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신라의 삼국통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정창섭-화랑도의 수련』, 신라의 군사적 기반이자 위인의 산실, 화랑도) |
|||
6번째 줄: | 6번째 줄: | ||
<gallery mode=packed caption=" " heights=150px style="border: dotted 2px olive"> | <gallery mode=packed caption=" " heights=150px style="border: dotted 2px olive"> | ||
파일:초상화 김유신 표준영정.png| 삼국통일이라는 성업을 완수한 직후인 60대의 모습으로 그려진 [[김유신 표준영정|김유신 영정]]<ref>"[http://www.kculture.or.kr/korean/portrait/portraitPartList.jsp 선현의 표준영정]",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민족정보마당』<sup>online</sup></online></html>, 한국문화정보원.</ref> | 파일:초상화 김유신 표준영정.png| 삼국통일이라는 성업을 완수한 직후인 60대의 모습으로 그려진 [[김유신 표준영정|김유신 영정]]<ref>"[http://www.kculture.or.kr/korean/portrait/portraitPartList.jsp 선현의 표준영정]",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민족정보마당』<sup>online</sup></online></html>, 한국문화정보원.</ref> | ||
+ | </gallery> | ||
#[[화랑도]]란 낭도들과 그들의 우두머리인 화랑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초기에는 일정한 연령층의 청소년들이 모여 공통된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질서를 터득하는 촌락 또는 부족 단위의 집단이었으나, 신라의 국세(國勢)가 팽창하고 통일전쟁을 위한 현실적 국가주의와 유불선의 보편적 정신세계가 융합되면서 신라의 삼국통일에 필요한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39160 화랑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 | #[[화랑도]]란 낭도들과 그들의 우두머리인 화랑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초기에는 일정한 연령층의 청소년들이 모여 공통된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질서를 터득하는 촌락 또는 부족 단위의 집단이었으나, 신라의 국세(國勢)가 팽창하고 통일전쟁을 위한 현실적 국가주의와 유불선의 보편적 정신세계가 융합되면서 신라의 삼국통일에 필요한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39160 화랑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 | ||
#[[화랑도]]는 그 창설로부터 [[신라의 삼국통일|삼국통일]]이 완성된 [[신라 문무왕|문무왕]]에 이르는 약 1세기 동안 융성하여, [[신라의 삼국통일|삼국통일]]의 어려운 시기에는 강한 무사도정신으로 나타나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나, 통일 후 나라에 태평시대가 계속되면서 쇠퇴하였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39160 화랑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 | #[[화랑도]]는 그 창설로부터 [[신라의 삼국통일|삼국통일]]이 완성된 [[신라 문무왕|문무왕]]에 이르는 약 1세기 동안 융성하여, [[신라의 삼국통일|삼국통일]]의 어려운 시기에는 강한 무사도정신으로 나타나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나, 통일 후 나라에 태평시대가 계속되면서 쇠퇴하였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39160 화랑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 | ||
11번째 줄: | 12번째 줄: | ||
===『[[이종상-태종무열왕]]』, 백제 정벌로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신라 태종무열왕|무열왕]]=== | ===『[[이종상-태종무열왕]]』, 백제 정벌로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신라 태종무열왕|무열왕]]===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로 살펴보는 [[매소성전투]]와 [[신라의 삼국통일|삼국통일]]의 완성=== |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로 살펴보는 [[매소성전투]]와 [[신라의 삼국통일|삼국통일]]의 완성=== |
2017년 11월 1일 (수) 20:19 판
목차
개요
민족기록화 전승편은 한반도의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세밀한 필치로 담아내어, 우리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그 중에서도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기까지의 과정과 결과, 관련된 사실들을 다룬 다수의 민족기록화 작품들이 존재한다. 이 작품들을 통해 신라가 한반도의 첫 통일국가라는 위업을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살펴본다.
내용
『정창섭-화랑도의 수련』, 신라의 군사적 기반이자 위인의 산실, 화랑도
- 화랑도란 낭도들과 그들의 우두머리인 화랑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초기에는 일정한 연령층의 청소년들이 모여 공통된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질서를 터득하는 촌락 또는 부족 단위의 집단이었으나, 신라의 국세(國勢)가 팽창하고 통일전쟁을 위한 현실적 국가주의와 유불선의 보편적 정신세계가 융합되면서 신라의 삼국통일에 필요한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다.[2]
- 화랑도는 그 창설로부터 삼국통일이 완성된 문무왕에 이르는 약 1세기 동안 융성하여, 삼국통일의 어려운 시기에는 강한 무사도정신으로 나타나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나, 통일 후 나라에 태평시대가 계속되면서 쇠퇴하였다.[3]
-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화랑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무열왕의 인척이자 신라의 장군 김유신(金庾信)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김유신은 15세 때인 609년에 화랑(花郞)이 되어 낭도를 이끌었는데 그 무리를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불렀다고 한다.[4] 두 번째는 황산벌싸움에서 백제군에 맞서 싸운 관창(官昌)이다. 『삼국사기』 열전에 관창은 용모가 우아하였으며 젊어서 화랑이 되었는데 사람들과 잘 사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5] 황산벌싸움이 일어난 660년 당시 관창은 16세로, 백제의 계백에게 거듭 사로잡히게 되어 결국 죽음을 당했다. 이를 본 신라군이 용맹하게 들고 일어나 백제군을 격퇴하게 되었다.[6]
『이종상-태종무열왕』, 백제 정벌로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무열왕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로 살펴보는 매소성전투와 삼국통일의 완성
⑥ 1964년~1965년-크레퐁과 깔깔이, 잇따른 히트상품 개발[11]
- 선경직물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 SK그룹은 한국전쟁 직후 폐허가 되었던 선경직물 공장부지를 매입한 1953년 4월 8일을 창립일로 정하고 기념해오고 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직원들과 함께 수원시 평동에 위치했던 공장부지에 돌과 자갈을 직접 나르고, 공장 내 고철을 팔아 첫 생산을 시작하였다.
- 1955년에 들어서면서 국내 직물업계는 극심한 침체국면을 맞았으나 선경직물만은 제품이 창고에 쌓일 틈도 없이 팔려나갔다. 선경직물의 인조견 '루스터'(Rooster; 장닭)가 지누시(地主; 직물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물에 담갔다가 말리는 공정)를 하지 않고도 재단이 가능한 유일한 안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해 10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창경원에서 개최된 '해방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닭표' 인조견은 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그때까지 일부 수요자들 사이에서만 인기를 누려오던 닭표 안감은 부통령상 수상으로 전국적인 브랜드가 됐다.[13]
- 1958년 5월, 봉황새를 수놓은 이불감인 '봉황새 이불감'은 출시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철야작업을 하며 시장의 수요를 맞추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봉황새 이불감은 출시 3개월 만에 웃돈이 붙어 거래됐다. 선경직물의 독점상품이었던 봉황새 이불감은 한동안 예비 신부가 꼭 준비해야 할 필수 혼수감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14]
- 1958년 11월 외제 나일론 직물과 품질이 비슷한 나일론 직물 태피터(Taffeta; 실크나 인조 섬유의 필라멘트사로 짠 가느다란 가로 골이 있는 직물)의 생산에 성공했으나, 한・일 간 외교 분쟁으로 1959년 6월 대일통상이 중단 되었고,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모든 경제활동이 일시에 위축됐다.[15] 부채 증가라는 위기 속에서 선경직물은 정전기 발생이 문제를 해결한 폴리에스터 직물을 출시하여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16]
- 1962년 4월 국내 직물업계 최초로 홍콩에 레이온 10만 마를 수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선경직물은 1962년 일년 동안 46,000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박창돈-선경직물』은 1962년 4월 이후로 추정되는데, 작품 하단 오른쪽에 뉴욕으로 수출하기 위해 포장된 박스를 확인할 수 있다.
- 선경직물은 1964년에는 크레퐁(구불구불한 주름이 있는 직물) 생산에 성공하였고, 뒤이어 1965년에 통풍이 잘되는 '깔깔이'를 개발하였다.
- 1968년 아세테이트 원사공장 준공, 1969년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준공으로 대한민국 원사생산 48톤 중 26%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종상-김대성과 석굴암』, 경주 석굴암에 깃든 호국정신
지식 관계망
중심요소
- 작품: 오승우-포항종합제철
- 작품: 박창돈-금성사
- 작품: 박창돈-선경직물
문맥요소
- Actor-단체: 포항종합제철
- Actor-단체: 포스코
- Actor-단체: 포스코 포항제철소
- Actor-단체: 포스코 광양제철소
- Actor-단체: 금성사
- Actor-단체: LG전자
- Actor-단체: LG그룹
- Actor-단체: 선경직물
- Actor-단체: SK그룹
- Actor-인물: 박정희
- Actor-인물: 박태준
- Actor-인물: 구인회
- Actor-인물: 최종건
- Place-장소: 포스코 역사관
- Heritage-문화유산: 금성 라디오 A-501
- Heritage-문화유산: 금성 냉장고 GR-120
- Heritage-문화유산: 금성 텔레비전 VD-191
- Concept-개념: 경제개발 5개년계획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기업의 탄생 | 오승우-포항종합제철 |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 |
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기업의 탄생 | 박창돈-금성사 |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 |
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기업의 탄생 | 박창돈-선경직물 |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
주석
- ↑ "선현의 표준영정",
『한민족정보마당』online , 한국문화정보원. - ↑ "화랑도",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화랑도",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김유신",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김부식,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한국인문고전연구소, 2012. 온라인 참조: "관창",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한국사사전편찬회,『한국고중세사사전』, 가람기획, 2007. 온라인 참조: "[1]", 한국고중세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SK네트웍스의 발자취",
『사이버역사관』online , SK네트웍스. - ↑ SK에너지, "선경직물의 탄생과 성장",
『SK에너지』online , 작성일 : 2013년 08월 22일. - ↑ SK에너지, "선경직물의 탄생과 성장",
『SK에너지』online , 작성일 : 2013년 08월 22일. - ↑ "SK네트웍스의 발자취",
『사이버역사관』online , SK네트웍스. - ↑ "SK네트웍스의 발자취",
『사이버역사관』online , SK네트웍스. - ↑ SK에너지, "선경직물의 탄생과 성장",
『SK에너지』online , 작성일 : 2013년 08월 22일. - ↑ 김창근,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0-31쪽.
- ↑ 김창근,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2-33쪽.
- ↑ 김창근,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3쪽.
- ↑ 김창근,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4-35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 자원
- SK에너지, "선경직물의 탄생과 성장",
『SK에너지』online , 작성일 : 2013년 08월 22일. - "SK네트웍스의 발자취",
『사이버역사관』online , SK네트웍스. - 김창근,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 "포스코의 45년 히스토리, 들어보실래요?", 포스코 소식/기업소식,
『hellp,posco』online , 포스코 기업 블로그. - 황은주, "포항제철", 산업·경제,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online , 국가기록원. - 이창운, "포항종합제철 준공", 산업/중소기업,
『국가기록원』online , 작성일: 2006년 12월 1일.
- SK에너지, "선경직물의 탄생과 성장",
유용한 정보
- 조익순, "에스케이그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조경식, "포스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포스코",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이광수, "LG전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현석, "금성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LG전자", 기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더 읽을거리
- 단행본
- 북모닝CEO편집팀, 『리더의 힘 거인의 탄생, 불멸의 한국리더: 최종건 회장편』, 북모닝CEO, 2016.
- 서갑경, 『철강왕 박태준 - 경영이야기』, 한언,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