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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궁중기록화 회화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8 고궁박물관.jpg | 〈친상책보의도(親上冊寶儀圖)〉.<ref> 국립고궁박물관(http://m.gogung.go.kr/) 소장.</ref> | 파일:궁중기록화 회화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8 고궁박물관.jpg | 〈친상책보의도(親上冊寶儀圖)〉.<ref> 국립고궁박물관(http://m.gogung.go.kr/) 소장.</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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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2일 (목) 14:55 판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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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
---|---|
한자표기 | 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 |
주제 | 제례 |
제작연대 | 19세기 |
구성 | 총 8폭 |
크기 | 전체 200 × 515cm/ 화면 125 × 504cm |
소장처 | 국립고궁박물관 |
목차
정의
종묘와 종묘 영녕전의 전도 및 종묘에서 시행되는 의식과 설찬(設饌), 반차(班次) 등을 그림으로 그리고 해설을 글로 표현한 총 8첩으로 구성된 병풍으로, 1860년대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1]
내용
해제
종묘 의례를 시각화한 유일한 자료로, 종묘에서 행해지는 제사 의식을 상반부에 그리고, 하반부에는 의식의 절차를 기록한 의주와 관련 규정을 썼다. 종묘 제례의 준비부터 의식의 종료에 이르는 전 과정을 시간별로 정리하였고, 참여자와 참여자의 신분, 역할, 착용복식까지 그림과 글로 기록해두었다.[2] 종묘 정전의 17실에 신주가 봉안된 것은 1866년(고종 3) 철종의 부묘 때였고, 종묘 정전의 18실에 신주가 들어간 것은 대한제국이 설립된 1899년(고종 36)에 사도세자가 장종(莊宗)으로 추존되어 13실에 봉안되면서 신주들의 위치가 차례로 밀려 철종의 신주가 제 18실로 내려왔다. 철종이 제 17실에 부묘된 1866년 이후부터 장종이 부묘되어 철종이 18실로 내려온 1899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15실과 제17실에 왕비위(王妃位)가 없는데, 철종비 철인왕후는 1878년에 승하하였는데, 종묘에 봉안된 것은 1880년 7월이며, 익종비 신정왕후는 1890년에 승하하였는데, 종묘에 부묘된 것은 1892년이었기 때문에 병풍의 제작 시기를 추려보면 1866년~1880년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3]
구성
〈종묘전도(宗廟全圖)〉 : 1첩
윗부분은 종묘 권역을 조감한 ‘종묘전도(宗廟全圖)’이다. 정전, 전사청, 어재전, 재실, 향대청, 망묘루, 집사청 등 종묘의 전체적인 제도를 알 수 있다. 아래에는 정전 이하 부속건물 및 설치물에 대한 규모와 기능, 정조대의 고실 등을 기록한 ‘종묘도설(宗廟圖說)’과 신실에 봉안된 책보, 교명, 유서 등의 현황, 신실의 구조와 설비, 정조대의 고실, 봉신 규례를 적은 ‘봉안규제(奉安規制)’이다.
〈영녕전전도(永寧殿全圖)〉 : 2첩
종묘 서쪽에 위치한 종묘 영녕전이 그려져 있다. 아래에는 종묘 영녕전 영역에 위치한 건물들의 명칭, 규모와 기능인 ‘영녕전도설(永寧殿圖說)’과 영녕전 제1실~제14실의 책보, 교명 봉안 현황, 신실의 구조와 설비, 정조대의 고실, 봉심규례를 적은 ‘봉안규제(奉安規制)’이다.
〈오향친제친행성기성생의도(五享親祭親行省器省牲儀圖)〉 : 3첩
왕이 직접 행하는 오향에 앞서 왕이 직접 제기 및 제수의 상태를 살펴보는 ‘성기례(省器禮)’와 ‘성성례(省牲禮)’의 과정을 그렸다. 아래에는 왕이 직접 종묘 제기와 제수를 살펴보는 성기례(省器禮)와 성성례(省牲禮)를 포함한 의주와 시일이 적혀있는 ‘오향친제의(五享親祭儀)’, 왕을 대신하여 오향을 올리는 의식의 의주와 시일이 적혀있는 ‘오향섭사의(五享攝事儀)’, 속절(俗節)과 삭망(朔望)에 지내는 제향의 의주를 적은 ‘속절삭망제의(俗節朔望祭儀)’, 월별로 새로 나오는 곡식, 과일, 축산물, 해산물 등의 품목과 이를 처음 올리는 의식의 의주를 적은 ‘천신의(薦新儀)’, 봄과 가을에 왕이 종묘에 친림하여 종묘 정전과 종묘 영녕전의 각 신실을 봉심하는 의식의 의주를 적은‘전알의(展謁儀 )’가 5첩까지 연속으로 적혀 있다. 화면 좌측에 종묘 정전 영역이 화면 높이에 맞춰 길게 배치되고, 오른쪽 아래에 어재전 영역이 작게 그려져 있다. 성기례(省器禮)와 성성례(省牲禮)의 정차를 표현하는 건물인 정전과 재전만을 부각시키고, 정전 영역의 평면을 길게 그렸다.
〈속절삭망의도(俗節朔望儀圖)〉ㆍ〈천신의도(薦新儀圖)〉 : 4첩
아랫부분에는 3첩에서 계속되는 ‘오향친제의(五享親祭儀)’에 이어 ‘오향섭사의(五享攝事儀)’가 적혀 있어 4첩에 부합하는 의설은 제5첩의 아래에 적혀있다. 정전 영역을 길게 반복 배치해 정전 안에서 시행되는 두 의례를 묘사하였다. 정조,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의 속절과 삭망(朔望)에 지내는 제례를 그린 〈속절삭망의도(俗節朔望儀圖)〉는 제복을 입은 헌관 이하 집사관들의 정해진 자리에 위치해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천신의도(薦新儀圖)〉는 제철에 처음 생산된 곡식과 과일, 축산물과 해산물 등 천물(薦物)을 먼저 올리는 의식을 그렸다. 계단 아래 동쪽에 천신관(薦新官)이 자리에 있고, 모두 녹색 단령 차림이다. 참가한 백관들은 취위(就位)하고 있다.
〈전알의도(展謁儀圖)〉 : 5첩
왕이 봄과 가을에 종묘에 와서 종묘 정전과 종묘 영녕전의 각 실을 봉심하는 의례인 ‘전알의(展謁儀)’가 그려져 있다. 왕이 좌우 통례(通禮)의 인도로 재전으로부터 동문을 통해 자리에 나아가 서향하여 서있어야 하고, 왕세자는 이미 상례(相禮)의 인도로 들어와 왕의 자리 남쪽에 설치된 자리로 나아가 위치한다. 백관들은 조복을 입고 있으며, 문 밖에 백관이 두 무리로 나눠 종묘 정전을 향해 시립하고 있는데, 문관은 북쪽에 종친과 무관은 남쪽에 서고 뒤에는 녹색 단령을 입고 서있는 백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향친제설찬도(五享親祭親設饌圖)〉 : 6첩
위에는 ‘오향친제설찬도(五享親祭親設饌圖)’가 그려져 있고, 아래에는 제기 배열 형태와 제수의 내용인 ‘설천도설(設饌圖說)’, 제기의 종류인 ‘제기(祭器)’, 다섯 가지 색의 과일 품목인 ‘오향대제오색과품(五享大祭五色果品)’이 그려져 있다.
〈오향친제반차도(五享親祭班次圖)〉 : 7첩
윗부분에는 ‘오향친제반차도(五享親祭班次圖)’가 그려져 있고, 아랫부분에는 [[종묘제례악의 ‘악장(樂章)’ㆍ등가와 헌가의 악기 종류인 ‘악기(樂器)’ㆍ문무(文舞)와 무무(武舞)인 ‘일무(佾舞)’, 왕의 대례복과 왕세자의 대례복인 면복(冕服), 백관의 제복 구성인 ‘사관제복(祀官祭服)’, 악사와 악공의 복식 구성인 ‘공인관복(工人冠服)’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반차도(班次圖)라는 제목 그대로 제사 시 종묘 정전의 기본 설비와 참가자들의 정해진 자리에 선 모습을 보여준다. 각자의 신분에 맞는 복식을 갖추고, 정해진 자리에 나아가 왕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으로 왕이 입장해 규(왕실남성)을 잡으면 의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친상책보의도(親上冊寶儀圖)〉 : 8첩
윗부분에는 ‘친상책보의(親上冊寶儀)’이며, 아랫부분에는 왕이 책보를 올리는 의식의 의주인 ‘친상책보의(親上冊寶儀)’가 적혀 있다. 추상존호 시에 왕이 직접 책보를 올리는 의식은 『국조오례의』, 『국조속오례의』, 『종묘의궤』 등에는 보이지 않으며, 영조대의 『상호도감의궤』에 처음 기록되어 있다. 상례(相禮)와 필선(弼善)이 왕세자 자리를 향해 북향하여 있고, 예의사(禮儀使, 의식절차의 진행을 맡은 관원)도 왕을 향해 북향하고 있어 왕과 왕세자가 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예의사가 왕을 인도해 계간을 올라 친히 책보를 올리는 예를 행하기 전의 그림이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 종묘서 |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 제례 | A는 B를 표현하였다 | A ekc:depicts B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 왕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 왕세자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 백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 국립고궁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 왕의 대례복 | A에 B가 그려져 있다 | A ekc:depicts B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 백관의 제복 | A에 B가 그려져 있다 | A ekc:depicts B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866년~1880년 사이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을 제작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76563 | 126.974953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종묘전도(宗廟全圖)〉.[4]
〈영녕전전도(永寧殿全圖)〉.[5]
〈오향친제친행성기성생의도(五享親祭親行省器省牲儀圖)〉.[6]
〈속절삭망의도(俗節朔望儀圖)〉.[7]
〈전알의도(展謁儀圖)〉.[8]
〈오향친제설찬도(五享親祭親設饌圖)〉.[9]
〈오향친제반차도(五享親祭班次圖)〉.[10]
〈친상책보의도(親上冊寶儀圖)〉.[11]
주석
- ↑ 한형주, 「영ㆍ정조대 변화된 종묘제례가 표현되다」,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국립고궁박물관, 2014, 151쪽.
- ↑ 박정혜, 「종묘제례를 그리고 기록해 후일의 지침으로 삼다」,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국립고궁박물관, 2014, 122쪽.
- ↑ 한형주, 「영ㆍ정조대 변화된 종묘제례가 표현되다」,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국립고궁박물관, 2014, 151쪽.
- ↑ 국립고궁박물관(http://m.gogung.go.kr/) 소장.
- ↑ 국립고궁박물관(http://m.gogung.go.kr/) 소장.
- ↑ 국립고궁박물관(http://m.gogung.go.kr/) 소장.
- ↑ 국립고궁박물관(http://m.gogung.go.kr/) 소장.
- ↑ 국립고궁박물관(http://m.gogung.go.kr/) 소장.
- ↑ 국립고궁박물관(http://m.gogung.go.kr/) 소장.
- ↑ 국립고궁박물관(http://m.gogung.go.kr/) 소장.
- ↑ 국립고궁박물관(http://m.gogung.go.kr/) 소장.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강제훈 외 8명,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국립고궁박물관, 2014.
-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조 행사기록화』,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김문식, 신병주 저, 『조선 왕실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 박정혜,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연구』, 일지사, 2000.
-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 한영우, 『조선왕조의 儀軌-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