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왕실여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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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자로부터 받은 땅을 재고[圭] 다스린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전체적으로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옥판에<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17쪽.</ref> 위는 뾰족한 삼각형이거나 산형(山形)으로 둥근 것도 있다. 손으로 잡는 아랫부분은 비단으로 감싸는데, 조선시대에는 이를 ‘감이(甘伊)’라고 했다.<ref>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77~80쪽.</ref>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별도의 전용 주머니에 넣어 보관한다. 황후와 황태자비의 규에는 곡식무늬가 새겨져 있다. 주머니의 색은 [[황후]]의 경우 황색,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은 홍색이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17쪽.</ref> 1638(인조 16) [[인조]]와 [[장렬왕후]]의 [[가례]]에서는 '청옥규'를 들었으나 그 이후에는 모두 '백옥규'를 들었다. [[국조속오례의보서례|『국조속오례의보서례』]]에는 [[왕]]의 [[규(왕실남성|규]]와 그 제도가 같다고 했으나 현재 전하는 영친왕비의 [[규(왕실여성)|규]]는 [[왕]]의 [[규(왕실남성)|규]]와 달리 윗부분이 뾰족한 삼각형이 아니라 둥근 산형을 이루고 있다.<ref>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3, 105쪽.</ref> | + | 천자로부터 받은 땅을 재고[圭] 다스린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전체적으로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옥판에<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17쪽.</ref> 위는 뾰족한 삼각형이거나 산형(山形)으로 둥근 것도 있다. 손으로 잡는 아랫부분은 비단으로 감싸는데, 조선시대에는 이를 ‘감이(甘伊)’라고 했다.<ref>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77~80쪽.</ref>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별도의 전용 주머니에 넣어 보관한다. 황후와 황태자비의 규에는 곡식무늬가 새겨져 있다. 주머니의 색은 [[황후]]의 경우 황색,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은 홍색이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17쪽.</ref> 1638(인조 16) [[인조]]와 [[장렬왕후]]의 [[가례]]에서는 '청옥규'를 들었으나 그 이후에는 모두 '백옥규'를 들었다. [[국조속오례의보서례|『국조속오례의보서례』]]에는 [[왕]]의 [[규(왕실남성)|규]]와 그 제도가 같다고 했으나 현재 전하는 영친왕비의 [[규(왕실여성)|규]]는 [[왕]]의 [[규(왕실남성)|규]]와 달리 윗부분이 뾰족한 삼각형이 아니라 둥근 산형을 이루고 있다.<ref>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3, 105쪽.</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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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고궁박물관 엮음,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 국립고궁박물관 엮음,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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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4. |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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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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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8일 (토) 22:32 기준 최신판
규 (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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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규 |
---|---|
한자표기 | 圭 |
구분 | 기타 |
착용신분 | 황후, 왕비, 황태자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
착용성별 | 여성 |
정의
조선시대 왕비와 왕세자빈, 대한제국시대 황후와 황태자비가 국가의 큰 제례에 참여하거나 혼례, 책례에 손에 쥐는 옥기(玉器)이다.[1]
내용
천자로부터 받은 땅을 재고[圭] 다스린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전체적으로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옥판에[2] 위는 뾰족한 삼각형이거나 산형(山形)으로 둥근 것도 있다. 손으로 잡는 아랫부분은 비단으로 감싸는데, 조선시대에는 이를 ‘감이(甘伊)’라고 했다.[3]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별도의 전용 주머니에 넣어 보관한다. 황후와 황태자비의 규에는 곡식무늬가 새겨져 있다. 주머니의 색은 황후의 경우 황색,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은 홍색이다.[4] 1638(인조 16) 인조와 장렬왕후의 가례에서는 '청옥규'를 들었으나 그 이후에는 모두 '백옥규'를 들었다. 『국조속오례의보서례』에는 왕의 규와 그 제도가 같다고 했으나 현재 전하는 영친왕비의 규는 왕의 규와 달리 윗부분이 뾰족한 삼각형이 아니라 둥근 산형을 이루고 있다.[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황후 | 규(왕실여성)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태자비 | 규(왕실여성)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비 | 규(왕실여성)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빈 | 규(왕실여성)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손빈 | 규(왕실여성)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후의 대례복 | 규(왕실여성)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태자비의 대례복 | 규(왕실여성)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비의 대례복 | 규(왕실여성)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빈의 대례복 | 규(왕실여성)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규(왕실여성) | 적의 | A는 B와 함께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규(왕실여성) | 대수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규(왕실여성) | 의궤 |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 A ekc:mentions B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친왕비가 사용한 규.[6]
영상
주석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17쪽.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17쪽.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77~80쪽.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17쪽.
-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3, 105쪽.
- ↑ 국립고궁박물관(http://www.gogung.go.kr/) 소장.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립고궁박물관 엮음,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4.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