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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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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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장서각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에서 언해된 의학서 7건이 소개되었다. 조선 전기에 가난한 백성들은 의원의 진료를 받기 어려웠으며 어려운 한문으로 된 의서를 읽지도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의서를 언해하여 보급할 수 있게 한 [[훈민정음]]의 창제는 누구나 쉽게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의료의 대혁신이었다. 전염병, 출산, 식품, 종기 등 다양한 질병을 비롯하여 침과 뜸 같은 치료법까지 의료 전반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구황을 이기는 방법, 말의 병과 여러가지 증상, 고아의 보호 등 한글로 번역된 여러 분야의 서적을 통해 백성의 삶의 질이 한층 나아질 수 있었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78쪽.</ref>
  
2016 장서각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의 전시에서 학봉(鶴峰) [[김성일|김성일(金誠一)]] 종가(宗家) 소장 고문헌 5건이 소개되었다.<ref>뒤이어 나오는 ''''내용''''과 ''''관련 항목''''의 전시자료 5건으로서, 유형별로는 고문서 3건과 고서 2건으로 나뉜다. 전시전의 도록 자료는 다음과 같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ref> 시대를 이어 면면이 이어져 온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문화를 이 문서 속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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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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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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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우리나라의 의서는 대체로 중국의 의서를 기본으로 우리의 사정을 참고하여 다시 편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한자를 사용하는 전문서인 의서에 일반 백성은 접근할 수 없었다. 문자로 인해 접근 자체가 어려웠던 의료 현실에서 [[훈민정음]]의 창제는 모든 백성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만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8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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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의서 언해본의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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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은 [[김순몽]]등에게 명하여  [[온역|온역(溫疫)]]의 치료에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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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전을 모아 『[[간이벽온방|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을 간행하였고, 동시에 한글로 언해하였다.  [[홍귀달|홍귀달(洪貴達, 1438~1504)]]은 『[[구급이해방|구급이해방(救急易解方)]]』을 지어 부녀자나 아이들도 책을 보고 치료방법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 선조]]는 [[허준]]에게 명하여 한글로 된 의학서인 『[[언해태산집요]]』, 『[[언해두창집요]]』, 『[[언해구급방]]』 등을 편찬하도록 하였다. 이 언해본 의서들은 『[[동의보감]]』편찬의 밑거름이 되었다. 왕실 여성들이 사용하기 위해 『[[임산예지법]]』과 『[[동의보감내경편언해]]』 등이 편찬되었고, 백성들의 한약 제조 및 복용 지침서인 『[[언해납약증치방]]』도 편찬되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84쪽.</ref>
  
====학봉 김성일 가문 소장 고문헌의 자료적 가치와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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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해두창집요]]』===
학봉(鶴峰) [[김성일|김성일(金誠一)]]은 서애(西厓) [[유성룡|유성룡(柳成龍)]], 한강(寒岡) [[정구|정구(鄭逑)]], 월천(月川) [[조목|조목(趙穆)]]함께 퇴계(退溪) [[이황|이황(李滉)]]의 대표적인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언급된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김성일]]은 퇴계를 종장으로 하는 영남학파의 중심을 담당하였으며, 그로부터 이어진 퇴계의 학맥은 경당(敬堂) [[장흥효|장흥효(張興孝)]], 석계(石溪) [[이시명|이시명(李時明)]], 갈암(葛庵) [[이현일|이현일(李玄逸)]], 밀암(密庵) [[이재|이재(李裁)]], 대산(大山) [[이상정|이상정(李象靖)]], 손재(損齋) [[남한조|남한조(南漢朝)]], 정재(定齊) [[류치명|류치명(柳致明)]]을 거쳐 김성일의 11대손인 서산(西山) [[김흥락|김흥락(金興洛)]]에 까지 연결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의 줄기를 잇는 역할을 하였던 탓에 그가 속한 [[의성 김씨]] 가문은 [[유성룡]]의 [[풍산 류씨]] 가문과 함께 영남을 대표하는 사대부 가문으로서 조선왕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가의 전통과 문화를 훌륭히 계승해 오고 있다.
+
[[허준]][[조선 선조]]의 명을 받아  [[두창]](천연두)과 관련된 치료법을 저술한 것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의료 대중화에 고심했던 [[조선 선조]]의 애민의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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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red">2016 장서각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에 전시된 5편의 [[의성김씨 학봉종택]] 소장 고문헌들 또한 그러한 의성 김씨 학봉 종가의 문화적 일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근거에 해당한다.</font> ☞ 자기 논리에 자신이 없을 때 강변하기 위해 쓰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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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
+
===[[언해태산집요]]===
전시 자료 중 '''[[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는 [[진주전투|임진왜란]]이라는 큰 난리 가운데서도 위정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한편으로는 집에 있을 아내를 걱정하는 따뜻한 가장으로서의 김성일의 일면을 보여준다. 경상우도관찰사라는 높은 직위에 있었음에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자신의 가문에 곡식을 보내지 않고 그에 대해 아내에게 당부하는 김성일의 모습을 통해 공직자로서의 참다운 자세를 상기해 볼 수 있다.  
+
[[허준]][[조선 선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산부인과 계열의 의학서이다. 기존에 산부인과 계통의 의학서들이 있었으나. 모두 한문으로 쓰여 부녀자가 보기에는 어려웠으므로 이 책을 편찬하게 되었다. 산부인과와 관련된 질병의 증세와 처방이 한문과 언해문으로 실려있다.
  
====[[학봉 행장 언해]]====
+
===[[태교신기언해]]===
전시 자료 중 '''[[학봉 행장 언해]]'''는 김성일의 7대손인 [[김주국]]이 다섯째 딸을 위해 1617년 10월 한강(寒岡) [[정구|정구(鄭逑)]]에 의해 지어진 [[학봉행장]] 한문본을 한글로 다시 옮긴 것이다. 선조의 훌륭한 삶을 본받아 딸이 부끄럼없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유한규]]의 아내 [[사주당이씨]]가 한문을 짓고 아들인 [[유희]]가 언해를 한 태교 전문 의학서이다. 여타 언해본들과 마찬가지로 한 문장씩 떼어서 먼저 한글로 토를 달고, 이어서 우리말로 옮기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저술된 최초의 태교전문서로서 이론과 실제(사주당이씨의 경험)를 구비하여 태교의 중요성과 방법을 체계화한 저술로 평가된다.
  
====[[김주국의 편지]]====
+
===[[임산예지법]]===
'''[[김주국의 편지]]'''는 아들 [[김광찬]]이 일찍 죽고 혼자가 된 며느리 [[진성이씨|진성이씨(眞城李氏)]]에게 [[김주국]]이 보낸 편지로서, 불행한 상황에 처한 며느리를 다독이는 한편 종가의 며느리로서 집안을 잘 보전해나갈 것에 대한 당부를 서술하고 있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한 개인이 스스로의 슬픔을 억누르고 며느리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동시에 가문의 전통을 보전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
임신한 여인이 출산 전후에 숙지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한 자료이다. 왕실의 출산은 국가의 명운을 짊어질 왕위 계승자를 생산하는 의식이므로 왕실여성의 삶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임산예지법]]은 조선 왕실의 출산 지침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라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김광찬·김주국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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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내경편언해]]===
'''[[김광찬·김주국의 편지]]'''는 죽음을 예감하고 아내 [[진성이씨]]에게 당부의 이야기를 남긴 [[김광찬]]의 애틋한 마음과, 그의 죽음 이후 며느리의 슬픔을 다독이고자 한 시아버지 [[김주국]]의 따뜻한 목소리가 동시에 기록되어 있는 자료이다. 대산(大山) [[이상정|이상정(李象靖)]]의 제자로서 영민하다고 일컬어졌던 [[김광찬]]을 떠나보내며, 안타까워하고 아파했을 아버지와 아내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의 「[[내경편]]」을 언해하여 필사한 책이다. 의녀 등 왕실에서 『[[동의보감]]』을 습득하고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자초학]]====
+
===[[구급간이방]]===
'''[[여자초학]]'''은 [[김광찬]]의 아들 [[김종수]]가 그의 맏딸을 위해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마음과 몸가짐을 강조하고자 한글로 쓴 책이다.  
+
[[윤호]] 등이 [[조선 성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구급 관련 의학서이다. 일반 백성들도 활용해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방문마다 한글로 언해를 덧붙였다. 이 책은 구급방서 중에서 가장 완비된 것으로 질병을 중풍과 두통 등 127종으로 나누어 그 치료 방문을 모아 엮었다. 조선 초기의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의서 중 하나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학봉종택 소장 자료들의 내용상 특징과 의의====
+
===『[[언해납약증치방]]』===
5편의 [[의성김씨 학봉종택]] 소장 고문헌들은 모두 사대부 가문의 후손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와 윤리적 태도를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봉 [[김성일]]이라는 큰 인물을 위시하여 그의 후손들인 [[김주국]], [[김광찬]], [[김종수]] 또한 사대부 가문의 일원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한 삶의 철학을 몸소 견지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5편의 고문헌에 담긴 내용 외에도 현재 [[의성김씨 학봉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학봉 안경|학봉이 썼던 안경]], [[학봉 패도|학봉이 차고 다녔던 칼]], [[학봉 유서통|선조 임금으로부터 학봉이 받았던 유서를 보관했던 통]] 등의 유물들을 살펴봄으로써 조선 중기를 살았던 유학자로서의 [[김성일]]의 삶을 되돌아볼 있다.
+
[[납약|납약(臘藥)]]의 효능 및 납약을 복용할 때 피해야 하는 사항 등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청심원#우황청심원|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청심원#구미청심원|구미청심원(九味淸心元)]], [[소합원|소합원(蘇合元)]], [[지보단|지보단(至寶丹)]] 등 37종의 [[납약]]이 소개되어 있다. 각각의 [[납약]] 이름 아래에 약의 효능과 복용법을 한문으로 기술한 뒤, 언해문을 덧붙였다. 한문 뒤에 언해문을 병기한 것은 뜻밖의 다급한 상황에 여인들이 [[납약]]을 제대로 활용할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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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html>
<!-- =='''관련 항목'''== -->
 
====중심요소====
 
* 전시자료: [[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
 
* 전시자료: [[김주국의 편지]]
 
* 전시자료: [[김광찬·김주국의 편지]]
 
* 전시자료: [[학봉 행장 언해]]
 
* 전시자료: [[여자초학]]
 
  
====문맥요소====
+
===중심요소===
* Actor-인물: [[김성일]]
+
* 전시자료: [[언해두창집요]]
* Actor-인물: [[김주국]]
+
* 전시자료: [[언해태산집요]]
* Actor-인물: [[김광찬]]
+
* 전시자료: [[태교신기언해]]
* Actor-인물: [[김종수]]
+
* 전시자료: [[임산예지법]]
* Concept-개념: [[의성김씨]]
+
* 전시자료: [[동의보감내경편언해]]
* Place-유적: '''[[의성김씨 학봉종택]]''' <span style="color: green;">'''(3차원 가상현실 제공)'''</span>
+
* 전시자료: [[구급간이방]]
* Event-사건: [[진주전투]]
+
* 전시자료: [[언해납약증치방]]
* Object-문헌: [[학봉 유서]](김성일을 관찰사에 임명하는 선조 임금의 교서)
 
* Object-유물: [[학봉 안경]]
 
* Object-유물: [[학봉 패도]]
 
* Object-유물: [[학봉 유서통]]
 
  
====관계정보==== <!-- ===관련 내용=== -->
+
===문맥요소===
{|class="wikitable sortable"
+
* Actor-인물: [[허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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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tor-인물: [[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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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tor-인물: [[조선 선조]]
 +
* Actor-인물: [[조선 성종]]
 +
* Actor-인물: [[사주당이씨]]
 +
* Actor-인물: [[유희]]
 +
* Actor-인물: [[임원준]]
 +
* Concept-개념: [[청심원]]
 +
* Concept-개념: [[납약]]
 +
* Concept-개념: [[소합원]]
 +
* Concept-개념: [[지보단]]
 +
* Event-사건: [[임진왜란]]
 +
* Object-문헌: [[창진집]]
 +
* Object-문헌: [[태산집]]
 +
* Object-문헌: [[구급방]]
 +
* Object-문헌: [[의방유취]]
 +
* Object-문헌: [[동의보감]]
 +
* Actor-단체: [[내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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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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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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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NAME}}||[[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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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 [[동의보감내경편언해]]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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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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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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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2년 || [[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가 작성되었다.
+
| 1434년 || [[노중례]]가 [[태산집]]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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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5년 || [[임원준]]이 [[의방유취]]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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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시기 || [[임원준]]이 [[창진집]]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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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6년 || [[임원준]]이 [[구급방]]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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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9년  || [[임원준]], [[윤호]] 등이 [[구급간이방]]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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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년 || [[조선 선조]]가 [[언해태산집요 편찬]]을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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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1년 || [[조선 선조]]가 [[언해두창집요 편찬]]을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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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 [[김주국의 편지]]가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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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8년 || [[허준]]이 [[언해두창집요]]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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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1767년 || [[김광찬·김주국의 편지]]가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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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8년 || [[허준]]이 [[언해태산집요]]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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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0년 || [[학봉 행장 언해]]가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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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 [[언해납약증치방]]이 저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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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 [[여자초학]]이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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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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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 [[임산예지법]]이 저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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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 || [[동의보감내경편언해]]가 필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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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시각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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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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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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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구급간이방언해.jpg | 구급간이방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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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안동 학봉 김성일 종가: 의리와 충절의 400년』 저자 이해영 인터뷰(게시일: 2015.05.28.)</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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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안동 학봉 김성일 종가: 의리와 충절의 400년』 저자 이해영 인터뷰(게시일: 2015.05.28.)</b></p-->
 
</html>
 
  
 
==주석==
 
==주석==
 
<references/>
 
<references/>
  
==참고 자료==
+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더 읽을 거리===
 
*단행본
 
*단행본
**김덕현,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124689 『안동 선비마을, 열두 검제』](한국학중앙연구원, 2016)
+
**신동원, 『동의보감과 동아시아 의학사』, 들녘, 2015.
**김미영,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3043807 『학봉 김성일, 충군애민의 삶을 살다』](예문서원, 2016)
+
===유용한 정보===
**김영조,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594781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얼레빗, 2015)
+
*신동원, "[http://jsg.aks.ac.kr/home/academy/generalView.do?searchCondition=&searchWord=&page=1&idx=35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을 치료하다]", 장서각 아카데미, <html><online style="color:purple">『장서각』<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윤천근,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850 『안동의 종가』](지식산업사, 2001)
 
**이연자,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9767 『천년의 전통과 맥을 이어가는 명문 종가 이야기』](컬처라인, 2004)
 
**이해영,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3043807 『학봉 김성일의 생각과 삶』](한국국학진흥원, 2006)
 
**이해영,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98704 『의리와 충절의 400년, 안동 학봉 김성일 종가』](예문서원, 2011)
 
*논문
 
**권오영,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0908647&dir_id=0&field=0&unFold=false&gk_adt=0&sort=0&qvt=1&query=%ED%95%99%EB%B4%89%20%EA%B9%80%EC%84%B1%EC%9D%BC&gk_qvt=0&citedSearch=false&page.page=2&ndsCategoryId=10103&library=97 「학봉 김성일과 안동지역의 퇴계학맥」], 『한국의철학』제28집, 경북대학교퇴계연구소, 2000.
 
**권오영,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11175116&dir_id=0&field=0&unFold=false&gk_adt=0&sort=0&qvt=1&query=%ED%95%99%EB%B4%89%20%EA%B9%80%EC%84%B1%EC%9D%BC&gk_qvt=0&citedSearch=false&page.page=2&ndsCategoryId=10127&library=157 「학봉 김성일의 학문성향과 역사의식」], 『민족문화』제25집, 한국고전번역원, 2002.
 
**정상균, [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41457116&dir_id=0&field=0&unFold=false&gk_adt=0&sort=0&qvt=1&query=%ED%95%99%EB%B4%89%20%EA%B9%80%EC%84%B1%EC%9D%BC&gk_qvt=0&citedSearch=false&page.page=1&ndsCategoryId=10310&library=97 「임진년 진주대첩과 학봉 김성일」], 『경남문화연구소보』제30호,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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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 22:19 기준 최신판

개요

2016 장서각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에서 언해된 의학서 7건이 소개되었다. 조선 전기에 가난한 백성들은 의원의 진료를 받기 어려웠으며 어려운 한문으로 된 의서를 읽지도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의서를 언해하여 보급할 수 있게 한 훈민정음의 창제는 누구나 쉽게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의료의 대혁신이었다. 전염병, 출산, 식품, 종기 등 다양한 질병을 비롯하여 침과 뜸 같은 치료법까지 의료 전반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구황을 이기는 방법, 말의 병과 여러가지 증상, 고아의 보호 등 한글로 번역된 여러 분야의 서적을 통해 백성의 삶의 질이 한층 나아질 수 있었다. [1]

내용

의료의 대중화

조선시대의 우리나라의 의서는 대체로 중국의 의서를 기본으로 우리의 사정을 참고하여 다시 편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한자를 사용하는 전문서인 의서에 일반 백성은 접근할 수 없었다. 문자로 인해 접근 자체가 어려웠던 의료 현실에서 훈민정음의 창제는 모든 백성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만든 획기적인 사건이었다.[2]

조선시대 의서 언해본의 편찬

조선 중종김순몽등에게 명하여 온역(溫疫)의 치료에 필요한 처방전을 모아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을 간행하였고, 동시에 한글로 언해하였다. 홍귀달(洪貴達, 1438~1504)은 『구급이해방(救急易解方)』을 지어 부녀자나 아이들도 책을 보고 치료방법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 선조허준에게 명하여 한글로 된 의학서인 『언해태산집요』, 『언해두창집요』, 『언해구급방』 등을 편찬하도록 하였다. 이 언해본 의서들은 『동의보감』편찬의 밑거름이 되었다. 왕실 여성들이 사용하기 위해 『임산예지법』과 『동의보감내경편언해』 등이 편찬되었고, 백성들의 한약 제조 및 복용 지침서인 『언해납약증치방』도 편찬되었다.[3]

언해두창집요

허준조선 선조의 명을 받아 두창(천연두)과 관련된 치료법을 저술한 것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의료 대중화에 고심했던 조선 선조의 애민의식을 엿볼 수 있다.

언해태산집요

허준조선 선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산부인과 계열의 의학서이다. 기존에 산부인과 계통의 의학서들이 있었으나. 모두 한문으로 쓰여 부녀자가 보기에는 어려웠으므로 이 책을 편찬하게 되었다. 산부인과와 관련된 질병의 증세와 처방이 한문과 언해문으로 실려있다.

태교신기언해

유한규의 아내 사주당이씨가 한문을 짓고 아들인 유희가 언해를 한 태교 전문 의학서이다. 여타 언해본들과 마찬가지로 한 문장씩 떼어서 먼저 한글로 토를 달고, 이어서 우리말로 옮기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저술된 최초의 태교전문서로서 이론과 실제(사주당이씨의 경험)를 구비하여 태교의 중요성과 방법을 체계화한 저술로 평가된다.

임산예지법

임신한 여인이 출산 전후에 숙지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한 자료이다. 왕실의 출산은 국가의 명운을 짊어질 왕위 계승자를 생산하는 의식이므로 왕실여성의 삶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임산예지법은 조선 왕실의 출산 지침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라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동의보감내경편언해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의 「내경편」을 언해하여 필사한 책이다. 의녀 등 왕실에서 『동의보감』을 습득하고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급간이방

윤호 등이 조선 성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구급 관련 의학서이다. 일반 백성들도 활용해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방문마다 한글로 언해를 덧붙였다. 이 책은 구급방서 중에서 가장 완비된 것으로 질병을 중풍과 두통 등 127종으로 나누어 그 치료 방문을 모아 엮었다. 조선 초기의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의서 중 하나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언해납약증치방

납약(臘藥)의 효능 및 납약을 복용할 때 피해야 하는 사항 등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 구미청심원(九味淸心元), 소합원(蘇合元), 지보단(至寶丹) 등 37종의 납약이 소개되어 있다. 각각의 납약 이름 아래에 약의 효능과 복용법을 한문으로 기술한 뒤, 언해문을 덧붙였다. 한문 뒤에 언해문을 병기한 것은 뜻밖의 다급한 상황에 여인들이 납약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지식 관계망

중심요소

문맥요소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언해두창집요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언해태산집요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태교신기언해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임산예지법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동의보감내경편언해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구급간이방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의서를 언해하여 백성의 목숨을 구하다 언해납약증치방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시간정보

시간 내용
1434년 노중례태산집을 저술하였다.
1445년 임원준의방유취를 저술하였다.
세조시기 임원준창진집을 저술하였다.
1466년 임원준구급방을 저술하였다.
1489년 임원준, 윤호 등이 구급간이방을 저술하였다.
1601년 조선 선조언해태산집요 편찬을 명령하였다.
1601년 조선 선조언해두창집요 편찬을 명령하였다.
1608년 허준언해두창집요를 저술하였다.
1608년 허준언해태산집요를 저술하였다.
17세기 언해납약증치방이 저술되었다.
1800년 사주당이씨태교신기언해를 저술하였다.
조선후기 임산예지법이 저술되었다.
19세기 동의보감내경편언해가 필사되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78쪽.
  2.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84쪽.
  3.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84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신동원, 『동의보감과 동아시아 의학사』, 들녘, 2015.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