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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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3일 (일) 11:41 판


폐슬(蔽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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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360px|thumb|center|]]
대표명칭 폐슬(蔽膝)
착용신분 왕실
착용성별 남성


정의

  • 무릎 가리개.

복식구성

기본정보

착용신분

착용상황

  • 국가 의례, 혼례 등의 대례복을 입을 때.

기본 형태

  • 위의 너비 1척, 아래의 너비 2척, 길이 3척으로,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형태로, 1은 하늘, 2는 땅, 3은 삼재를 상징함.[1]
Quote-left.png 붉은 슬갑 넓적다리에 있고 행전이 아래에 있도다. 【불(芾)은 태고 때 무릎 가리개의 모습이다. 면복을 불(芾)이라 하고 기타의 의복은 필(韠}라고 하는데 가죽으로써 만든다. 그 제도에 있어 위의 너비는 1척이고 아래의 너비는 2척이며 길이는 3척이다. 그 목 부분은 5촌이고 어깨[肩]와 혁대는 너비가 2촌이다.】(赤芾在股,邪幅在下【箋云: 芾,大古蔽膝之象也。冕服謂之芾,其他服謂之韠。以韋爲之,其製上廣一尺,下廣二尺,長三尺,其頸五寸,肩革帶, 博二寸.】) Quote-right.png
출처: 『詩經』, 「小雅」, '采菽'.


기타

  • 기원
    • 사람은 먼저 앞을 가리는 것을 알고 후에 뒤를 가림을 알았는데, 폐슬은 앞을 가리던 역할을 하였다가 후에 예복에 달린 무릎가리개가 되고 앞과 뒤에 두르는 상(裳)이라는 형태의 옷이 생겨남.[3]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황제 폐슬(왕실남성) A는 B를 착용한다
황태자 폐슬(왕실남성) A는 B를 착용한다
왕 폐슬(왕실남성) A는 B를 착용한다
왕세자 폐슬(왕실남성) A는 B를 착용한다
왕세손 폐슬(왕실남성) A는 B를 착용한다
폐슬(왕실남성) 대례복 A는 B의 일습이다
폐슬(왕실남성) 면복각 A는 B에서 소장한다

참고문헌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 권현주, 「접섭대(䪓韘帶)에 관한 연구」, 『中央아시아硏究』, V.11, 중앙아시아학회, 2005.
  •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名選-下』, 단국대학교출판부, 2004.
  • 류희경, 『우리옷 이천년』, 미술문화, 2001.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역사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문화재청, 2007.
  • 석주선, 『한국복식사』, 보진재, 1971.
  • 이강칠 외, 『역사인물초상화대사전』, 현암사, 2003.
  • 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周錫保, 『中國古代服飾史』, 中國戱劇出版社, 1983.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최규순, 「이 시대의 진정한 ‘紳士’를 위하여」, 『전통 의생활 연구』, 제 2집, 단국대학교 전통복식연구소, 2008.
  • 최영선, 「朝鮮時代 文武百官 祭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주석

  1.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41~42쪽.
  2.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42쪽.
  3.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4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