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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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사가 시작되기 7일전부터 몸과 마음을 엄숙하고 깨끗이 | + | 조선시대 [[제례]]에서 제사가 시작되기 7일전부터 몸과 마음을 엄숙하고 깨끗이 하는 것이다.<ref>문화재청, 『종묘대제』, 문화재청, 2010, 18쪽.</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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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사를 지내기 전 4일 동안은 산재(散齋, 몸이나 행동을 삼가는 일)하고, 다음 3일 동안은 치재(致齋, 몸을 깨끗이 하는 일) | + | 제사를 지내기 전 4일 동안은 산재(散齋, 몸이나 행동을 삼가는 일)하고, 다음 3일 동안은 치재(致齋, 몸을 깨끗이 하는 일)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음식을 간소히 먹고, 문상(問喪)이나 문병(問病)을 가지 않으며 음악도 듣지 않고, 형살(刑殺) 문서에도 서명하지 않는다. |
− | <ref>문화재청, 『종묘대제』, 문화재청, 2010, 18쪽. ;[http://www.jongmyo.net/sub/process/pro_outline.asp 종묘대제]</ref> | + | <ref>문화재청, 『종묘대제』, 문화재청, 2010, 18쪽. ;"[http://www.jongmyo.net/sub/process/pro_outline.asp 종묘대제]", 종묘대제, <html><online style="color:purple">『종묘대제』<sup>online</sup></online></html>, 종묘대제.</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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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4일 (토) 11:28 기준 최신판
재계 (齋戒) |
|
대표명칭 | 재계 |
---|---|
한자표기 | 齋戒 |
유형 | 의례 |
관련개념 | 길례, 제례 |
정의
조선시대 제례에서 제사가 시작되기 7일전부터 몸과 마음을 엄숙하고 깨끗이 하는 것이다.[1]
내용
제사를 지내기 전 4일 동안은 산재(散齋, 몸이나 행동을 삼가는 일)하고, 다음 3일 동안은 치재(致齋, 몸을 깨끗이 하는 일)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음식을 간소히 먹고, 문상(問喪)이나 문병(問病)을 가지 않으며 음악도 듣지 않고, 형살(刑殺) 문서에도 서명하지 않는다. [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왕 | 재계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왕세자 | 재계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종친 | 재계 | A는 B를 참여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백관 | 재계 | A는 B를 참여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제례 | 재계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재계 | 거가출궁 | A는 순서상 B의 뒤이다 | A edm:isNextInSequence B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706년 | 종묘의궤가 편찬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74550 | 126.994100 | 종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1-2에 위치한다 |
주석
- ↑ 문화재청, 『종묘대제』, 문화재청, 2010, 18쪽.
- ↑ 문화재청, 『종묘대제』, 문화재청, 2010, 18쪽. ;"종묘대제", 종묘대제,
『종묘대제』online , 종묘대제.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國朝五禮儀』
- 『世宗實錄五禮儀』
- 김문식ㆍ김지영 외 4명,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 김문식ㆍ송지원, 「국가제례의 변천과 복원」, 『서울 20세기 생활ㆍ문화변천사』, 서울시정개발원, 2001.
- 이욱, 「근대 국가의 모색과 국가의례의 변화-1894~1908년 국가 제사의 변화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95,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 이욱, 「조선전기 유교국가의 성립과 국가제사의 변화」, 『한국사연구』 118, 한국사연구회,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