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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참고문헌'''== | ||
===인용 및 참조=== | ===인용 및 참조=== | ||
− | * | + | * [[사직서의궤|『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
* 김동욱, 『종묘와 사직』, 대원사, 1990. | * 김동욱, 『종묘와 사직』, 대원사, 199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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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장소]] | [[분류:장소]] |
2017년 10월 28일 (토) 20:40 기준 최신판
사직단(社稷壇) | |
대표명칭 | 사직단 |
---|---|
한자표기 | 社稷壇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89 |
|
정의
조선시대 사신(社神)과 직신(稷神)에게 제사지내기 위하여 만든 제단과 사당이다.
내용
농경 국가였던 조선에서 왕이 국가의 편안함을 기원하기 위하여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장소이다. 조선시대 사직단을 관장하던 관청은 사직서(社稷署)였다.
역사
1396년(태조 5) 궁궐이 준공되면서 함께 조성되었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경복궁 동쪽에 종묘(宗廟),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1395년(태조 4) 공사를 착수하여 단(壇)이 완성되자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신실(神室)과 신문(神門)을 세웠다. 사직단은 동서양단(東西兩壇)으로, 동단에는 국사(國社:토지신), 서단에는 국직(國稷:곡식신)을 모셨다. 단에는 주척(周尺)으로 높이 2.5척, 너비 1척의 석주(石柱)를 각기 세워 후토씨(后土氏)와 후직씨(后稷氏)를 배향하였다.[1] 사직단에서 지내는 제사는 종묘와 함께 길례 대사의 하나로 국가의 중요한 의례였다. 제례 절차는 종묘와 유사하지만 신위가 국사, 국직, 후토, 후직에 한정되었으므로 제사 인원이 종묘보다 적을 뿐이다.[2] 제사는 2월과 8월 그리고 동지와 섣달 그믐에 지냈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나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그리고 풍년을 비는 기곡제들을 이 곳에서 지냈다.[3]
현재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린 뒤 사직단에서 지내던 제례도 끝났다. 1902년 사직단과 사직단의 임무를 맡는 사직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사직(社稷)을 끊고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사직단의 격을 낮추고 공원으로 삼았다.[4] 1940년 정식으로 공원이 된 사직공원이 옛 사직단의 자리이다. 1960년대에는 도시 계획으로 정문이 뒤로 물러나고, 1970년대에는 도서관, 동사무소, 수영장 등이 들어섰다. 1985년에 와서 사직단을 복원하였으나 영역이 줄어든 상태로 일부만 복원되었다. 사직단은 사적 제121호, 사직단 정문이 보물 제177호로 지정되었다.[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고종대례의궤 | 사직단(社稷壇)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제례 | 사직단(社稷壇) | A는 B에서 거행되었다 | A edm:happenedAt B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75693 | 126.967627 | 사직단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1-28에 위치한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사직단",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네이버. - ↑ 김동욱, 『종묘와 사직』, 대원사, 1990, 96쪽.
- ↑ "사직단", 문화재 검색,
『문화재청』online , 문화재청. - ↑ 사직단", 문화재 검색,
『문화재청』online , 문화재청. - ↑ 김동욱, 『종묘와 사직』, 대원사, 1990, 97~99쪽.
- ↑ 문화재청(http://www.cha.go.kr/).
- ↑ 문화재청(http://www.cha.go.kr/).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 김동욱, 『종묘와 사직』, 대원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