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오례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체제 및 내용)
 
(사용자 5명의 중간 판 2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분류:한글고문서_문헌]]
+
{{문헌정보
 +
|사진=old_book.png
 +
|사진출처=
 +
|대표명칭=국조오례의
 +
|한자표기=國朝五禮儀
 +
|영문명칭=
 +
|이칭=
 +
|유형=문헌
 +
|저자=정척
 +
|역자=
 +
|편자=신숙주
 +
|저술시기=1474년
 +
|간행시기=
 +
|간행처=
 +
|간행지=
 +
|간행인=
 +
|시대=조선
 +
|수량=8건 6책
 +
|크기=
 +
|판본=
 +
|판사항=
 +
|형태사항=
 +
|표기문자=
 +
|소장처=
 +
|청구기호=
 +
|지정번호=
 +
|지정일=
 +
}}
 +
==정의==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는 조선 전기 [[신숙주 | 신숙주(申叔舟)]]·정척(鄭陟)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예전(禮典)이다.
 +
 
 +
==내용==
 +
===『국조오례의』편찬===
 +
건국 초 조선왕실은 국가 사전의 개혁과 정비가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에 태종 조에 오례 중 일단 길례에 관하여 서례(序禮)와 의식을 규정하였다.<ref>김해영, 「조선 초기 예제(禮制) 연구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편찬」, 『朝鮮時代史學報』Vol.55, 조선시대사학회, 2010, 73-74쪽. </ref> [[조선 세종|세종]]이 즉위한 후 [[허조]] 등에게 명하여 오례에 관한 것을 저술하게 하였다. 허조 등이 고금의 예서(禮書)와 『홍무예제(洪武禮制)』 등을 참작하고 『두씨통전(杜氏通典)』을 모방하여 편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중간에 [[조선 세종 | 세종]]이 승하하여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실록에 싣는 것에 그쳤다.<ref>홍현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512 국조오례의]",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이 때 실린 [[오례의 | 『오례의』]]는 태종조의 길례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예제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후에 『국조오례의』의 바탕이 되었다. <ref>김해영, 「조선 초기 예제(禮制) 연구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편찬」, 『朝鮮時代史學報』Vol.55, 조선시대사학회, 2010, 73-74쪽. </ref>
 +
[[조선 세조 | 세조]] 또한 [[강희맹 | 강희맹(姜希孟, 1424~1483)]] 등을 통해 『홍무예제洪武禮制』를 비롯한 고금의 각종 예서들을 참작하여 편찬하도록 하였지만, 이 또한 완성하지 못하였다. 결국, 성종대인 1474년에 이르러 [[신숙주]]・[[정척]] 등이 오례를 중심으로 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완성하였다. <ref>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61208&cid=58728&categoryId=58728 국조오례의]", 한국일생의례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국립민속박물관. </ref>
 +
 
 +
===체제 및 내용===
 +
『국조오례의』의 체재는 오례, 즉 길례吉禮・가례嘉禮・빈례殯禮・군례軍禮・흉례凶禮로 나누어 예식 별로 서례와 의식으로 나누어 세부 조목을 마련하였다. 길례 56개 조목, 가례 50개 조목, 빈례 6개 조목, 군례 7개 조목, 흉례 91개 조목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8권 5책으로 간행되었다. <ref>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61208&cid=58728&categoryId=58728 국조오례의]", 한국일생의례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국립민속박물관. </ref>
 +
 
 +
==지식 관계망==
 +
===관계정보===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width:100%; text-align:center;"
 +
!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
| [[국조오례의]] || [[신숙주]]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
 +
| [[국조오례의]] || [[정척]]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
 +
| [[국조오례의]] ||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
| [[국조오례의]] ||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
| [[국조오례의]] || [[종묘의궤]]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
| [[세종실록 오례의]] || [[국조오례의]]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
| [[세종실록 오례의]] || [[허종]]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
 +
| [[조선 세종]] || [[오혜의]]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
|}
 +
 
 +
==주석==
 +
<references/>
 +
 
 +
==참고문헌==
 +
===더 읽을 거리===
 +
*논문
 +
**박수정, 「《국조오례의》 의례 시행과 개정 논의」, 『정신문화연구』 vol.40,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
**안유경,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와 그 속보(續補)편의 편찬과정 및 내용」, 『유교문화연구』,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0.
 +
**장동우, 「《國朝五禮儀》에 규정된 大夫·士·庶人의 四禮에 관한 고찰」, 『한국학연구』 vol.31,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3.
 +
**임민혁, 「조선 초기 국가의례와 왕권 :  《국조오례의》를 중심으로」, 『역사와실학』 vol.43, 역사실학회, 2010.
 +
===유용한 정보===
 +
*김문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2&aid=0000058825 국조오례의]", 『경향신문』, 작성일: 2004년 03월 20일.
 +
 
 +
 
 +
 
 +
[[분류:한글고문서]]
 +
[[분류 : 문헌]]

2017년 11월 24일 (금) 14:35 기준 최신판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Old book.png
대표명칭 국조오례의
한자표기 國朝五禮儀
유형 문헌
저자 정척
편자 신숙주
저술시기 1474년
시대 조선
수량 8건 6책


정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는 조선 전기 신숙주(申叔舟)·정척(鄭陟)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예전(禮典)이다.

내용

『국조오례의』편찬

건국 초 조선왕실은 국가 사전의 개혁과 정비가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에 태종 조에 오례 중 일단 길례에 관하여 서례(序禮)와 의식을 규정하였다.[1] 세종이 즉위한 후 허조 등에게 명하여 오례에 관한 것을 저술하게 하였다. 허조 등이 고금의 예서(禮書)와 『홍무예제(洪武禮制)』 등을 참작하고 『두씨통전(杜氏通典)』을 모방하여 편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중간에 세종이 승하하여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실록에 싣는 것에 그쳤다.[2] 이 때 실린 『오례의』는 태종조의 길례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 예제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후에 『국조오례의』의 바탕이 되었다. [3] 세조 또한 강희맹(姜希孟, 1424~1483) 등을 통해 『홍무예제洪武禮制』를 비롯한 고금의 각종 예서들을 참작하여 편찬하도록 하였지만, 이 또한 완성하지 못하였다. 결국, 성종대인 1474년에 이르러 신숙주정척 등이 오례를 중심으로 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완성하였다. [4]

체제 및 내용

『국조오례의』의 체재는 오례, 즉 길례吉禮・가례嘉禮・빈례殯禮・군례軍禮・흉례凶禮로 나누어 예식 별로 서례와 의식으로 나누어 세부 조목을 마련하였다. 길례 56개 조목, 가례 50개 조목, 빈례 6개 조목, 군례 7개 조목, 흉례 91개 조목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8권 5책으로 간행되었다. [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국조오례의 신숙주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국조오례의 정척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국조오례의 왕세자 흉배 패물 발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국조오례의 왕세자 가례 차비관 발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국조오례의 종묘의궤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세종실록 오례의 국조오례의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세종실록 오례의 허종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조선 세종 오혜의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주석

  1. 김해영, 「조선 초기 예제(禮制) 연구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편찬」, 『朝鮮時代史學報』Vol.55, 조선시대사학회, 2010, 73-74쪽.
  2. 홍현식, "국조오례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김해영, 「조선 초기 예제(禮制) 연구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편찬」, 『朝鮮時代史學報』Vol.55, 조선시대사학회, 2010, 73-74쪽.
  4. "국조오례의", 한국일생의례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국립민속박물관.
  5. "국조오례의", 한국일생의례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국립민속박물관.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박수정, 「《국조오례의》 의례 시행과 개정 논의」, 『정신문화연구』 vol.40,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 안유경,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와 그 속보(續補)편의 편찬과정 및 내용」, 『유교문화연구』,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0.
    • 장동우, 「《國朝五禮儀》에 규정된 大夫·士·庶人의 四禮에 관한 고찰」, 『한국학연구』 vol.31,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3.
    • 임민혁, 「조선 초기 국가의례와 왕권 : 《국조오례의》를 중심으로」, 『역사와실학』 vol.43, 역사실학회, 2010.

유용한 정보

  • 김문식, "국조오례의", 『경향신문』, 작성일: 2004년 0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