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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궁중기록화 복식 직령02 민속박물관.jpg | 류인서(?~1644)묘 출토 직령.<ref>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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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궁중기록화 복식 직령03 이조년 네이버.jpg | 이조년(李兆年, 1260~1343)의 초상.<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5937&cid=46621&categoryId=46621 이조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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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 ===영상=== | ||
− | ==주석== | + | =='''주석'''== |
<references/> | <references/> | ||
− | ==참고문헌== | + | =='''참고문헌'''== |
===인용 및 참조=== | ===인용 및 참조=== | ||
− | +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 |
− | + | * 김미자, 「民庶 便服袍의 옷깃에 대한 硏究」, 『대한가정학회지』 제14권 1호, 대한가정학회, 1976. | |
− | + | * 金美子, 「直領에 관한 硏究」, 『服飾』 5권, 한국복식학회, 1981. | |
− | + | * 김신애, 「조선시대 남자 포에 나타난 무의 형태변화에 관한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 |
+ | * 李善宰, 「朝鮮時代 儒敎思想과 儀禮服硏究-男子袍를 中心으로-」, 『服飾』 16권, 한국복식학회, 1991. | ||
+ | * 이은주, 「道袍 양식의 발전에 대한 갈등․기능론적 분석」,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 ||
+ | * 이주영ㆍ권영숙, 「조선시대 직령의 유형과 특성」, 『服飾』 53권 6호, 한국복식학회, 2003. | ||
+ | * 李珠英, 「조선시대 직령(直領) 연구」,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
+ | * 李珠英ㆍ權瑛淑, 「조선시대 직령(直領)제도-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복식문화연구』 8권 2호, 복식문화학회, 2000. | ||
[[분류:궁중기록화]] | [[분류:궁중기록화]] | ||
[[분류:복식]] | [[분류:복식]] |
2017년 12월 18일 (월) 20:33 기준 최신판
직령 (直領) |
|
대표명칭 | 직령 |
---|---|
한자표기 | 直領 |
구분 | 의복 |
착용신분 | 왕, 왕세자, 왕세손, 문무백관 |
착용성별 | 남성 |
정의
조선시대 남자들이 평상시에 착용한 포(袍)의 하나로 왕세자의 관례에도 착용하였다.[1]
내용
직령(直領)은 '곧은 깃'을 의미하기도 하고, 일반 백성부터 왕까지 두루 착용한 포(袍)를 말하기도 한다. 직령은 왕세자에게 경서(經書)를 강론하던 자리에 착용하는 왕세자의 서연복(書筵服)이자 관례에 착용하는 옷이며, 사대부(士大夫)가 집에 한가히 있을 때 착용하던 연거복(燕居服)이나 궁에 출입할 때 입는 출입복(出入服), 무관의 상복(常服)으로 착용되었다. 1884년(고종 21)과 1894년(고종 31)의 사복개혁으로 소매가 넓은 다른 포와 함께 폐지되었으나 순종은 왕세자 시절에 관례복으로 입었다. 또한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별감, 향리의 상복(常服) 또는 상복(喪服)으로도 착용되었다.[2]
직령의 형태는 단령(團領)이나 답호(褡穫)와 유사한데, 옷깃이 곧은 깃인 점만 단령과 다르며, 소매가 긴 점만 답호와 다르다. 무의 형태 변화는 단령이나 답호와 거의 같은 양식으로 변화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소매가 좁고 옷깃이 좁은 목판깃이고, 무는 여러번 접은 형태이며 옆이 트였다. 조선 중기에는 옷깃은 칼깃이고 소매가 넓어졌고, 무는 직사각형의 형태를 사다리꼴로 접은 형태로 바뀌었다. 조선 후기에는 무를 뒤로 젖혀 입었고, 조선 말기에는 깃머리가 완만한 형태의 둥그레깃으로 바뀌며, 소매 넓이는 넓고, 무는 완전히 뒤로 젖혀 길에 무의 위쪽을 꿰매고 고정시켰다. 1387년 (고려 우왕 13) 6월 명의 제도에 기준하여 관복을 개정할 때 직령을 착용할 수 있었던 계급은 서민과 천민 등 하층계급이었다. 그러나 고려 말 대제학을 지낸 이조년(李兆年)(1260~1343)과 아들 이포(李褒)의 영정을 보면 머리에 발립을 쓰고 직령에 허리띠를 띠고 화를 신어 당시 상류계급에서도 직령을 입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3] 직령의 옆에 붙어있던 무가 뒷자락 안으로 들어가서 고정되어 이중 뒷자락이 되면서 도포가 만들어졌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왕 | 직령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 | 직령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백관 | 직령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일반 백성 | 직령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의 편복 | 직령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편복 | 직령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관례복 | 직령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백관의 편복 | 직령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직령 | 갓 | A는 B와 함께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61쪽.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61~662쪽.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61~662쪽.
- ↑ 이은주, 「道袍 양식의 발전에 대한 갈등․기능론적 분석」,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25, 115쪽.
- ↑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 ↑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 ↑ "이조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 김미자, 「民庶 便服袍의 옷깃에 대한 硏究」, 『대한가정학회지』 제14권 1호, 대한가정학회, 1976.
- 金美子, 「直領에 관한 硏究」, 『服飾』 5권, 한국복식학회, 1981.
- 김신애, 「조선시대 남자 포에 나타난 무의 형태변화에 관한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 李善宰, 「朝鮮時代 儒敎思想과 儀禮服硏究-男子袍를 中心으로-」, 『服飾』 16권, 한국복식학회, 1991.
- 이은주, 「道袍 양식의 발전에 대한 갈등․기능론적 분석」,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 이주영ㆍ권영숙, 「조선시대 직령의 유형과 특성」, 『服飾』 53권 6호, 한국복식학회, 2003.
- 李珠英, 「조선시대 직령(直領) 연구」,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李珠英ㆍ權瑛淑, 「조선시대 직령(直領)제도-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복식문화연구』 8권 2호, 복식문화학회,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