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초상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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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역사인물초상화_초상_철종 표준영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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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김희정, "[http://www.sculturein.com/news/3268 화폭에 담은 조선의 궁궐, 필리핀에서 만난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서울문화IN』<sup>online</sup></online></html>, 작성일: 2016년 08월 29일.
 
|대표명칭= 철종 표준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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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칭= 哲宗 標準影幀
 
|한자명칭= 哲宗 標準影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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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내용'''==
 
===표준영정의 제작 및 보관===
 
===표준영정의 제작 및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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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표준영정>은 [[한국전쟁]] 때 화재로 일부분이 소실된 <[[철종 어진]]>을 [[최광수]]가 복원 이모한 것이다. <[[철종 어진]]>은 처음에 [[창덕궁 주합루]]에 봉안되어 있다가 [[종친부]] 내 [[천한전]]으로 이안되고, 1875년 [[경복궁 망모루]]로 옮겨졌으며, 1899년에는 [[선희궁 평락정]]으로 이봉되었다가 [[창덕궁 선원전]] 제10실에 봉안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옮겨졌다가 화재에 의해 화폭 왼쪽 삼분의 일 가량이 소실되었다.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최광수]]는 화재로 타버린 <[[철종 어진]]> 오른쪽 부분을 다시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원본과 똑같이 그려 <철종 표준영정>을 제작하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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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어진]]>은 임금이 구군복(具軍服)으로 입고 있는 초상화로는 유일한 예로 조선시대 [[어진]]이 다양한 복장으로 제작되었음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로, [[이한철]]과 [[조중묵]]이 주관화사를 맡고 [[김하종]], [[박기준]], [[이형록]], [[백영배]], [[백은배]], [[유숙]] 등의 화원이 도와 1861년([[조선 철종|철종]]12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그림 우측 상단에 “여삼십일세진. 철종희륜정극수덕순성문현무성헌인영효대왕(予三十一世眞.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이라고 쓰인 표제가 있어 이 <철종 어진>이 1861년, [[조선 철종|철종]]의 나이 31세 때 그려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표제의 ‘여삼십일세진(予三十一世眞)’은 [[조선 철종|철종]]의 친필이며 그 옆에는 “철종희륜정극수덕순성문현무성헌인영효대왕(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이라고 묘호와 존호가 쓰여 있는데 이는 [[조선 철종|철종]] 연간 이후에 적힌 것이다.
  
표준영정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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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에 기록된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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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조선 헌종|헌종]]이 승하할 당시에 [[영의정]]이었던 [[정원용]]이 강화도에 살던 [[조선 철종|철종]]을 맞이하러 갔을 때의 기록이 그의 일기인 『[[경산일록|경산일록(經山日綠)]]』에 전한다. [[정원용]][[조선 철종|철종]]얼굴을 보고 "이마가 각지고 콧마루가 우뚝하며 두 광대뼈에는 귀밑털이 덮여 있다. 귀의 가장자리는 넓고 둥글었으며 입술은 두꺼웠고 손은 컸다" 라고 기록해 놓았다.<ref>정원용, 『(국역)경산일록 : 세계에서 가장 오래 쓴 개인 일기』, 보고사, 2009, 74쪽.</ref>
 
 
오랫동안 사당에서 봉안되던 초상화
 
가 그대로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이다. <철종초상>
 
은 소실되다 남은 어진을 보고 그린 초상이다. 이전에 모셔지던 영정이
 
그대로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예로는
 
 
 
 
 
 
 
 
 
 
 
이영미
 
 
 
 
 
기증된 영정이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것
 
이다. 한국전통미술인회 회장인 최광수는 <허준 영정>(도 102)과 <철종 영
 
정>(도 103), <영조 영정>(도 104)등을 기증하였고, 이 영정들은 1989년 표
 
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207) 이들 영정은 영정동상심의위원회 심의를 받은
 
영정이다.208) 심의 후 기증된 이들 영정 중 <허준 영정>은 국립현대미술관
 
에 <철종 영정>과 <영조 영정>은 창덕궁에 소장되어 있다. 이중 <철종 영
 
정>과 <영조 영정>은 한국전쟁 때 화재로 일부분이 소실된 <철종 어진>과
 
<연잉군 초상>을 복원 이모한 것이다. <철종 어진>(도 105)은 1861년 이한
 
철, 조중묵, 이형록, 백은배, 유숙 등이 그린 것으로 철종이 전립에 군복을
 
입고 있는 좌안8분면의 전신교의좌상이다. 군복을 입은 어진은 이를 즐겨
 
입었던 사도세자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정조대 이후에 그려지기 시작하여
 
익종, 헌종, 철종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209) 최광수에 의해 화재
 
로 어진 오른쪽 부분이 다시 그려졌고 나머지 부분은 원본과 똑같이 그려졌다.
 
 
 
207) 최광수는 표준 영정 95점 중 6점을 제작하였다. 그는 한국전통미술인회 회장을 역임하
 
였고, 한의사이며 동양화가이다. 그는 1988년 선현으로 선정된 유성룡의 영정을 제작하
 
였다. 원래 유성룡의 영정 제작 작가는 하태진이었으나 본인이 고사함에 따라 최광수로
 
선정되었다. 최광수의 유성룡 영정제작은 영정동상심의위원회 위원인 이경성과 안휘준
 
이 추천하여 이루어졌다.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 국어민족문화과, 『표준영정제작(1)』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DA0348598, 1987), p. 26.
 
208)「철종 어진 그려 문공부 기증」,『경향신문』 1987.6.6.
 
209) 국립중앙박물관,『초상화의 비밀』(국립중앙박물관, 2011), p. 293
 
 
 
 
 
 
 
 
 
이 그림은 21세 때 [[조선 영조|연잉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로 화원 [[박동보]]가 1714년 [[조선 숙종|숙종]]의 명으로 그렸다. 화면 좌측 상단에 “처음에 연잉군으로 책봉되었고 옛 호는 양성헌이다(初封延礽君古號養性軒)”라고 쓰여 있어 [[조선 영조|영조]]가 왕이 되기 전 왕자 시절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br/>
 
<연잉군 초상>이 그려질 당시 [[조선 숙종|숙종]]은 8개월간 병상에 있었는데 그동안 밤낮으로 곁에서 시중들었던 [[조선 영조|연잉군]]과 이복동생 [[연령군 이훤|연령군(延齡君)]]의 수고를 기특하게 여겨 화원 [[박동보]]로 하여금 두 왕자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마구간에 기르던 말과 함께 하사하였다는 내용이 『[[근역서화징]]』에 전해지고 있다.<ref>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79쪽.</ref><br/>
 
잠저였던 [[창의궁 장보각|창의궁 장보각(彰義宮 藏譜閣)]]에 모셨다가 [[경희궁 태령전|경희궁 태령전(慶熙宮 泰寧展)]]을 거쳐 1778년에 [[창덕궁 선원전|창덕궁 선원전(昌德宮 璿源展)]]으로 옮겨 봉안되었다.<ref>국립고궁박물관,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 국립고궁박물관, 2015, 66쪽.</ref> 이후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옮겨졌다가 화재를 당하여 화폭의 1/3 가량이 소실되었다.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br/>
 
<연잉군 초상>은 <효령대군 초상>, 신원미상의 <대군 초상>과 함께 몇 점 남아있지 않은 조선시대 왕자의 초상으로 매우 희귀한 예이다. 또한 이모본이 아닌 당대에 그려진 작품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외모===
 
1849년 헌종이 승하할 당시에 영의정이었던 정원용이 강화도에 살던 철종을 맞이하러 갔을 때의 기록이 그의 일기인 『경산일록經山日綠』에 전한다. 정원용은 철종의 얼굴을 보고 "이마가 각지고 콧마루가 우뚝하며 두 광대뼈에는 귀밑털이 덮여 있다. 귀의 가장자리는 넓고 둥글었으며 입술은 두꺼웠고 손은 컸다" 라고 기록해 놓았다.
 
 
 
정원용 지음 ; 허경진 ; 구지현 옮김, 『(국역)경산일록 : 세계에서 가장 오래 쓴 개인 일기』, 보고사, 2009, 74쪽.
 
  
 
===표준영정에 묘사된 모습===
 
===표준영정에 묘사된 모습===
<철종 어진>은 좌안팔분면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전립을 쓴 군복본이다. 갈색바탕에 붉은 소매를 덧댄 군복 위에 검정색 전복을 입고 있다. 어깨와 가슴에는 검은 색 바탕에 오조룡 무늬로 장식된 보補가 부착되어 있다. 가슴의 보 위에는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진 광대를 두르고 그 위에 청색의 넓은 띠를 둘러 군복의 아랫단까지 내렸다. 오른 손은 붉은 색의 등채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왼손은 소매 밖으로 나와 있는데 손이 소매 바깥으로 나온 예는 이 <철종 어진>이 처음이다. 왼쪽 뒤편에는 긴 환도가 세워져 있다. 머리에는 영·정조대에 유행한 죽전립竹戰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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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표준영정>은 [[좌안팔분면]]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전립]]을 쓴 군복본이다. 갈색바탕에 붉은 소매를 덧댄 [[왕의 군복|군복]] 위에 검정색 [[전복]]을 입고 있다. 어깨와 가슴에는 검은 색 바탕에 오조룡 무늬로 장식된 [[보(왕실남성)|보(補)]]가 부착되어 있다. 가슴의 [[(왕실남성)|보]] 위에는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진 [[광대]]를 두르고 그 위에 청색의 넓은 띠를 둘러 [[왕의 군복|군복]]의 아랫단까지 내렸다. 오른 손은 붉은 색의 [[등채]]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왼손은 소매 밖으로 나와 있는데 손이 소매 바깥으로 나온 예는 이 <철종 어진>이 처음이다. 왼쪽 뒤편에는 긴 [[환도]]가 세워져 있다. 머리에는 영·정조대에 유행한 [[전립|죽전립(竹戰笠)]]을 썼다.<br/>
얼굴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으로 칠해졌으며 외곽선과 이목구비는 짙은 갈색 선으로 표현하고, 눈꺼풀은 고동색 선으로 그렸다. 음영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눈은 검은 동공 주위에 금색으로 홍채를 표현하는 등 정성스럽게 그려졌다. 얼굴의 하관부위가 소실되어 있지만 높은 코와 귀의 넓은 테두리의 묘사는 전해지는 기록의 철종의 모습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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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으로 칠해졌으며 외곽선과 이목구비는 짙은 갈색 선으로 표현하고, 눈꺼풀은 고동색 선으로 그렸다. 음영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눈은 검은 동공 주위에 금색으로 홍채를 표현하는 등 정성스럽게 그려졌다. 높은 코와 귀의 넓은 테두리의 묘사는 전해지는 기록의 [[조선 철종|철종]]의 모습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
 
 
 
 
<연잉군 초상>은 [[사모|오사모]]에 [[단령]]을 입고 공수자세를 한 채로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아있는 [[좌안칠분면]]의 전신교의좌상이다. 의복은 [[단령|녹포단령]]에 군, 왕자를 나타내는 금색의 [[흉배|백택(白澤) 흉배]], 청홍색 [[서대]]를 두르고 있다. 신발은 검은색 녹피화를 신고 있다. [[단령]]의 운문이 세밀하게 묘사되었다. 안면의 묘사는 갈색선으로 이목구비의 윤곽을 잡고 선염으로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숱이 적고 성근 수염, 치켜 올라간 눈매, 매우 날렵하고 오똑한 콧날을 한 모습으로 이러한 용모는 노년의 모습을 그린 <[[영조 어진]]>에도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도 있다.
 
  
 
=='''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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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역사인물초상화_초상_철종 표준영정.jpg|[[철종 표준영정]]<ref>김희정, "[http://www.sculturein.com/news/3268 화폭에 담은 조선의 궁궐, 필리핀에서 만난다]", <html><online style="color:purple">『서울문화IN』<sup>online</sup></online></html>, 작성일: 2016년 08월 29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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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역사인물초상화_초상_철종 어진.jpg|[[철종 어진]]<ref>"[https://www.vivasam.com/themeplace/themeStartViewer.do?artId=27500248013&themeId=559 철종어진]", 열린 자료, <html><online style="color:purple">『비바샘』<sup>online</sup></online></html>, 비상교육.</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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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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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 황정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7503 연잉군초상]",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더 읽을거리===
 
===더 읽을거리===
 
# 전시도록
 
# 전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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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미, 『왕의 얼굴』, 사회평론, 2012   
 
#*  조선미, 『왕의 얼굴』, 사회평론, 2012   
 
# 논문
 
# 논문
 +
#* 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년.
 
#* 진준현, 「숙종대 어진도사와 화가들」, 『고문화』46,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95.
 
#* 진준현, 「숙종대 어진도사와 화가들」, 『고문화』46,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95.
 +
#* 윤진영, 「(해제)藏書閣 所藏 『御眞圖寫事實』의 正祖~哲宗代 御眞圖寫」, 『藏書閣』 1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
 +
  
 
[[분류:역사인물초상화]][[분류:초상화]][[분류:문헌]][[분류:문화유산]]
 
[[분류:역사인물초상화]][[분류:초상화]][[분류:문헌]][[분류:문화유산]]

2017년 11월 22일 (수) 21:33 기준 최신판


철종 표준영정
김희정, "화폭에 담은 조선의 궁궐, 필리핀에서 만난다", 『서울문화IN』online, 작성일: 2016년 08월 29일.
한자명칭 哲宗 標準影幀
작가 최광수
소장처 창덕궁
유형 표준영정
크기(세로×가로) 205×108㎝


정의

조선시대 임금인 철종(재위 1849∼1863)의 31세 때 모습을 그린 표준영정.

내용

표준영정의 제작 및 보관

<철종 표준영정>은 한국전쟁 때 화재로 일부분이 소실된 <철종 어진>을 최광수가 복원 이모한 것이다. <철종 어진>은 처음에 창덕궁 주합루에 봉안되어 있다가 종친부천한전으로 이안되고, 1875년 경복궁 망모루로 옮겨졌으며, 1899년에는 선희궁 평락정으로 이봉되었다가 창덕궁 선원전 제10실에 봉안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옮겨졌다가 화재에 의해 화폭 왼쪽 삼분의 일 가량이 소실되었다.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최광수는 화재로 타버린 <철종 어진> 오른쪽 부분을 다시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원본과 똑같이 그려 <철종 표준영정>을 제작하였다
<철종 어진>은 임금이 구군복(具軍服)으로 입고 있는 초상화로는 유일한 예로 조선시대 어진이 다양한 복장으로 제작되었음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로, 이한철조중묵이 주관화사를 맡고 김하종, 박기준, 이형록, 백영배, 백은배, 유숙 등의 화원이 도와 1861년(철종12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그림 우측 상단에 “여삼십일세진. 철종희륜정극수덕순성문현무성헌인영효대왕(予三十一世眞.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이라고 쓰인 표제가 있어 이 <철종 어진>이 1861년, 철종의 나이 31세 때 그려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표제의 ‘여삼십일세진(予三十一世眞)’은 철종의 친필이며 그 옆에는 “철종희륜정극수덕순성문현무성헌인영효대왕(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이라고 묘호와 존호가 쓰여 있는데 이는 철종 연간 이후에 적힌 것이다.

문헌에 기록된 외모

1849년 헌종이 승하할 당시에 영의정이었던 정원용이 강화도에 살던 철종을 맞이하러 갔을 때의 기록이 그의 일기인 『경산일록(經山日綠)』에 전한다. 정원용철종의 얼굴을 보고 "이마가 각지고 콧마루가 우뚝하며 두 광대뼈에는 귀밑털이 덮여 있다. 귀의 가장자리는 넓고 둥글었으며 입술은 두꺼웠고 손은 컸다" 라고 기록해 놓았다.[1]

표준영정에 묘사된 모습

<철종 표준영정>은 좌안팔분면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전립을 쓴 군복본이다. 갈색바탕에 붉은 소매를 덧댄 군복 위에 검정색 전복을 입고 있다. 어깨와 가슴에는 검은 색 바탕에 오조룡 무늬로 장식된 보(補)가 부착되어 있다. 가슴의 위에는 화려한 무늬가 수놓아진 광대를 두르고 그 위에 청색의 넓은 띠를 둘러 군복의 아랫단까지 내렸다. 오른 손은 붉은 색의 등채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왼손은 소매 밖으로 나와 있는데 손이 소매 바깥으로 나온 예는 이 <철종 어진>이 처음이다. 왼쪽 뒤편에는 긴 환도가 세워져 있다. 머리에는 영·정조대에 유행한 죽전립(竹戰笠)을 썼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으로 칠해졌으며 외곽선과 이목구비는 짙은 갈색 선으로 표현하고, 눈꺼풀은 고동색 선으로 그렸다. 음영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눈은 검은 동공 주위에 금색으로 홍채를 표현하는 등 정성스럽게 그려졌다. 높은 코와 귀의 넓은 테두리의 묘사는 전해지는 기록의 철종의 모습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철종 표준영정 표준영정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철종 표준영정 조선 철종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철종 표준영정 최광수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철종 표준영정 창덕궁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철종 표준영정 철종 어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철종 어진 어진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철종 어진 조선 철종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철종 어진 이한철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철종 어진 조중묵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철종 어진 김하종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철종 어진 박기준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철종 어진 이형록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철종 어진 백영배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철종 어진 백은배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철종 어진 유숙 A는 B가 그렸다 A dcterms:creator B
철종 어진 창덕궁 주합루 A는 B에 봉안되어 있었다 A ekc:formerLocation B
철종 어진 천한전 A는 B에 봉안되어 있었다 A ekc:formerLocation B
철종 어진 경복궁 망모루 A는 B에 봉안되어 있었다 A ekc:formerLocation B
철종 어진 선희궁 평락정 A는 B에 봉안되어 있었다 A ekc:formerLocation B
철종 어진 창덕궁 선원전 A는 B에 봉안되어 있었다 A ekc:formerLocation B
철종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좌안팔분면 철종 표준영정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전립 철종 표준영정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군복 철종 표준영정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전복 철종 표준영정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철종 표준영정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등채 철종 표준영정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환도 철종 표준영정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89년 철종 표준영정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79032 126.991012 철종 표준영정창덕궁에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정원용, 『(국역)경산일록 : 세계에서 가장 오래 쓴 개인 일기』, 보고사, 2009, 74쪽.
  2. 김희정, "화폭에 담은 조선의 궁궐, 필리핀에서 만난다", 『서울문화IN』online, 작성일: 2016년 08월 29일.
  3. "철종어진", 열린 자료, 『비바샘』online, 비상교육.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1. 전시도록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2. 단행본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 : 역사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눌와, 2007.
    • 조선미, 『왕의 얼굴』, 사회평론, 2012
  3. 논문
    • 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년.
    • 진준현, 「숙종대 어진도사와 화가들」, 『고문화』46,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95.
    • 윤진영, 「(해제)藏書閣 所藏 『御眞圖寫事實』의 正祖~哲宗代 御眞圖寫」, 『藏書閣』 1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