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동천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지식 관계망) |
|||
29번째 줄: | 29번째 줄: | ||
현재 절터에는 석탑의 부재들과 석조물이 흩어져 있다.<ref>장충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6817 동천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현재 절터에는 석탑의 부재들과 석조물이 흩어져 있다.<ref>장충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6817 동천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 ==''' | + | =='''지식관계망'''== |
− | === | + | *'''경주 동천사에 주석했던 자적선사 홍준의 지식관계망''' |
+ | <html> | ||
+ | <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 | ||
+ | <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 | ||
+ | <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dh.aks.ac.kr/Encyves/Graph/D034/stele_hongjun_myeongbongsa.ht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 | </html> | ||
+ | |||
+ | ===관계정보===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
|- | |- | ||
| [[경주 동천사]] || [[신라 진평왕]] || A는 B가 창건하였다 ||A ekc:founder B | | [[경주 동천사]] || [[신라 진평왕]] || A는 B가 창건하였다 ||A ekc:founder B | ||
+ | |- | ||
+ | | [[홍준]] || [[경주 동천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
|} | |} | ||
2017년 11월 22일 (수) 10:43 판
경주 동천사 (慶州 東泉寺) |
|
대표명칭 | 경주 동천사 |
---|---|
한자 | 慶州 東泉寺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
창건자 | 신라 진평왕 |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에 있었던 절.
내용
동천사(東泉寺)는 신라시대 때 경주에 지어졌으며, 진평왕이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와 목욕한 동천(東泉)에 창건한 절이다.[1] 혁거세의 탄생 신화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해지고 있다.
이때에 모두 높은 데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우더니 웬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거기를 살펴보니 보랏빛 알 한 개가 있고 말은 사람을 보자 울음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쪼개 보니 형용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있었다. 놀랍고도 이상하여 아이를 동천(東泉, 동천사(東泉寺))에서 목욕을 시키매 몸에는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모조리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맑게 빛났다. 따라서 이름을 혁거세왕이라고 하고 왕위의 칭호는 거슬한(居瑟邯)이라 하니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축하하여 말하기를 “이제 천자가 이미 이 땅에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이 있는 여군(女君)을 찾아서 배필을 정해야 하겠다.”고 하였다. | ||
출처: 『삼국유사』 권 제1, 제1 기이, 신라 시조 혁거세왕. [2] |
또 『삼국유사』에 따르면, 동해 용왕이 동천사에 자주 와서 법문을 들었고, 진평왕이 오백성중(五百聖衆)[3]의 봉안과 함께 오층탑을 세웠으며 전답을 헌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4]
현재 절터에는 석탑의 부재들과 석조물이 흩어져 있다.[5]
지식관계망
- 경주 동천사에 주석했던 자적선사 홍준의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경주 동천사 | 신라 진평왕 | A는 B가 창건하였다 | A ekc:founder B |
홍준 | 경주 동천사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주석
- ↑ "동천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 ↑ "이름을 혁거세왕이라고 하며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리다", 『삼국유사』 권 제1, 제1 기이, 신라 시조 혁거세왕,
『한국사데이터베이스』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 ↑ 오백 인의 성중. 성중은 극락 세계에 있는 온갖 보살을 뜻함. 한국고전용어사전 편찬위원회, 『한국고전용어사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1. 온라인 참조: "오백성중",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장충식, "동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장충식, "동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동천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 한국콘텐츠진흥원. - "이름을 혁거세왕이라고 하며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리다", 『삼국유사』 권 제1, 제1 기이, 신라 시조 혁거세왕,
『한국사데이터베이스』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 장충식, "동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