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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2일 (수) 03:22 판
초계정씨 단자 | |
영문명칭 | A document submitted to the Ministry of Rituals by Jo of Chogye, a wife of Jo Ji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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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 초계정씨 |
간행시기 | 1689년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83.0×57.5㎝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축 |
표기문자 | 한글 |
정의
1689년 7월에 조지원(趙持元)의 처 초계정씨(草溪鄭氏)가 예조에 올린 단자(單子)이다.
내용
1689년 7월에 조지원(趙持元)의 처 초계정씨(草溪鄭氏)가 예조에 올린 단자(單子)이다. 초계정씨는 고 참찬 문숙공(文肅公) 수몽(守夢) 정엽(鄭曄, 1565~1625)의 증손녀로 부친 정원(鄭援)이 후사가 없어서 먼 친적인 정일장을 양자로 삼았다. 그런데 정일장이 무능하고 불초하여 봉사조 전답과 노비를 탕진하고 종가의 집을 팔아먹었으며, 또한 가묘(家廟)를 버리고 집을 나가 부모와 조상의 신주를 지킬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에 초계정씨가 예조에 단자를 올려서 조상의 가묘를 모시고 와 임시로 봉안(奉安)할 수 있도록 제사(題辭: 판결문)를 내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조에서는 종사가 장차 없어질 것을 근심하여 사재(私財)를 출연해 옛날 집을 구매해 돌려준다면 가상한 일이 될 수 있으나, 사당을 옮겨 봉안하여 스스로 받드는 것은 종손을 핍박하여 가로막는 혐의가 생길 수 있으니 상고해서 시행하도록 제사(題辭)를 내렸다. [1]
관련항목
시간정보
공간정보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