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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의원]]은 1608년(선조41)부터 1615년(광해군7) 사이에 『언해두창집요』를 비롯한 각종 의서를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이 중 『[[동의보감]](東醫寶鑑)』은 1596년(선조29)에 허준이 편찬을 시작하여 1610년(광해군2)에 완료하였고, 1613년(광해군5)에 내의원에서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이로 미루어 볼때 『언해두창집요』는 『동의보감』의 편찬·간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내의원]]은 1608년(선조41)부터 1615년(광해군7) 사이에 『언해두창집요』를 비롯한 각종 의서를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이 중 『[[동의보감]](東醫寶鑑)』은 1596년(선조29)에 허준이 편찬을 시작하여 1610년(광해군2)에 완료하였고, 1613년(광해군5)에 내의원에서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이로 미루어 볼때 『언해두창집요』는 『동의보감』의 편찬·간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
− | 『언해두창집요』는 내용적 측면에서 「[[두창통치(痘瘡通治)]]」라는 조문을 만들어 | + | 『언해두창집요』는 내용적 측면에서 「[[두창통치(痘瘡通治)]]」라는 조문을 만들어 특별한 변증없이 사용할 수 있는 처방을 언급했다는 점, 허준의 임상적 경험을 토대로 간단한 처방이 실려있다는 점, 일상 생활에서 두창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가진다. <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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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諺解痘瘡集要의 의사학적 고찰」,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5쪽</ref> | 김민수, 「諺解痘瘡集要의 의사학적 고찰」,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5쪽</ref> | ||
2017년 4월 2일 (일) 14:31 판
언해두창집요 | |
한자명칭 | 諺解痘瘡集要 |
---|---|
영문명칭 | A medical book related to smallpox |
작자 | 허준 |
작성시기 | 1608년(선조41) |
간행시기 | 조선후기 |
간행처 | 내의원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C7-77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32.4×21.4㎝ |
판본 | 목판본 |
수량 | 2冊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정의
허준(1539~1615)이 선조의 명을 받아 저술하고, 1608년(선조41) 내의원에서 발간한 두창 관련 의서
내용
허준許浚(1539~1615)이 선조宣祖의 명을 받아 저술하고, 1608년(선조41) 내의원內醫院에서 발간한 두창痘瘡 관련 의서醫書이다. 이 책은 조선 후기에도 여러 차례 번각되었다. 두창은 천연두를 지칭하며, 천행두天行痘, 천두天痘, 천행발반창天行發斑瘡 등으로도 불린다. 권수제 아래에 (*옛한글)‘ 역 고틸 종요 모혼 방문’(*옛한글)이라는 한글 제목이 보인다. 허준의 발문에 의하면 1590년(선조23)과 1601년(선조34), 세자였던 광해군과 왕녀가 두창을 앓았는데 허준의 처방을 받고 완치된 일이 있었다. 이에 선조는 두창치료에 관한 언해본을 간행하게 하였다. 상권에서는 두창의 발병 원인, 예방법, 증상 및 진행 과정, 치료법 등에 대해 설명했고, 하권에서는 두창이 동반하는 다양한 합병증, 금기禁忌, 목욕법, 양법穰法, 후유증, 임산부의 두창, 반진斑疹 등에 대해 기술하였다. 이 책은 세조 때의 내의內醫 임원준任元濬이 편찬한『창진집瘡疹集』 등 기존의 국내 의서뿐만 아니라 명나라에서 수입된 의서까지 두루 참조했으며, 허준 자신의 풍부한 임상 경험도 상당 부분 수렴하였다.『언해두창집요』를 통해 의료 대중화에 고심했던 선조의 애민의식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조선 중기의 목판 인쇄문화를 비롯하여 17세기 국어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1]
부연설명
허준이 작성한 『언해두창집요』의 발문에서 '1590(선조23) 왕자가 두창에 걸려 허준이 시약하여 나았고, 1601(선조34)에 왕자와 왕녀가 두창에 걸려 시약하여 나았다. 이에 선조의 명으로 임진왜란 이후 없어진 『태산집』,『창진집』,『구급방』을 참고하고 언해(한글로 번역)하여 1602(선조35)에 편찬을 마쳤다. 1608년에 이희헌(李希憲)과 이각(李彳各)의 감독 아래에 내의원에서 간행하였다.' 라고 밝히고 있다. 허준이 편찬을 마치고 6년 뒤에 간행되었기 때문에 이 책의 간행은 허준이 직접 관여하지 않고 이희언과 이각의 감독 아래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2]
내의원은 1608년(선조41)부터 1615년(광해군7) 사이에 『언해두창집요』를 비롯한 각종 의서를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이 중 『동의보감(東醫寶鑑)』은 1596년(선조29)에 허준이 편찬을 시작하여 1610년(광해군2)에 완료하였고, 1613년(광해군5)에 내의원에서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이로 미루어 볼때 『언해두창집요』는 『동의보감』의 편찬·간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언해두창집요』는 내용적 측면에서 「두창통치(痘瘡通治)」라는 조문을 만들어 특별한 변증없이 사용할 수 있는 처방을 언급했다는 점, 허준의 임상적 경험을 토대로 간단한 처방이 실려있다는 점, 일상 생활에서 두창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가진다. [3]
시각자료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언해두창집요 | 인물 | 허준 | |
언해두창집요 | 인물 | 선조 | |
언해두창집요 | 개념 | 두창 | |
언해두창집요 | 개념 | 내의원 | |
언해두창집요 | 인물 | 광해군 | |
언해두창집요 | 인물 | 임원준 | |
언해두창집요 | 개념 | 창진집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608년 | 선조가 언해두창집요을 저술하였다 |
|-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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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9197 | 127.054387 | 장서각에 언해두창집요가 소장되어 있다. |
참고문헌
- 논문
- 채인숙,「17세기 醫書諺解의 국어학적 고찰」, 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