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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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불교의 의식음악. 일명 범음(梵音)·어산(魚山) 또는 인도(印度, 引導) 소리라고도 한다.<ref>한만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601 범패]",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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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의식 음악. 일명 범음(梵音)·어산(魚山) 또는 인도(印度, 引導) 소리라고도 한다.<ref>한만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601 범패]",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내용'''==
 
=='''내용'''==
절에서 주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이며, 가곡·판소리와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성악곡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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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범패는 장단이 없는 단성선율(單聲旋律)이며, 재를 올릴 때 쓰는 의식음악이라는 점에서 서양음악의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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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패의 기원에 대해서는 영산회상 기원설, 묘음보살(妙音菩薩)의 음악공양설, 중국 조식(曺植)창작설 등이 있고, 그 전승에 대하여 오(吳)의 지겸(支謙)이 범패삼계(梵唄三契)를 짓고, 강승회(康僧會)가 니항범패(泥恒梵唄)를 만들어 강남에 범패성명(梵唄聲明)을 크게 유생시켰다.<ref>범패소개, [http://www.pompae.or.kr 불교음악연구소].</ref>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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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 나라의 범패는 신라의 [[혜소|진감선사(眞鑑禪師)]]에서 비롯된 것으로 되어 있다. [[혜소|진감선사]]는 [[하동 쌍계사|하동 쌍계사(雙磎寺)]][[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진감선사대공탑비문(眞鑑禪師大空塔碑文)]]따르면 804년([[신라 애장왕|애장왕]] 5) 재공사(才貢使)로 당나라에 갔다가 830년([[신라 흥덕왕|흥덕왕]] 5)에 귀국한 뒤, 옥천사(玉泉寺), 즉 [[하동 쌍계사|쌍계사]]에서 수많은 제자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ref>한만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601 범패]",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보통 우리 나라의 범패는 신라의 진감선사(眞鑑禪師)에서 비롯된 것같이 되어 있다. 진감선사는 하동 쌍계사(雙磎寺)의 진감선사대공탑비문(眞鑑禪師大空塔碑文)에 의하면 804년(애장왕 5) 재공사(才貢使)로 당나라에 갔다가 830년(흥덕왕 5)에 귀국한 뒤, 옥천사(玉泉寺), 즉 쌍계사에서 수많은 제자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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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범패가 그 전에도 우리 나라에 있었다는 것은 ≪삼국유사≫월명사(月明師)의 도솔가조(兜率歌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760년(경덕왕 19)에 하루는 해가 둘이 떠서 서로 교대하여 해가 지지 않는 괴변이 생겼다. 이때 일관이 말하되 “범패승을 데려다가 <산화공덕 散花功德>이라는 노래를 부르면 괜찮을 것이라.” 하여, 왕이 단을 쌓고 범패승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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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에 따른 구분===
그때 월명이라는 승려가 지나가므로 왕이 불러 범패를 부르라 하니 그 승려는 오직 향가만을 알 뿐 범패를 모른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진감선사 이전에도 범패를 부를 줄 아는 승려가 따로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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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패는 주로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수륙재(水陸齋)·영산재(靈山齋) 등 다섯 가지 재에 쓰인다.<ref>한만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601 범패]",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진감선사와 같은 시대 사람인 일본 승려 원인 자각대사(圓仁慈覺大師)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에 의하면, 중국 산동반도 등주(登州)의 적산원(赤山院)이라는 신라인의 절에서 불린 범패가 당풍(唐風)과 향풍(鄕風:新羅風), 그리고 당나라 이전에 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고풍(古風:日本風),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의 범패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배워 온 범패란 이 가운데 당풍이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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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홋소리의 선법도 옛날 신라의 영토였던 동부지방 민요의 그것과 같다. 고풍의 범패는 당풍이나 향풍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당풍 범패 이전에 서역에서 들어온 범패일 것 같다.
+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
고려는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범패가 상당히 성행하였으리라고 짐작은 되나 문헌이 없어 잘 알기 어렵다. 다만 고려의 역대 왕들이 연등회(燃燈會)를 성대히 행했으며, 백좌도량(百座道場)을 왕궁에 설하고 대규모의 도량을 설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범패도 성행하였으리라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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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를 위해 행하며 보통 하루가 걸린다. 가장 규모가 작은 재로 49재나 소상(小祥)·대상(大祥) 때 흔히 이 재를 행한다. 무속의 진오귀굿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범패는 대휘화상(大輝和尙)쓴 ≪범음종보 梵音宗譜≫(1748)에 의하여 상세한 계보를 찾아볼 수 있다. 국융(國融)-응준(應俊)-혜운(惠雲)-천휘(天輝)-연청(演淸)-상환(尙還)-설호(雪湖)-운계당법민(雲溪堂法敏)-혜감(慧鑑)-순영(絢暎) 등 많은 범패승의 이름이 보인다. 이 밖에 ≪신간산보범음집 新刊刪補梵音集≫(1713) 등에도 상당히 많은 범패승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범패승이 처음 소리를 배울 때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상주권공부터 배우게 되는데, <할향(喝香)>부터 시작하여 <합장게(合掌偈)>·<개계(開啓)>·<쇄수게(灑水偈)>·<복청게(伏請偈)>·<사방찬(四方讚)>·<도량게(道場偈)>·<참회게(懺悔偈)>·<헌좌게(獻座偈)>·<가영(歌詠)>·<등게(燈偈)>의 순으로 배운다.
그러나 1911년 6월에 사찰령이 반포되고 그 취지에 따라 이듬해에 각본말사법(各本末寺法)이 제정되자 조선 승려의 범패와 작법(作法)이 금지되었다.
+
곡목 중 끝에 ‘게()’ 자로 된 곡의 사설은 한문의 4·5언 또는 7언 4구로 된 한문의 정형시다. 그러나 ‘게’ 자가 붙지 않은 <개계>·<유치 由致>·<청사 請詞> 등은 시가 아니라 한문으로 쓰인 산문이다. 그리고 <보소청진언(普召請眞言)>·<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등 진언이라 한 것은 한문 사설이 아니라 범어(梵語), 즉 산스크리트어(Sanskrit:고대 인도어)로 되어 있다.<ref>한만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601 범패]",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화청과 법고춤 같은 것을 금한 각본말사법 시행 이후 범패도 쇠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행히 망하여 없어지지는 않았다. 경만 읽고 범패를 부르지 않는 절에는 재가 들어오지 않아, 재가 있는 한 범패는 존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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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高橋亨)의 ≪이조불교 李朝佛敎≫(1929)에는 “근년까지 경성 교외 백련사(白蓮寺)에 만월(滿月)이라는 노승이 있어 범패로 유명하였다. 원래 경성의 동서산(東西山)에 각각 만월이 있어 선성(善聲)이 서로 백중하였다. 이만월은 즉 서만월(西滿月)이라고 한다.” 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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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
백련사 이만월(李滿月)의 제자로는 백련사의 이범호(李梵湖), 봉원사(奉元寺)의 이월하(李月河), 진관사(津寬寺)의 김운제(金雲濟)가 있었고, 동교(東郊)의 이만월의 제자로는 경국사(慶國寺, 靑庵寺)의 대원(大圓)과 영도사(永度寺, 開雲寺)의 전우운(田雨雲), 신흥사(新興寺)의 완담(完潭), 화계사(華溪寺)의 동화(東華), 흥국사(興國寺)의 표금운(表錦雲)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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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대례왕공문(大禮王供文)이라고도 하며, 상주권공재보다는 약간 규모가 크다. 주로 재수를 위하여 드리는 의식으로 저승에 있다는 십대왕(十大王)에게 자비를 비는 것이다.
범패는 주로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수륙재(水陸齋)·영산재(靈山齋) 등 다섯 가지 재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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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이란 진광대왕(秦廣大王)·초강대왕(初江大王)·송제대왕(宋帝大王)·오관대왕(五官大王)·염라대왕(閻羅大王)·변성대왕(變成大王)·태산대왕(泰山大王)·평등대왕(平等大王)·도시대왕(都市大王)·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을 가리킨다.<ref>한만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601 범패]",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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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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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고 생전에 미리 지내는 재다. 무속의 생()오귀굿에 해당한다.<ref>한만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601 범패]",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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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水陸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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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고혼을 위한 재로, 무속의 용왕굿과 비교된다. 그러나 수륙재의 원래 의미는 반드시 수중고 1혼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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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큰 수륙재는 처음에 절에서 영산재를 행하고, 나중에 강이나 바다로 나가서 수륙재를 행한다. 영산재만 하더라도 사흘이나 걸릴 만큼 규모가 무척 큰 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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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즘에는 영산재를 생략하고 처음부터 강이나 바다에 나가 배를 띄워놓고 수륙재만을 거행하는 것이 상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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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의 절차는 서찬편·상단(上壇)·사자단(使者壇)·오로단(五路壇)·상단(上壇)·중단(中壇)·하단(下壇)·회향단의 순인데, 각 단마다 수십 개씩의 소리로 되어 있다. 방생재(放生齋)는 하단의 끝부분에 속하는 절차로, 강이나 바다에 배를 띄워놓고 하는 규모가 큰 방생재를 할 경우 회향단을 생략하고 끝마친다.<ref>한만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601 범패]",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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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재(靈山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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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규모가 큰 재로 사흘이나 걸리는데, 국가의 안녕과 군인들의 무운장구(武運長久) 또는 큰 단체를 위해서, 또는 죽은 자를 위해서도 행한다. 범패승들은 처음에 상주권공을 배우고 각배(各拜)를 배운 다음 마지막으로 이 영산재를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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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1일 권공 3일 영산’이라 하여 영산재는 올리는 데 사흘이나 걸리는 대규모의 재인만큼 그 절차도 상당히 복잡하다. 1968년 5월 13일부터 16일까지 봉원사에서 행한 영산재에서는 142곡이나 불렀다.<ref>한만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601 범패]",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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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범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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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패는 불교 의식에 수반되는 것이라 사설내용을 묘사하지 않는다. 심산유곡에서 들려오는 범종의 소리 같아서 파도를 그리는 듯 들리고 유현청화(幽玄淸和)하여 의젓하고 그윽한 맛이 있으며, 장인굴곡(長引屈曲)하여 유장하고 심오한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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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모든 의식을 간소화하는 추세라, 며칠씩 걸리던 재가 단 몇십 분으로 단축되니 범패는 점점 없어져 가고, 재를 행할 때 안차비 소리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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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범패가 중요 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고, 1987년 영산재(靈山齋)로 명칭이 바뀌었다. 예능 보유자로는 박희덕(朴喜德:범패), 장태남(張泰男:범패). 이재호(李在浩:작법무) 등이 있다.<ref>한만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601 범패]",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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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참고문헌'''==
*이완우,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8843 탑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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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영,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2601 범패]",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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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불교 사찰의 승탑비문]] [[분류:개념]] [[분류:승탑/교열완료!]]

2017년 11월 6일 (월) 00:24 기준 최신판

범패
(塔碑)
대표명칭 범패
한자표기 塔碑



정의

불교의 의식 음악. 일명 범음(梵音)·어산(魚山) 또는 인도(印度, 引導) 소리라고도 한다.[1]

내용

기원

범패의 기원에 대해서는 영산회상 기원설, 묘음보살(妙音菩薩)의 음악공양설, 중국 조식(曺植)창작설 등이 있고, 그 전승에 대하여 오(吳)의 지겸(支謙)이 범패삼계(梵唄三契)를 짓고, 강승회(康僧會)가 니항범패(泥恒梵唄)를 만들어 강남에 범패성명(梵唄聲明)을 크게 유생시켰다.[2]

보통 우리 나라의 범패는 신라의 진감선사(眞鑑禪師)에서 비롯된 것으로 되어 있다. 진감선사하동 쌍계사(雙磎寺)진감선사대공탑비문(眞鑑禪師大空塔碑文)에 따르면 804년(애장왕 5) 재공사(才貢使)로 당나라에 갔다가 830년(흥덕왕 5)에 귀국한 뒤, 옥천사(玉泉寺), 즉 쌍계사에서 수많은 제자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3]

의식에 따른 구분

범패는 주로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수륙재(水陸齋)·영산재(靈山齋) 등 다섯 가지 재에 쓰인다.[4]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

죽은 자를 위해 행하며 보통 하루가 걸린다. 가장 규모가 작은 재로 49재나 소상(小祥)·대상(大祥) 때 흔히 이 재를 행한다. 무속의 진오귀굿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범패승이 처음 소리를 배울 때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이 상주권공부터 배우게 되는데, <할향(喝香)>부터 시작하여 <합장게(合掌偈)>·<개계(開啓)>·<쇄수게(灑水偈)>·<복청게(伏請偈)>·<사방찬(四方讚)>·<도량게(道場偈)>·<참회게(懺悔偈)>·<헌좌게(獻座偈)>·<가영(歌詠)>·<등게(燈偈)>의 순으로 배운다. 이 곡목 중 끝에 ‘게(偈)’ 자로 된 곡의 사설은 한문의 4·5언 또는 7언 4구로 된 한문의 정형시다. 그러나 ‘게’ 자가 붙지 않은 <개계>·<유치 由致>·<청사 請詞> 등은 시가 아니라 한문으로 쓰인 산문이다. 그리고 <보소청진언(普召請眞言)>·<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등 진언이라 한 것은 한문 사설이 아니라 범어(梵語), 즉 산스크리트어(Sanskrit:고대 인도어)로 되어 있다.[5]

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

일명 대례왕공문(大禮王供文)이라고도 하며, 상주권공재보다는 약간 규모가 크다. 주로 재수를 위하여 드리는 의식으로 저승에 있다는 십대왕(十大王)에게 자비를 비는 것이다. 시왕이란 진광대왕(秦廣大王)·초강대왕(初江大王)·송제대왕(宋帝大王)·오관대왕(五官大王)·염라대왕(閻羅大王)·변성대왕(變成大王)·태산대왕(泰山大王)·평등대왕(平等大王)·도시대왕(都市大王)·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을 가리킨다.[6]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죽어서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고 생전에 미리 지내는 재다. 무속의 생(生)오귀굿에 해당한다.[7]

수륙재(水陸齋)

수중고혼을 위한 재로, 무속의 용왕굿과 비교된다. 그러나 수륙재의 원래 의미는 반드시 수중고 1혼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규모가 큰 수륙재는 처음에 절에서 영산재를 행하고, 나중에 강이나 바다로 나가서 수륙재를 행한다. 영산재만 하더라도 사흘이나 걸릴 만큼 규모가 무척 큰 재다. 그러나 요즘에는 영산재를 생략하고 처음부터 강이나 바다에 나가 배를 띄워놓고 수륙재만을 거행하는 것이 상례다. 수륙재의 절차는 서찬편·상단(上壇)·사자단(使者壇)·오로단(五路壇)·상단(上壇)·중단(中壇)·하단(下壇)·회향단의 순인데, 각 단마다 수십 개씩의 소리로 되어 있다. 방생재(放生齋)는 하단의 끝부분에 속하는 절차로, 강이나 바다에 배를 띄워놓고 하는 규모가 큰 방생재를 할 경우 회향단을 생략하고 끝마친다.[8]

영산재(靈山齋)

가장 규모가 큰 재로 사흘이나 걸리는데, 국가의 안녕과 군인들의 무운장구(武運長久) 또는 큰 단체를 위해서, 또는 죽은 자를 위해서도 행한다. 범패승들은 처음에 상주권공을 배우고 각배(各拜)를 배운 다음 마지막으로 이 영산재를 배우게 된다. 예로부터 ‘1일 권공 3일 영산’이라 하여 영산재는 올리는 데 사흘이나 걸리는 대규모의 재인만큼 그 절차도 상당히 복잡하다. 1968년 5월 13일부터 16일까지 봉원사에서 행한 영산재에서는 142곡이나 불렀다.[9]

오늘날의 범패

범패는 불교 의식에 수반되는 것이라 사설내용을 묘사하지 않는다. 심산유곡에서 들려오는 범종의 소리 같아서 파도를 그리는 듯 들리고 유현청화(幽玄淸和)하여 의젓하고 그윽한 맛이 있으며, 장인굴곡(長引屈曲)하여 유장하고 심오한 맛이 있다. 오늘날에는 모든 의식을 간소화하는 추세라, 며칠씩 걸리던 재가 단 몇십 분으로 단축되니 범패는 점점 없어져 가고, 재를 행할 때 안차비 소리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었다. 1973년 범패가 중요 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고, 1987년 영산재(靈山齋)로 명칭이 바뀌었다. 예능 보유자로는 박희덕(朴喜德:범패), 장태남(張泰男:범패). 이재호(李在浩:작법무) 등이 있다.[10]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범패 혜소 A는 B와 관련이 있다

시각자료

영상

주석

  1. 한만영, "범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범패소개, 불교음악연구소.
  3. 한만영, "범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한만영, "범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한만영, "범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6. 한만영, "범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7. 한만영, "범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8. 한만영, "범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9. 한만영, "범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0. 한만영, "범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한만영, "범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