운 시작』,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2010.

주석

  1.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00쪽.
  2. ↑ 이민주,『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105쪽.
  3.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00쪽.
  4. ↑ 이민주,『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1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