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수(왕실남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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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
* 金明淑,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國葬都監儀軌 服玩圖說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 金明淑,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國葬都監儀軌 服玩圖說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
− | * 金明淑,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 + | * 金明淑,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服飾』 18권, 한국복식학회,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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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희경, 「冕服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2. | * 유희경, 「冕服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2. | ||
− |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 + |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
− | * 인윤실, 「조선왕조시대 금박에 관한 연구」, | + | * 인윤실, 「조선왕조시대 금박에 관한 연구」, 『服飾』 2권, 한국복식학회, 1978. |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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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8일 (토) 22:48 기준 최신판
후수 (後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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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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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後綬 |
이칭별칭 | 수(綬) |
구분 | 기타 |
착용신분 | 왕, 왕세자, 왕세손, 황제, 황태자 |
착용성별 | 남성 |
정의
조선의 왕, 왕세자, 왕세손과 대한제국의 황제, 황태자가 제례나 책례, 가례 등의 중요한 의례를 행하거나 정월 초하루ㆍ동짓날ㆍ경축일 등 절일(節日) 등의 의례에 참여할 때 허리 뒤에 아래로 늘어뜨리는 것이다.[1]
내용
수(綬)는 ‘인끈’이라는 의미로, 인장의 꼭지[鈕]에 매는 끈을 말하는데, 뒤에 늘어뜨리기 때문에 후수(後綬)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후수는 직사각형 형태로, 여러 색이 섞인 직물로 몸체인 '대수(大綬)'를 만들어 그 위에 두 가닥씩 세 번 여섯 가닥의 '소수(小綬)'라는 끈을 드리우고, 그 사이에 왕과 왕세자는 '금환(金環)'을 두며, 아래쪽에는 편물로 짠 망수를 드리운다. 이런 형태의 후수는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들어왔다. 사치 풍조를 없애려 노력을 기울인 영조는 1747년(영조 23)부터 상의원에서 직접 후수를 직조하게 했고, 형태도 적색, 청색, 검은색, 옥색, 녹색 다섯 가지 색을 세번 반복해 총 열다섯 가닥의 세로줄 무늬를 표현한 후 그 실을 드리우게 했다. 황제의 후수 훈색(纁色) 바탕에 황(黃), 백(白), 적(赤), 현(玄), 표(縹:옥색), 녹(綠)의 여섯가지 색으로 짜고, 황태자는 조선의 왕과 마찬가지로 적색, 백색, 옥색, 녹색으로 짜고, 두 개의 금환을 단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황제 | 후수(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태자 | 후수(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 | 후수(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 | 후수(왕실남성)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후수(왕실남성) | 황제의 대례복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후수(왕실남성) | 황태자의 대례복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후수(왕실남성) | 왕의 대례복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후수(왕실남성) | 왕세자의 대례복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후수(왕실남성) | 황제의 조복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후수(왕실남성) | 황태자의 조복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후수(왕실남성) | 왕의 조복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후수(왕실남성) | 왕세자의 조복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후수(왕실남성) | 면복 상의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후수(왕실남성) | 면복 하상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후수(왕실남성) | 강사포 상의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후수(왕실남성) | 강사포 하상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후수(왕실남성) | 의궤 |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 A ekc:mentions B |
후수(왕실남성) | 상의원 | A는 B에서 제작되였다 | A dcterms:creator B |
후수(왕실남성) | 면복각 | A는 B에 보관되었다 | A edm:formerLocation B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고광림, 『한국의 관복』, 화성사, 1995.
- 국립고궁박물관 엮음,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金明淑,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國葬都監儀軌 服玩圖說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金明淑,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服飾』 18권, 한국복식학회, 1992.
- 유희경, 「冕服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2.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 인윤실, 「조선왕조시대 금박에 관한 연구」, 『服飾』 2권, 한국복식학회, 1978.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