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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있는 [[달성 서씨]] 재사(齋舍). 청호재는 기묘사화를 일으킨 심정과 내외종간(內外從間)의 정을 끊고 의리를 밝혀 영천으로 이거(移居)하여 학문과 자연을 벗 삼아 일생을 마친 [[서숙원]](徐叔元)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있는 [[달성 서씨]] 재사(齋舍). 청호재는 기묘사화를 일으킨 심정과 내외종간(內外從間)의 정을 끊고 의리를 밝혀 영천으로 이거(移居)하여 학문과 자연을 벗 삼아 일생을 마친 [[서숙원]](徐叔元)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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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암마을 좌측 경부고속도로 아래 구암안길을 따라서 800여m 가다가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100여m 더 들어가면 있다. 갈림길에서 100여m 직진하면 고속도로 아래 터널이 나오는데 이곳을 지나 300m 더 들어가면 상로재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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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호재는 『중수기(重修記)』 기록에 의하면 1728년에 사림의 공의로 창건되었고, 이후 건물이 쇄락하여 1936년에 중수하고 50년 후인 1986년 풍우로 인해 퇴락한 것을 다시 한번 중수하였다. 2007년에는 기와에 이끼가 끼고 누수가 심해져 도리와 연목이 부식되어 무너질 지경에 이르러 중수 번와를 하였다. 이때 서재·대문채·주사 등 부속 건물들도 함께 보수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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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호재는 낮은 구릉 아래 재사, 주사, 부속사 대문채 건물들이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재사는 남동향하여 세워졌는데 지붕의 외형이 독특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일자형 겹집으로, 실의 배열은 좌측 칸을 통칸방으로 구성하였고, 가운데칸과 우측 칸은 전면에는 마루 칸으로 꾸미고 후면에는 방을 두었다. 기단은 전·후면의 높이 차로 인해 전면에는 화강석 장대석을 3단으로 쌓고 측면과 후면에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넓적한 방형의 자연석을 놓고 기둥은 모두 원주를 세웠다. 원주는 약한 민흘림을 두었고 단면 크기는 29㎝로 규모에 맞는 적절한 것을 사용하였다. 창호는 방의 경우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고 대청 우측면에는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전면 어칸 기둥 상부에는 창방과 처마도리 장여 사이 소로를 끼워 장식하였다. 가구는 3량 구조로 대들보 위에 긴 동자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게 한 형식이다. 처마는 서까래만 사용한 홑처마에 지붕은 맞배지붕에 눈썹지붕을 달아내어 외형이 특이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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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릉지에 청호재만 있고 주변에는 건물이 없다. 재사 일곽은 토석담장을 둘러 외부와 경계 짓고, 대문채 담장 밖으로는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대문채는 소슬삼문 형식으로 중앙에 출입문을 달고 좌·우측에는 방을 드렸다. 재사 좌측에는 4칸 규모의 맞배집 주사가 세워져 있고, 우측 담장 밖에는 관리사가 배치되어 있다. 재사 및 주변 건물의 관리 상태는 양호하다. | ||
+ | 건립 연대가 명확하고 건물의 형식이 영천 지역의 보편적인 재사 형식과는 달리 평면과 가구 구성이 특이하여 건축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
2024년 4월 14일 (일) 09:10 판
청호재(菁湖齋)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있는 달성 서씨 재사(齋舍). 청호재는 기묘사화를 일으킨 심정과 내외종간(內外從間)의 정을 끊고 의리를 밝혀 영천으로 이거(移居)하여 학문과 자연을 벗 삼아 일생을 마친 서숙원(徐叔元)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구암마을 좌측 경부고속도로 아래 구암안길을 따라서 800여m 가다가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100여m 더 들어가면 있다. 갈림길에서 100여m 직진하면 고속도로 아래 터널이 나오는데 이곳을 지나 300m 더 들어가면 상로재가 있다.
청호재는 『중수기(重修記)』 기록에 의하면 1728년에 사림의 공의로 창건되었고, 이후 건물이 쇄락하여 1936년에 중수하고 50년 후인 1986년 풍우로 인해 퇴락한 것을 다시 한번 중수하였다. 2007년에는 기와에 이끼가 끼고 누수가 심해져 도리와 연목이 부식되어 무너질 지경에 이르러 중수 번와를 하였다. 이때 서재·대문채·주사 등 부속 건물들도 함께 보수되었다.
청호재는 낮은 구릉 아래 재사, 주사, 부속사 대문채 건물들이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재사는 남동향하여 세워졌는데 지붕의 외형이 독특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일자형 겹집으로, 실의 배열은 좌측 칸을 통칸방으로 구성하였고, 가운데칸과 우측 칸은 전면에는 마루 칸으로 꾸미고 후면에는 방을 두었다. 기단은 전·후면의 높이 차로 인해 전면에는 화강석 장대석을 3단으로 쌓고 측면과 후면에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넓적한 방형의 자연석을 놓고 기둥은 모두 원주를 세웠다. 원주는 약한 민흘림을 두었고 단면 크기는 29㎝로 규모에 맞는 적절한 것을 사용하였다. 창호는 방의 경우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고 대청 우측면에는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전면 어칸 기둥 상부에는 창방과 처마도리 장여 사이 소로를 끼워 장식하였다. 가구는 3량 구조로 대들보 위에 긴 동자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게 한 형식이다. 처마는 서까래만 사용한 홑처마에 지붕은 맞배지붕에 눈썹지붕을 달아내어 외형이 특이하다.
구릉지에 청호재만 있고 주변에는 건물이 없다. 재사 일곽은 토석담장을 둘러 외부와 경계 짓고, 대문채 담장 밖으로는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대문채는 소슬삼문 형식으로 중앙에 출입문을 달고 좌·우측에는 방을 드렸다. 재사 좌측에는 4칸 규모의 맞배집 주사가 세워져 있고, 우측 담장 밖에는 관리사가 배치되어 있다. 재사 및 주변 건물의 관리 상태는 양호하다. 건립 연대가 명확하고 건물의 형식이 영천 지역의 보편적인 재사 형식과는 달리 평면과 가구 구성이 특이하여 건축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