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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4일 (수) 22:29 판
연행만록 | |
한자명칭 | 燕行漫錄 |
---|---|
영문명칭 | A translation of Ouyang Xiu’s writing by Jeong Gyeongse |
작자 | 정경세 |
간행시기 | 17세기 |
기탁처 | 진주정씨 우복종택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1.7×32.0㎝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책 |
표기문자 | 한글 |
정의
『연행만록』은 정경세가 1609년(광해군1)에 동지사(冬至使)로 연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기록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연행만록』은 정경세가 1609년(광해군1)에 동지사(冬至使)로 연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기록이다. 사행단의 직책과 성명을 기록한 원역(員役), 황제에게 바치는 공물 목록을 기록한 진헌방물(進獻方物), 각종 문서(文書), 사행길의 도리(道里), 산천(山川), 성보(城堡), 명나라의 지방행정조직, 영사시(詠史詩)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포함된 <농강천표>는 구양수의 모친이 구양수에게 그 부친의 생전 언행을 전하는 내용이다. 세시 제사를 올릴 때나 술과 고기를 먹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부모를 생각하던 일, 관원으로서 백성의 원한을 풀어주고자 밤늦도록 공무를 보던 일,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고 어린 아들에게 전하라고 당부하던 일 등을 기록하였다. [1]
「농강천표」
「농강천표(瀧岡千表)」는 「롱강천표」, 「상강천표」라고도 하는데 농강(瀧岡)은 중국의 지명으로서 중국 현재에서는 상강으로 불린다. 구양수의 비지문은 조선 후기 문인들과 사대부가 부녀자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조선 후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비지문은 전통적 유교 규범을 충실히 따르는 여성상을 구현하거나 작자의 정에 의거하여 망자의 일상 체험을 서정적으로 그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 중 조선 후기 사대부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비지문은 전자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구양수의 비지문 중에서 특히 「농강천표(瀧岡千表)」가 널리 읽혔다. 남성 문인들은 「농강천표(瀧岡千表)」가 드러내고자 했던 점만을 부각해서 간결히 서술했던 점, 스스로를 불효자라 하여 부친 사후 60년, 모친 사후 17년만에야 「농강천표(瀧岡千表)」를 지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면 사대부가의 여성들은 「농강천표(瀧岡千表)」의 화자인 구양수의 어머니가 남편의 덕을 주체적으로 기술했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이 자료는 「농강천표(瀧岡千表)」를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정경세 | 연행만록 | A는 B를 저술하였다 | |
연행만록 | 농강천표 | A는 B를 포함한다 | |
구양수 | 농강천표 | A는 B를 저술했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조선 후기 | 정경세가 연행만록를 저술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6.475354 | 128.061761 | 진주정씨 우복종택에 연행만록이 소장되어 있다. |
37.39197 | 127.054387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연행만록이 소정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