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약집성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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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3년(세종 15)에 간행된 [[향약]]에 관한 의약서(醫藥書). | 1433년(세종 15)에 간행된 [[향약]]에 관한 의약서(醫藥書). | ||
=='''내용'''== | =='''내용'''== | ||
| + | ===[[향약집성방]] 편찬 목적=== | ||
| + | *1431년 가을에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유효통(兪孝通)]], 전의 감부정 [[노중례|노중례(盧重禮)]], 동 부정 [[박윤덕|박윤덕(朴允德)]]에게 명하여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1433년 6월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1399년(정종 1)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30권의 [[구증|구증(舊症)]]과 [[구방]]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향약]]의 모든 방문들을 수집하고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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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구증]]이 388이던 것이 959로, [[구방]]이 2,803이던 것이 1만706이 되었으며, 그 밖에 [[침구법|침구법(鍼灸法)]] 1,416조, [[향약본초]] 및 [[포제법|포제법(?製法)]] 등을 합하여 85권으로 되었다. [[조선 세종|세종]]이 [[권채|권채(權採)]]에게 서를 명하고, 같은 해 8월전라도·강원도 두 도에서 나누어 간행하게 하였다. 그 뒤 1478년(성종 9)에 복간되고, 1633년(인조 11)에 훈련도감 소활자로 중인되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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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산의 약을 [[당재|당재(唐材)]]라고 부르는 데 대한 우리나라산의 총칭이다. 그런데 [[조선 세종|세종]]은 우리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의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의약 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향약방]]을 종합수집한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게 한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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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향약집성방]]이 중요한 이유=== | ||
| + | 이 책은 그 서명을 특히 [[향약]]이라 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고려 후반기부터 민간 노인들이 사용해 오던 [[향약방]]을 많이 채집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 고유 의학의 전통을 중국에서 수입한 한의방과 융합시켜 독자적 전통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온 자취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편집하기 위한 전 작업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향약]]을 [[당재]]와 비교·연구하고, 또는 각 도와 읍에 분포된 [[향약]]의 실태를 조사하여 채취를 시기에 정하는 『[[향약채취월령]]』을 간행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의 우리 의약 지식은 어느 정도의 학술적 체계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향약 아래에 지역마다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같이 적어서 서로 다른 지역 사람도 능히 알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우리 고전언어의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하고 있다. [[한독의약박물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규장각 도서]]에 소장되어 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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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집성방]] 편찬 목적=== | ===[[향약집성방]] 편찬 목적=== | ||
*1431년 가을에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유효통(兪孝通)]], 전의감정 [[노중례|노중례(盧重禮)]], 동 부정 [[박윤덕|박윤덕(朴允德)]]에게 명하여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1433년 6월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1399년(정종 1)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30권의 [[구증|구증(舊症)]]과 [[구방]]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향약]]의 모든 방문들을 수집하고, 또는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1431년 가을에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유효통(兪孝通)]], 전의감정 [[노중례|노중례(盧重禮)]], 동 부정 [[박윤덕|박윤덕(朴允德)]]에게 명하여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1433년 6월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1399년(정종 1)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30권의 [[구증|구증(舊症)]]과 [[구방]]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향약]]의 모든 방문들을 수집하고, 또는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 | *[[구증]]이 388이던 것이 959로, [[구방]]이 2,803이던 것이 1만706이 되었으며, 그 밖에 [[침구법|침구법(鍼灸法)]] 1,416조, [[향약본초]] 및 [[포제법|포제법( | + | *[[구증]]이 388이던 것이 959로, [[구방]]이 2,803이던 것이 1만706이 되었으며, 그 밖에 [[침구법|침구법(鍼灸法)]] 1,416조, [[향약본초]] 및 [[포제법|포제법(?製法)]] 등을 합하여 85권으로 되었다. [[조선 세종|세종]]이 [[권채|권채(權採)]]에게 서를 명하고, 같은 해 8월전라도·강원도 두 도에서 나누어 간행하게 하였다. 그 뒤 1478년(성종 9)에 복간되고, 1633년(인조 11)에 훈련도감 소활자로 중인되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 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산의 약을 [[당재|당재(唐材)]]라고 부르는 데 대한 우리 나라산의 총칭이다. 그런데 [[조선 세종|세종]]은 우리 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 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여 의약 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향약방]]을 종합수집한 『[[향약집성방]]』을 편집하게 한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 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산의 약을 [[당재|당재(唐材)]]라고 부르는 데 대한 우리 나라산의 총칭이다. 그런데 [[조선 세종|세종]]은 우리 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 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여 의약 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향약방]]을 종합수집한 『[[향약집성방]]』을 편집하게 한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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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집성방]]의 구조=== | ===[[향약집성방]]의 구조=== | ||
| − | *이 책은 모든 질병을 57대강문(大綱門)으로 나누어 그 아래 959조의 소목을 나누고, 각 강문과 조목에 해당되는 병론과 방약들을 출전(出典)과 함께 낱낱이 열거하였다. 그 밖에 권두에는 『[[자생경|자생경(資生經)]]』으로부터 채록한 침구목록이 있으며, 권말에는 [[향약본초]]의 총론 및 각론들이 붙어 있는데, 총론 중에는 [[제품약석포제법|제품약석포제법( | + | *이 책은 모든 질병을 57대강문(大綱門)으로 나누어 그 아래 959조의 소목을 나누고, 각 강문과 조목에 해당되는 병론과 방약들을 출전(出典)과 함께 낱낱이 열거하였다. 그 밖에 권두에는 『[[자생경|자생경(資生經)]]』으로부터 채록한 침구목록이 있으며, 권말에는 [[향약본초]]의 총론 및 각론들이 붙어 있는데, 총론 중에는 [[제품약석포제법|제품약석포제법(諸品藥石?製法)]]이 첨부되어 있다. 57병문들을 총괄하여 보면, 분류방법에 있어 인체 부위를 중심으로 한 병문과 병증을 중심으로 한 병문들이 서로 섞여 있어서, 근세 임상의학의 각 분과별에 대한 계통적 지식을 파악하기는 좀 어려운 느낌이 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 내과 및 전염병·외과·이비인후과·안과·산부인과·소아과 및 치과 등에 이르는 임상 각 과가 거의 망라되어 있어, 종합된 의방서로서 넓은 범위에 걸쳐 자세히 논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인용 서목은 한·당·송·원의 방서가 160여 종이나 된다. 그러나 그 서명들은 『[[의방유취|의방유취(醫方類聚)]]』에 인용된 서목과 거의 일치되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인용된 우리의 고유 의방서들의 이름만을 들어보면 『[[삼화자향약방|삼화자향약방(三和子鄕藥方)]]』·『[[본조경험방|본조경험방(本朝經驗方)]]』·『[[향약구급방|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향약혜민방|향약혜민방(鄕藥惠民方)]]』·『[[향약간이방|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어의촬요방|어의촬요방(御醫撮要方)]]』·『[[동인경험방|동인경험방(東人經驗方)]]』·『[[향약고방|향약고방(鄕藥古方)]]』·『[[제중립효방|제중립효방(濟衆立效方)]]』 등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 내과 및 전염병·외과·이비인후과·안과·산부인과·소아과 및 치과 등에 이르는 임상 각 과가 거의 망라되어 있어, 종합된 의방서로서 넓은 범위에 걸쳐 자세히 논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인용 서목은 한·당·송·원의 방서가 160여 종이나 된다. 그러나 그 서명들은 『[[의방유취|의방유취(醫方類聚)]]』에 인용된 서목과 거의 일치되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인용된 우리의 고유 의방서들의 이름만을 들어보면 『[[삼화자향약방|삼화자향약방(三和子鄕藥方)]]』·『[[본조경험방|본조경험방(本朝經驗方)]]』·『[[향약구급방|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향약혜민방|향약혜민방(鄕藥惠民方)]]』·『[[향약간이방|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어의촬요방|어의촬요방(御醫撮要方)]]』·『[[동인경험방|동인경험방(東人經驗方)]]』·『[[향약고방|향약고방(鄕藥古方)]]』·『[[제중립효방|제중립효방(濟衆立效方)]]』 등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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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집성방]]이 중요한 이유=== | ===[[향약집성방]]이 중요한 이유=== | ||
이 책은 그 서명을 특히 [[향약]]이라 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고려 후반기부터 민간 노인들이 사용해 오던 [[향약방]]을 많이 채집한 데서 우리 고유 의학의 전통을 중국에서 수입한 한의방과 융합시켜 우리 의학의 독자적 전통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온 자취를 넉넉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편집하기 위한 전 작업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향약]]을 [[당재]]와 비교, 연구하고, 또는 각 도 각 읍에 분포된 [[향약]]의 실태를 조사하여 [[향약]]의 채취를 시기에 적절하도록 하는 『[[향약채취월령]]』을 간행하게 함으로써 이 책의 편성과 함께 당시의 우리 의약적 지식은 어느 정도의 학술적 체계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향약]]의 아래에 고유의 향명을 붙이게 한 것은 우리 고전언어의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하고 있다. [[한독의약박물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규장각 도서]]에 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이 책은 그 서명을 특히 [[향약]]이라 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고려 후반기부터 민간 노인들이 사용해 오던 [[향약방]]을 많이 채집한 데서 우리 고유 의학의 전통을 중국에서 수입한 한의방과 융합시켜 우리 의학의 독자적 전통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온 자취를 넉넉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편집하기 위한 전 작업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향약]]을 [[당재]]와 비교, 연구하고, 또는 각 도 각 읍에 분포된 [[향약]]의 실태를 조사하여 [[향약]]의 채취를 시기에 적절하도록 하는 『[[향약채취월령]]』을 간행하게 함으로써 이 책의 편성과 함께 당시의 우리 의약적 지식은 어느 정도의 학술적 체계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향약]]의 아래에 고유의 향명을 붙이게 한 것은 우리 고전언어의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하고 있다. [[한독의약박물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규장각 도서]]에 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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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 =='''지식 관계망'''== | ||
| + |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지식관계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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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 | ||
| + | <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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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http://dh.aks.ac.kr/Encyves/Graph/A033/A033.htm 구급간이방 지식관계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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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을 거리=== | ===더 읽을 거리=== | ||
*논문 | *논문 | ||
| − | **金重權, 「《鄕藥集成方》의 引用文獻 分析」, | + | **金重權, 「《鄕藥集成方》의 引用文獻 分析」, 『서지학연구』35, 한국서지학회, 2006, 183-229쪽. |
| − | **이경록, 「《향약집성방》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 + | **이경록, 「《향약집성방》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醫史學』20, 대한의사학회, 2011, 225-262쪽. |
| − | + | *웹자원 | |
| − | *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 **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분류:한글고문서]] | [[분류:한글고문서]] | ||
| − | [[분류: 문헌 | + | [[분류: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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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 23:00 기준 최신판
|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 |
| 대표명칭 | 향약집성방 |
|---|---|
| 한자표기 | 鄕藥集成方 |
| 유형 | 문헌 |
| 편자 | 유효통(兪孝通) 노중례(盧重禮) 박윤덕(朴允德) |
| 저술시기 | 1433년 |
| 시대 | 조선 |
| 수량 | 85권 30책 |
| 표기문자 | 한문 |
| 소장처 | 한독의약박물관 규장각 |
목차
정의
1433년(세종 15)에 간행된 향약에 관한 의약서(醫藥書).
내용
향약집성방 편찬 목적
- 1431년 가을에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兪孝通), 전의 감부정 노중례(盧重禮), 동 부정 박윤덕(朴允德)에게 명하여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1433년 6월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1399년(정종 1)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30권의 구증(舊症)과 구방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향약의 모든 방문들을 수집하고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1]
-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산의 약을 당재(唐材)라고 부르는 데 대한 우리나라산의 총칭이다. 그런데 세종은 우리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의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차원에서 의약 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향약방을 종합수집한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게 한 것이다.[2]
향약집성방이 중요한 이유
이 책은 그 서명을 특히 향약이라 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고려 후반기부터 민간 노인들이 사용해 오던 향약방을 많이 채집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 고유 의학의 전통을 중국에서 수입한 한의방과 융합시켜 독자적 전통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온 자취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편집하기 위한 전 작업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향약을 당재와 비교·연구하고, 또는 각 도와 읍에 분포된 향약의 실태를 조사하여 채취를 시기에 정하는 『향약채취월령』을 간행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의 우리 의약 지식은 어느 정도의 학술적 체계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향약 아래에 지역마다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같이 적어서 서로 다른 지역 사람도 능히 알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우리 고전언어의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하고 있다. 한독의약박물관과 규장각 도서에 소장되어 있다.[3]
지식 관계망
-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 항목A | 항목 B | 관계 | 비고 |
|---|---|---|---|
| 향약집성방 | 유효통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 향약집성방 | 노중례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 향약집성방 | 박윤덕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 향약제생집성방 | 제생원 |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 A dcterms:publisher B |
| 향약집성방 | 향약제생집성방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향약집성방 | 향약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 향약집성방 | 침구법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 향약집성방 | 포제법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 향약집성방 | 당재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 향약집성방 | 조선 성종 | A는 B에 의해 중간되었다 | A dcterms:publisher B |
| 향약집성방 | 조선 인조 | A는 B에 의해 중간되었다 | A dcterms:publisher B |
| 향약집성방 | 향약방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 향약채취월령 | 향약집성방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향약채취월령 | 향약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 향약채취월령 | 당재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 향약채취월령 | 황자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향약채취월령 | 당약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 향약집성방 | 삼화자향약방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 향약집성방 | 본조경험방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 향약집성방 | 향약구급방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 향약집성방 | 구급간이방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향약집성방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 향약집성방 | 한독의약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 조선 세종 | 향약집성방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간정보
| 시간정보 | 내용 |
|---|---|
| 1399년 | 향약제생집성방이 제생원에서 간행되었다 |
| 1428년 | 향약채취월령 이 반포되었다 |
| 1433년 | 향약집성방이 간행되었다 |
| 1478년 | 향약집성방이 중간되었다 |
| 1633년 | 향약집성방이 중간되었다 |
공간정보
| 위도 | 경도 | 내용 |
|---|---|---|
| 37.462058 | 126.950273 | 향약집성방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었다 |
| 36.970538 | 127.46532 | 향약집성방은 한독의약박물관에 소장되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김두종, "향약집성방",
『한국민족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두종, "향약집성방",
『한국민족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두종, "향약집성방",
『한국민족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金重權, 「《鄕藥集成方》의 引用文獻 分析」, 『서지학연구』35, 한국서지학회, 2006, 183-229쪽.
- 이경록, 「《향약집성방》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醫史學』20, 대한의사학회, 2011, 225-262쪽.
- 웹자원
- 김두종, "향약집성방",
『한국민족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두종, "향약집성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