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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자호란은 [[정묘호란]] 이후에도 조선이 친명정책을 고수한 것을 계기로 발발하였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항전했으나, 결국 1637년(인조15) 정월,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산성일기』에는 이러한 병자호란의 경과뿐만 아니라 1637년 2월 청군의 철군,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등이 볼모로 끌려간 사정, 인조의 환궁, 4월 조선사신을 파견하여 청나라 황제에게 공물을 바친 일, 11월 [[삼전도]]에 청나라 황제의 [[송덕비]]를 건립하게 된 내용까지 자세히 기록하였다. | ||
+ | 『산성일기』는 병자호란 당시 역사적 사실을 시간의 추이에 따라 상세히 기록하였고, 병자호란을 보는 작자의 심리를 긴장감 있게 구성하여 사료적·문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책과 같은 내용을 흘림체 한글로 쓴 『산성일기』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장서각]](청구기호 2-218)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08-109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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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뿐만 아니라, 『산성일기』의 작자는 문장에도 매우 능하여 역사적 사실을 발단에서 전개, 위기를 거쳐 대단원에 이르는 하나의 단편소설처럼 기술하고 있다. 처음에는 [[누르하치]]와 [[홍타시]]에 관한 풍자적이며 완만한 필법에서 출발하여 점점 논조(論調)가 강해져서 양국을 오가는 감정이 상대적으로 시소를 타는 듯한 모습을 이룬다 그러다가 30일째인 출성에서의 고비를 지나면서 차차 긴장이 완만해진다. 이처럼 50여일의 긴 시간적 흐름이 마치 한 숨을 몰아쉬는 것 같이 긴박하게 연결되어, 독자로 하여금 굴욕적 망국의 역사적 사실 앞에 울분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결국, 『산성일기』는 역사적 사실의 날줄에, 작자의 병자호란을 보는 심리적 변화의 씨줄을 엮어 짠 한 폭의 피륙이라 할 수 있다.<REF> 소재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6254 산성일기]",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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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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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참고문헌'''== |
− | + | *저서 | |
+ | **소재영, 『壬丙兩亂과 文學意識』, 韓國硏究院, 1980. | ||
+ | **남광우, 「산성일기연구」, 『동대어문』1, 정음사, 1971. | ||
+ | **강한영, 「山城日記」, 『발행지 불명』, 발행년 미상. | ||
+ | *논문 | ||
+ | **徐 賢, 「山城日記」考, 『韓國語文學硏究』8, Vol.8 No.- , 44-76쪽, 1968. | ||
− | [[분류: | + | [[분류:한글고문서]] |
− | [[분류: | + | [[분류:전시자료]] [[분류:문헌]] |
− | |||
− | [[분류: |
2017년 12월 27일 (수) 17:08 기준 최신판
산성일기 | |
한자명칭 | 山城日記 |
---|---|
영문명칭 | Diaries of the life in the Mountain Fortress during the Byeongjahoran (1636 Manchu Invasion) |
작자 | 미상 |
작성시기 | 미상 |
간행시기 | 조선후기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
청구기호 | 2-219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9.7×24.2㎝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冊 |
표기문자 | 한글 |
목차
정의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던 시점부터 청 태종에게 항복하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날짜별로 기록한 한글 일기 필사본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병자호란은 정묘호란 이후에도 조선이 친명정책을 고수한 것을 계기로 발발하였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항전했으나, 결국 1637년(인조15) 정월,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산성일기』에는 이러한 병자호란의 경과뿐만 아니라 1637년 2월 청군의 철군,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등이 볼모로 끌려간 사정, 인조의 환궁, 4월 조선사신을 파견하여 청나라 황제에게 공물을 바친 일, 11월 삼전도에 청나라 황제의 송덕비를 건립하게 된 내용까지 자세히 기록하였다. 『산성일기』는 병자호란 당시 역사적 사실을 시간의 추이에 따라 상세히 기록하였고, 병자호란을 보는 작자의 심리를 긴장감 있게 구성하여 사료적·문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책과 같은 내용을 흘림체 한글로 쓴 『산성일기』가 장서각(청구기호 2-218)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1]
작자의 체험이 녹아든 명문장 일기
남한산성이 포위되어 청군(淸軍)에게 항복하기까지 약 50여 일간의 사실이 일기의 형태를 빌려 집중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정묘호란 이후 병자년 겨울 청군의 내침에서 비롯하여 정축년 정월 인조가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적고 있다. 이어서 2월 한(汗)의 철군, 소현세자(昭顯世子)·봉림대군(鳳林大君) 일행의 심양(瀋陽) 발행, 인조의 환궁, 4월 조선사신이 청나라 황제에게 공물을 바친 일, 11월 삼전도(三田渡)에 청나라 황제의 송덕비를 건립하게 된 일까지 소상히 묘사되어 있다. 『산성일기』에 기술된 사실들을 또 다른 역사 기록인 「병자록(丙子錄)」이나 「남한일기(南漢日記)」에서 찾아보면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병자호란 당시 직접 인조를 보호하여 실전에 참여하고, 투항하기까지 국가의 중요시책에 직접 참여했던 인물의 체험기가 아닌가 하는 인상이 짙다. 뿐만 아니라, 『산성일기』의 작자는 문장에도 매우 능하여 역사적 사실을 발단에서 전개, 위기를 거쳐 대단원에 이르는 하나의 단편소설처럼 기술하고 있다. 처음에는 누르하치와 홍타시에 관한 풍자적이며 완만한 필법에서 출발하여 점점 논조(論調)가 강해져서 양국을 오가는 감정이 상대적으로 시소를 타는 듯한 모습을 이룬다 그러다가 30일째인 출성에서의 고비를 지나면서 차차 긴장이 완만해진다. 이처럼 50여일의 긴 시간적 흐름이 마치 한 숨을 몰아쉬는 것 같이 긴박하게 연결되어, 독자로 하여금 굴욕적 망국의 역사적 사실 앞에 울분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결국, 『산성일기』는 역사적 사실의 날줄에, 작자의 병자호란을 보는 심리적 변화의 씨줄을 엮어 짠 한 폭의 피륙이라 할 수 있다.[2]
문학적 가치
이 작품은 역사적 가치보다도, 작품을 통해 작자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시대적 상황의식이 아름다운 필체로 박진감 있게 표현되고 있어 문학적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할 만한 작품이다.[3]
연계 자원 보러 가기 |
• 산성일기 (해독) |
지식 관계망
- 산성일기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인조 | 산성일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산성일기 | 병자호란 | A는 B과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남한산성 | 산성일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청 태종 | 산성일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청 태종 | 송덕비 | A는 B과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산성일기 | 정묘호란 | A는 B과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산성일기 | 소현세자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산성일기 | 봉림대군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산성일기 | 삼전도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산성일기 | 송덕비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산성일기 | 누르하치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산성일기 | 홍타시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산성일기 | 한국학중앙연구원_장서각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산성일기 | 국립중앙도서관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미상, 조선후기 | 산성일기가 작성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197 | 127.054387 | 산성일기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
37.498004 | 127.003670 | 산성일기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08-109쪽.
- ↑ 소재영, "산성일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소재영, "산성일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저서
- 소재영, 『壬丙兩亂과 文學意識』, 韓國硏究院, 1980.
- 남광우, 「산성일기연구」, 『동대어문』1, 정음사, 1971.
- 강한영, 「山城日記」, 『발행지 불명』, 발행년 미상.
- 논문
- 徐 賢, 「山城日記」考, 『韓國語文學硏究』8, Vol.8 No.- , 44-76쪽,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