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안성 칠장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68번째 줄: 68번째 줄:
 
| [[안성 칠장사]] || [[궁예]]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안성 칠장사]] || [[궁예]]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
 +
||[[박문수]] || [[안성 칠장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
 
|}
  

2017년 10월 8일 (일) 14:39 판

안성 칠장사
(安城 七長寺)
대표명칭 안성 칠장사
한자 安城 七長寺
주소 경기도 안성시 칠장로 399-18(죽산면 칠장리 764)
문화재 지정번호 경기문화재자료 제24호
문화재 지정일 1983년 9월 19일
교구정보 대한불교조계종
경내문화재 안성 칠장사 대웅전영산회상도, 안성 칠장사 목조지장삼존상과 시왕상 일괄, 안성 칠장사 범종,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정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사찰.

내용

역사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창건시기가 정확하지 않고 10세기 경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도 있다. 또한 고려시대 1014년(현종 5) 혜소국사 정현(慧炤國師 鼎賢)이 왕명으로 중건했다는 설이 있다.[1]

고려시대 1383년(우왕 9)에 개천사(開天寺)에 있던 고려역대실록을 이곳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389년(공양왕 1)에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된 것을 조선시대 1506년(중종 1)에 중건했다. 1623(인종 1)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원찰로 삼아 크게 중창했다. 이때 인목대비가 쓴 『금광명최승왕경』 10권 1질과, 자신의 한스런 심정을 토로한 시가 친필 족자가 전해오고 있다.[2]

1674년(현종 15) 권력자들이 장지로 쓰기 위하여 사찰을 불태웠으나 초견(楚堅)이 다시 중건했고, 1694년(숙종 20)에 다시 불에 탔으나 1704(숙종 30)에 석규가 대법당과 태청루 등을 지었으며, 1725년(영조 1)에 선진이 원통전을 세웠다. 1726년(영조 2), 1751년(영조 27)에도 약간 이축·증축했고 1877(고종 14)과 이듬해에 중건했다.[3][4]

사찰 명칭의 유래 및 특징

칠장사(七長寺)에는 ‘중원칠악’이라 불리는 일곱 도적이 스님을 내쫓기 위해 이곳에 쳐들어 왔지만 스님의 지혜로운 설법에 의해 도둑들은 현인(賢人)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를 근거로 절집은 칠장사라 불렀고, 절 뒷산은 이전의 ‘아미산’이라는 이름 대신 ‘칠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의 배경이 된 절이며, 또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 '임꺽정'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소설 속에서 임꺽정은 갖바치인 스승 병해대사를 만나러 칠장사를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또 신라 47대 협안왕의 서자인 궁예(弓裔)가 13세까지 이 절에서 활연습을 했다고도 전한다. 이같은 이야기를 증거하듯 칠장사 명부전의 벽에는 임꺽정과 궁예가 등장한다.[5]

관련문화유산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안성 칠장사 A는 B에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안성 칠장사 정현 A는 B가 중창하였다 A ekc:renovator B
안성 칠장사 자장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안성 칠장사 인목대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안성 칠장사 영창대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안성 칠장사 궁예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박문수 안성 칠장사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014년 정현안성 칠장사를 중창하였다
1383년 충주 개천사의 고려역대실록을 안성 칠장사로 옮겼다
1389년 왜구의 침입으로 안성 칠장사가 전소되었다
1623년 인목대비가 안성 칠장사를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원찰로 삼았다
1674년 권력자들이 장지를 쓰기위해 안성 칠장사를 불태웠으나 초견이 다시 중건했다
1704년 석규가 안성 칠장사에 대법당과 태청루를 지었다
1983년 안성 칠장사가 경기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시각자료

주석

  1. 이동 "칠장사", 『두산백과』online.
  2. 이동 "칠장사", 『두산백과』online.
  3. 이동 "칠장사", 『두산백과』online.
  4. 이동 "칠장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이동 고규홍외, 『대한민국 여행사전』, 터치아트, 2009. 온라인참조:"칠장사", 대한민국 여행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

  • 사찰문화연구원, 『전통사찰총서 3 - 경기도의 전통사찰Ⅰ』, 사찰문화연구원, 2008.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참조:"칠장사", 시공 불교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고규홍외, 『대한민국 여행사전』, 터치아트, 2009. 온라인참조:"칠장사", 대한민국 여행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칠장사", 『두산백과』online.
  • "칠장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