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대례복"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인용 및 참조) |
(→인용 및 참조) |
||
(사용자 2명의 중간 판 6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궁중기록화관 Top icon}} | {{궁중기록화관 Top icon}} | ||
{{복장정보 | {{복장정보 | ||
− | |사진= | + | |사진= 궁중기록화 복장 황제의 대례복 김아람.png |
− | |사진출처= | + | |사진출처= |
|대표명칭= 황제의 대례복 | |대표명칭= 황제의 대례복 | ||
|한자표기= 皇帝의 大禮服 | |한자표기= 皇帝의 大禮服 | ||
12번째 줄: | 12번째 줄: | ||
=='''정의'''== | =='''정의'''== | ||
− | 대한제국 [[황제]]가 | + | 대한제국 [[황제]]가 [[제례]]나 [[가례]], 즉위식 등의 중요한 의례를 행할 때 [[면관|면관(冕冠)]]과 함께 착용하는 복식 일습이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8쪽.</ref> |
=='''내용'''== | =='''내용'''== | ||
− | + | [[황제]]의 권한을 상징하는 법복(法服)으로, 조선시대의 면복은 1402년(태종 2, 명 영락 원년)에 건문제(建文帝)로부터 사여받은 [[왕의 대례복|구장복]]을 기본 규정으로 삼았다. 국가의 [[길례]], [[가례]], [[흉례]] 등 다양한 성격의 의례에 착용하는 복식이다. 즉위 시에는 물론 [[종묘]]와 [[사직단|사직]]에 제사 지낼 때, 설날이나 동지 등의 하례식이나 절일(節日), 망궐례(望闕禮) 등에 착용했다. [[흉례]]에서는 [[대렴]]에 입혀졌다.<ref>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101쪽.</ref> 면복은 [[면관|면관(冕冠)]]과 곤복(袞服)으로 불리는 [[면복 상의|면복 상의(冕服 上衣)]]와 [[면복 하상|면복 하상(冕服 下裳)]]을 합쳐 부른다. 착용하는 사람의 지위에 따라 [[면관|면관(冕冠)]]에 늘어뜨린 줄인 류(旒)와 곤복에 새겨진 장문(章紋)의 개수가 다르다. [[황제의 대례복]]은 12류면(十二旒冕)과 12장복(十二章服)이다. 목 부분에 덧다는 [[방심곡령(왕실남성)|방심곡령]]은 제사 때만 착용한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8쪽.</ref> | |
===복식 구성=== | ===복식 구성=== | ||
21번째 줄: | 21번째 줄: | ||
=='''지식 관계망'''== | =='''지식 관계망'''== | ||
+ | <html> | ||
+ | <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 | ||
+ | <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 | ||
+ | <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dh.aks.ac.kr/Encyves/Graph/B031/B031.ht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 | </html> | ||
+ | |||
===관계정보=== | ===관계정보=== |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
89번째 줄: | 95번째 줄: |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
* 金明淑,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國葬都監儀軌 服玩圖說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 金明淑,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國葬都監儀軌 服玩圖說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
− | * 金明淑,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한국복식학회지』 18권, 1992. | + | * 金明淑,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한국복식학회지』 18권, 한국복식학회, 1992. |
− | * 金明淑, 「朝鮮後期 冕服의 變遷-國葬都監儀軌 服玩圖設을 통한 考察-」, 『한국복식학회지』 7권, 1983. | + | * 金明淑, 「朝鮮後期 冕服의 變遷-國葬都監儀軌 服玩圖設을 통한 考察-」, 『한국복식학회지』 7권,한국복식학회, 1983. |
* 金明淑, 「한국과 중국의 袞冕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 金明淑, 「한국과 중국의 袞冕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
* 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 * 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 ||
102번째 줄: | 108번째 줄: | ||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
− | === | + | ===일러스트 참고문헌=== |
+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
+ | * 난사 전통복식문화재 연구소, 『어진에 옷을 입히다』, 민속원, 2016. | ||
+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
+ |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 | ||
[[분류:궁중기록화]] | [[분류:궁중기록화]] | ||
[[분류:복장]] | [[분류:복장]] |
2020년 7월 18일 (토) 11:28 기준 최신판
황제의 대례복 (皇帝의 大禮服) |
|
대표명칭 | 황제의 대례복 |
---|---|
한자표기 | 皇帝의 大禮服 |
이칭별칭 | 면복(冕服), 12장복(十二章服) |
분류 | 예복 |
착용신분 | 황제 |
착용성별 | 남성 |
목차
정의
대한제국 황제가 제례나 가례, 즉위식 등의 중요한 의례를 행할 때 면관(冕冠)과 함께 착용하는 복식 일습이다.[1]
내용
황제의 권한을 상징하는 법복(法服)으로, 조선시대의 면복은 1402년(태종 2, 명 영락 원년)에 건문제(建文帝)로부터 사여받은 구장복을 기본 규정으로 삼았다. 국가의 길례, 가례, 흉례 등 다양한 성격의 의례에 착용하는 복식이다. 즉위 시에는 물론 종묘와 사직에 제사 지낼 때, 설날이나 동지 등의 하례식이나 절일(節日), 망궐례(望闕禮) 등에 착용했다. 흉례에서는 대렴에 입혀졌다.[2] 면복은 면관(冕冠)과 곤복(袞服)으로 불리는 면복 상의(冕服 上衣)와 면복 하상(冕服 下裳)을 합쳐 부른다. 착용하는 사람의 지위에 따라 면관(冕冠)에 늘어뜨린 줄인 류(旒)와 곤복에 새겨진 장문(章紋)의 개수가 다르다. 황제의 대례복은 12류면(十二旒冕)과 12장복(十二章服)이다. 목 부분에 덧다는 방심곡령은 제사 때만 착용한다.[3]
복식 구성
면관(冕冠), 의(衣), 상(裳), 중단(中單), 대대(大帶), 옥대(玉帶), 폐슬(蔽膝), 패옥(佩玉), 후수(後綬), 적석(赤舃), 적말(赤襪), 규(圭), 방심곡령(方心曲領).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황제 | 황제의 대례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제의 대례복 | 의궤 |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 A ekc:mentions B |
황제의 대례복 | 면관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면복 상의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면복 하상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중단(왕실남성)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폐슬(왕실남성)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후수(왕실남성)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패옥(왕실남성)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대대(왕실남성)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적말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적석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규(왕실남성)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방심곡령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제의 대례복 | 상의원 |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황제의 대례복 | 면복각 | A는 B에 보관되었다 | A edm:former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897년 10월 | 고종이 황제의 대례복을 착용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577850 | 126.989909 | 창덕궁 돈화문 근처 면복각에서 황제의 대례복을 보관했다 |
시각자료
갤러리
황제의 대례복 차림의 순종.[4]
영상
주석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8쪽.
- ↑ 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101쪽.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8쪽.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0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고광림, 『한국의 관복』, 화성사, 1995.
- 국립고궁박물관 엮음,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金明淑,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國葬都監儀軌 服玩圖說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金明淑,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한국복식학회지』 18권, 한국복식학회, 1992.
- 金明淑, 「朝鮮後期 冕服의 變遷-國葬都監儀軌 服玩圖設을 통한 考察-」, 『한국복식학회지』 7권,한국복식학회, 1983.
- 金明淑, 「한국과 중국의 袞冕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김문식·김지영·박례경·송지원·심승구·이은주, 『왕실의 천지제사』, 돌베개, 2011.
- 유희경, 「冕服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2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4.
- 이은진, 조효진, 「조선말기 왕실복식 소재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 11권 3호, 한복문화학회, 2008.
- 이혜경,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복문화』 4권 4호, 한복문화학회, 2001
- 전혜숙,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의의를 중심으로」, 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일러스트 참고문헌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난사 전통복식문화재 연구소, 『어진에 옷을 입히다』, 민속원, 2016.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