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건-종합우수새마을(묵현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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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시기 전개되었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역점 과제는 크게 생활환경개선, 소득증대, 의식개혁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는 시기적으로 1970~1973년 기반조성단계, 1974~1976년 사업확산단계, 1977~1979년 사업심화단계로 나누어 구체적인 사업을 살펴볼 수 있다.<br/> | [[박정희]] 정권시기 전개되었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역점 과제는 크게 생활환경개선, 소득증대, 의식개혁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는 시기적으로 1970~1973년 기반조성단계, 1974~1976년 사업확산단계, 1977~1979년 사업심화단계로 나누어 구체적인 사업을 살펴볼 수 있다.<br/> | ||
1970년에서 73년에 이루어진 [[새마을운동]] 기반조성단계에는 생활환경개선을 위하여 마을안길확장, 지붕개량·담장개량 등 농촌주택개선, 공동시설물 설치 등이 시행되었으며, | 1970년에서 73년에 이루어진 [[새마을운동]] 기반조성단계에는 생활환경개선을 위하여 마을안길확장, 지붕개량·담장개량 등 농촌주택개선, 공동시설물 설치 등이 시행되었으며, | ||
− | 이를 통하여 농촌사회의 일상이 근대적 양식으로 재구성<ref> | + | 이를 통하여 농촌사회의 일상이 근대적 양식으로 재구성<ref>[http://theme.archives.go.kr/next/semaul/time01.do 새마을운동 기록과 현장, 국가기록원. 최종확인: 2017년 05월 10일.</ref>되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br/> |
해당 작품은 [[새마을운동]]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묵현리]]에서 1972년에 생활환경개선을 보여주는데, 기반조성단계에 이루어진 [[새마을운동]] 성과를 살펴볼 수 있다.<br/> | 해당 작품은 [[새마을운동]]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묵현리]]에서 1972년에 생활환경개선을 보여주는데, 기반조성단계에 이루어진 [[새마을운동]] 성과를 살펴볼 수 있다.<br/> | ||
이 작품은 초기 [[새마을운동]]의 주요 성과인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정리된 농지와 [[농촌주택개량사업]], [[지붕개량사업]]으로 교체된 원색의 슬레이트 지붕, 기계화된 농업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전원생활의 목가적이고 향토적인 이미지 대신 개간된 땅과 기계화된 노동과정을 담고 있다.<ref>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년, 89쪽.</ref> | 이 작품은 초기 [[새마을운동]]의 주요 성과인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정리된 농지와 [[농촌주택개량사업]], [[지붕개량사업]]으로 교체된 원색의 슬레이트 지붕, 기계화된 농업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전원생활의 목가적이고 향토적인 이미지 대신 개간된 땅과 기계화된 노동과정을 담고 있다.<ref>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년, 89쪽.</ref> |
2017년 5월 11일 (목) 14:26 판
종합우수새마을(묵현리) | |
작가 | 장두건 |
---|---|
제작연도 | 1973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새마을 |
분류 | 유화 |
소장처 | 미상 |
정의
이 작품의 배경은 경기도 남양주 화도읍 묵현리로, 박정희 정권 시기 추진된 새마을 운동으로 개간된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설명
작품 소재
박정희 정권시기 전개되었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역점 과제는 크게 생활환경개선, 소득증대, 의식개혁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는 시기적으로 1970~1973년 기반조성단계, 1974~1976년 사업확산단계, 1977~1979년 사업심화단계로 나누어 구체적인 사업을 살펴볼 수 있다.
1970년에서 73년에 이루어진 새마을운동 기반조성단계에는 생활환경개선을 위하여 마을안길확장, 지붕개량·담장개량 등 농촌주택개선, 공동시설물 설치 등이 시행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농촌사회의 일상이 근대적 양식으로 재구성[1]되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해당 작품은 새마을운동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묵현리에서 1972년에 생활환경개선을 보여주는데, 기반조성단계에 이루어진 새마을운동 성과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초기 새마을운동의 주요 성과인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정리된 농지와 농촌주택개량사업, 지붕개량사업으로 교체된 원색의 슬레이트 지붕, 기계화된 농업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전원생활의 목가적이고 향토적인 이미지 대신 개간된 땅과 기계화된 노동과정을 담고 있다.[2]
작품 배경
작품의 배경은 천마산 기슭에 자리한 묵현리로, 천마산을 트랙터로 개간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인 1972년 묵현리는 초가 44채, 기와집 21채에 69가구 373명이 살고 있고, 49가구가 논 160단보, 밭 144단보를 일궈 농업에 종사하는 조그만 마을이었다.[3]
시각적 안내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장두건 | 장두건-종합우수새마을(묵현리) | A는 B를 그렸다 | 년 |
장두건-종합우수새마을(묵현리) | 유인우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 |
장두건-종합우수새마을(묵현리) | 쌍성총관부 |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 @ |
전쟁기념관 | 장두건-종합우수새마을(묵현리) | A는 B를 소장하고 있다 | @ |
제11기계화보병사단 | 장두건-종합우수새마을(묵현리) | A가 B를 대여하였다 | 1991년 11월 30일-1992년 11월 29일 @ |
쌍성총관부 | 동녕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973년 | 장두건이 장두건-종합우수새마을(묵현리)을 그렸다 |
1991년 11월 30일-1992년 11월 29일 | 제11기계화보병사단이 장두건-종합우수새마을(묵현리)을 대여하였다 @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6959064 | 127.853384 | 제11기계화보병사단이 장두건-종합우수새마을(묵현리)을 대여하였다 @ |
37.532103 | 126.914133 | 전쟁기념관이 장두건-종합우수새마을(묵현리)을 소장하고 있다 @ |
그래프
참고문헌
-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년.
주석
- ↑ [http://theme.archives.go.kr/next/semaul/time01.do 새마을운동 기록과 현장, 국가기록원. 최종확인: 2017년 05월 10일.
- ↑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년, 89쪽.
- ↑ 김재혁, "(2) 표준 사업별로 본 우수 마을 그 현장을 가다|주택 환경 개선|양주군 화도면 묵현리", 『중앙일보』, 작성일: 1972년 03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