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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8일 (수) 15:40 판
서효격(徐孝格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서효격(徐孝格)[1855~1936]은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서기(書記)에 선임되어 각종 문서를 담당하며 『적원일기(赤猿日記)』를 기록하였다.
가계
본관은 달성 서씨(達城). 자는 순가(順可), 호는 오산(午山). 1855년 12월 26일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서 아버지 서운희(徐運熙)와 어머니 진성이씨(眞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 태종 때의 문신 달성군(達城君) 서진(고려)(徐晉)의 후예이다.
활동 사항
서효격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에 참여하였다. 1896년 3월 8일 안동의진(安東義陣)의 소모장(召募將)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으로 들어왔다. 유시연은 3월 9일 청송 관아의 군기(軍器) 탈취를 시도하고 거의(擧義)를 촉구하는 격문을 청송 유림들에게 보냈다. 이에 고무된 청송 유림들이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창의(倡義)를 추진하였다. 서효격은 3월 12일 청송 유림 200여 명과 함께 향회(鄕會)를 개최하여 창의하기로 하고, 이날 오후 객사(客舍)에서 창의장(倡義將)으로 심성지(沈誠之)를 추대하였다.
3월 15일 부장(副將) 조성박(趙性璞), 우익장(右翼將) 권성하(權成夏), 좌익장(左翼將) 김상길(金相吉)을 내정하고, 참모(參謀)와 서기(書記) 이하를 선발하였다. 3월 16일 대장기(大將旗)를 세우고 창의하였으며, 3월 17일 축문(祝文)과 창서사(唱誓辭)를 낭독하며 천신과 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3월 22일 김대락(金大洛)을 중군장(中軍將),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원(徐孝源)을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로 임명하여 진용을 갖추었다. 이때 서효격은 청송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기에 추대되었다.
서효격은 청송의진의 각종 문서를 관장하는 서기로 활동하였다. 1896년 3월 2일부터 해산하는 5월 25일까지 85일간의 청송의진의 진중일기인 『적원일기(赤猿日記)』를 서기 심의식(沈宜植), 참모 오세로(吳世魯) 등과 함께 기록하였다. 그중에서 서효격은 4월 5일부터 4월 13일까지 기록을 담당하였다. 1936년 12월 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6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