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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3일 (일) 22:37 판
자초(自超) | |
대표명칭 | 자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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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自超 |
생몰년 | 1327(충숙왕 14)-1405(태종 5) |
호 | 무학(無學), 계월헌(溪月軒) |
성씨 | 박씨(朴氏) |
출신지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
승탑 |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
승탑비 |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비 |
목차
정의
고려 말-조선 초의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자초(自超)는 1327년(충숙왕 14)에 태어났다. 성은 박씨(朴氏), 호는 무학(無學), 당호는 계월헌(溪月軒), 법명은 자초(自超)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출신이다. 아버지는 인일(仁一)이고 후에 숭정문화시랑(贈崇政門下侍郞)으로 추증되었다.[1] 자초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연경재(硏經齋) 성해응(成海應)이 지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 그가 충남 서산 간월도(看月島)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나 『서산군읍지(瑞山郡邑誌)』 인물조에 무학신승(武學神僧)이 간월도(看月島)에 머물렀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다.[2]
출가수행
자초는 1344년(충혜왕 복위5) 나이 18세에 송광사 혜감국사의 수제자인 소지선사에게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그 뒤 용문산 혜명 법장국사를 찾아 교시를 받고 부도암이라는 암자 안에서 선정에 들었다. 그리고 20세가 되던 해인 1346년(충목왕 2)에 이르러서는 능엄경을 보고 홀연히 깨달았다. 그는 23세가 되던 1349년(충정왕 1) 가을에 진천 길상사에 머물렀고, 25세 되던 1352년(공민왕 1) 여름에 묘향산 금강암에서 정진하던 중 깨우침을 얻었다.[3]
구법유학
그가 26세 되던 1353년(공민왕 2) 가을에 입원하여 법원사에서 지공의 허락을 받고 다음해 1월 법천사에서 혜근을 만났다. 1354년 1월 법천사에 이르러 혜근을 참례하고 무령, 오대산을 유력하였다. 그후 서산 영엄사에 이르러 다시 혜근을 조우하고 두어해 머물면서 혜근에서 사사받았다. 그리고 귀국시 연도 광제선사에 머물고 있던 혜근을 찾아가 하직하고 귀국하였다. [4]
활동
입적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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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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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참고문헌
- 고익진, "무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탁효정, 여말선초 무학자초의 활동과 위상, 『회암사지박물관 연구총서』4 - 회암사와 불교사, 양주회암사지박물관, 2016, 176-207쪽.
- 황인규, 無學自超 硏究
- 황인규, 仁王山寺와_無學大師
- 황인규, 무학자초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