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암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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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말에 보우(普愚)가 지은 한시. 지은이는 고려말의 승려로 [[경한|백운(白雲)]]·[[혜근|나옹(懶翁)]]과 함께 여말3가(麗末三家)라고 불리고 있다. 『[[태고화상어록|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고양 태고사|태고암]]은 지은이의 호로 삼각산에 암자를 짓고 붙인 이름이다. | + | 고려 말에 보우(普愚)가 지은 한시. 지은이는 고려말의 승려로 [[경한|백운(白雲)]]·[[혜근|나옹(懶翁)]]과 함께 여말3가(麗末三家)라고 불리고 있다. 『[[태고화상어록|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고양 태고사|태고암]]은 지은이의 호로 삼각산에 암자를 짓고 붙인 이름이다.<ref>이종찬,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8874 태고암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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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고암가>는 모두 82구로 7언이 주조를 이루며, 단을 바꿀 때 6언으로 된 구가 5구가 있다. 이 점은 불교가송의 한 특질이기도 하다. 한시의 형태로는 악부체(樂府體)에 속한다. | + | <태고암가>는 모두 82구로 7언이 주조를 이루며, 단을 바꿀 때 6언으로 된 구가 5구가 있다. 이 점은 불교가송의 한 특질이기도 하다. 한시의 형태로는 악부체(樂府體)에 속한다.<ref>이종찬,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8874 태고암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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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고암가>의 내용은 자신이 왜 ‘태고’라는 호를 취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내 이 암자에 살고 있지만 나도 알지 못해, 깊고깊고 좁고좁지만 옹색함은 없다. <태고암가>는 [[고양 태고사|태고암]]이라는 암자의 영물시(詠物詩)처럼 보일 수 있지만 태고암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태고라는 무한의 시간이 지금과 맞닿는 점에서 시간의 초월성을 보이고, 암자라는 좁은 공간에 천지사방을 수용한 공간의 초탈을 의미하였다. | + | <태고암가>의 내용은 자신이 왜 ‘태고’라는 호를 취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내 이 암자에 살고 있지만 나도 알지 못해, 깊고깊고 좁고좁지만 옹색함은 없다. <태고암가>는 [[고양 태고사|태고암]]이라는 암자의 영물시(詠物詩)처럼 보일 수 있지만 태고암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태고라는 무한의 시간이 지금과 맞닿는 점에서 시간의 초월성을 보이고, 암자라는 좁은 공간에 천지사방을 수용한 공간의 초탈을 의미하였다.<ref>이종찬,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8874 태고암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당시 중국의 명망 높은 승려인 [[청공|석옥화상(石屋和尙)]]이 이 노래를 보고 바로 득도의 경지라 탄복하면서, 자신이 노래로 대답한 것이 <태고암가>의 발문처럼 남아 있다. | + | 당시 중국의 명망 높은 승려인 [[청공|석옥화상(石屋和尙)]]이 이 노래를 보고 바로 득도의 경지라 탄복하면서, 자신이 노래로 대답한 것이 <태고암가>의 발문처럼 남아 있다.<ref>이종찬,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8874 태고암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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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6일 (금) 13:54 판
태고암가(太古庵家) | |
대표명칭 | 태고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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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太古庵家 |
저자 | 보우(普愚) |
시대 | 고려 |
정의
고려 말에 태고 보우(普愚, 1301-1382)가 지은 한시.
내용
개요
고려 말에 보우(普愚)가 지은 한시. 지은이는 고려말의 승려로 백운(白雲)·나옹(懶翁)과 함께 여말3가(麗末三家)라고 불리고 있다.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태고암은 지은이의 호로 삼각산에 암자를 짓고 붙인 이름이다.[1]
형식
<태고암가>는 모두 82구로 7언이 주조를 이루며, 단을 바꿀 때 6언으로 된 구가 5구가 있다. 이 점은 불교가송의 한 특질이기도 하다. 한시의 형태로는 악부체(樂府體)에 속한다.[2]
내용
<태고암가>의 내용은 자신이 왜 ‘태고’라는 호를 취하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내 이 암자에 살고 있지만 나도 알지 못해, 깊고깊고 좁고좁지만 옹색함은 없다. <태고암가>는 태고암이라는 암자의 영물시(詠物詩)처럼 보일 수 있지만 태고암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 태고라는 무한의 시간이 지금과 맞닿는 점에서 시간의 초월성을 보이고, 암자라는 좁은 공간에 천지사방을 수용한 공간의 초탈을 의미하였다.[3]
당시 중국의 명망 높은 승려인 석옥화상(石屋和尙)이 이 노래를 보고 바로 득도의 경지라 탄복하면서, 자신이 노래로 대답한 것이 <태고암가>의 발문처럼 남아 있다.[4]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화엄경탐현기 | 화엄경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화엄경탄현기 | 법장 | A는 B가 저술하였다 | A dcterms:creator B |
법장 | 의상 | A는 B의 동문이다 | A ekc:isFellowOf B |
시간정보
주석
- ↑ 이종찬, "태고암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이종찬, "태고암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이종찬, "태고암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이종찬, "태고암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이종찬, "태고암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사전연구사,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4. 온라인 참조: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