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식언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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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A Korean translation of Hwaposik which is an instruction manual of guns and gunpowder manufacturing. | |영문명칭= A Korean translation of Hwaposik which is an instruction manual of guns and gunpowder manufacturi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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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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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장서각]] 소장본은 책 후반부에 『[[신전자취염초방언해|신전자취염초방언해(新傳煮取焰硝方諺解)]]』가 합철되어 있고, 책 끝에 [[최명길|최명길(崔鳴吉,1586-1647)]]의 발문이 실려 있는데, 1685년(숙종 11)에 [[황해 병영|황해 병영(黃海兵營)]]에서 중간한 목판본이다. | ||
+ | 이 책은 조총류(鳥銃類)를 수록하지 않은 점과 사거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당시에 사용된 화약병기의 종류와용약법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본 간의 비교를 통해 17세기 국어 표기법의 변화과정을 엿볼 수 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98쪽.</REF> | ||
− | == | + | ===[[화포식언해]] 판본에 대해서=== |
− | [[ | + | 『[[화포식언해]]』는 본래 [[최명길]]의 [[최명길 발문|발문]]에 언급된 것처럼 처음부터 『[[신전자취염초방언해|신전자취염초방언해(新傳煮取焰硝方諺解)]]』와 합철되어 간행된 것이 분명하다. 현재 남아있는 『[[화포식언해]]』는 제본 상태에 따라서 약 5가지로 압축 된다.<ref>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8쪽. |
+ | </ref> | ||
− | + | 첫 번째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와 합철된 판본이다. 이 책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서강대학교]]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장서각]]에 보존된 것은 『[[신전자취염초방언해]]』 권 말 최명길 발문 끝에 숭정8년(1635) 간행 간기만 붙어 있어 이시기 초간본으로 보인다. [[서강대학교|서강대]]에 소장된 것은 끝에 한 장을 더 추가하여 1685년에 다시 간행한 중간본임을 알 수 있다.<ref>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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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두 번째 형태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 앞에 필사본인 『[[매화법]]』이 추가된 것이다. 『[[매화법]]』 필사 시기는 정확하지 않고 합철된 『[[신전자취염초방언해]]』가 있으니 서강대 소장본과 같은 1685년 형태라 볼 수 있겠다.<ref>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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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세 번째 형태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 뒤에 『[[신전자초방]]』이 추가된 본이다. 이 『[[신전자초방]]』의 기록은 『[[비변사등록]]』의 기록에서 1796년 5월 12일 기사로 밝혀지고 있어 간행 년도를 1796년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판본과 비교해 보아도 내용이 워낙 비슷하며, 『[[신전자취염초방언해]]』 끝에 ‘監校官副司果金益粲’란 부분이 희미하게 남아있어 후대 보다는 1685년 중간본으로 보는 것이 확실할 것이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ref>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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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네 번째 형태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 대신 『[[신전자초방]]』이 합철된 것이다.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책의 상태나 함께 묶인 『[[신전자초방]]』의 간기(刊記)를 보아도 후대에 따로 묶었다기 보다는 1709년에 함께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ref>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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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형태는 오로지 『[[화포식언해]]』만 있는 경우이다. 유일하게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판본의 간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추측한다면 『[[신전자취염초방언해]]』가 소용없게 된 시점 인 18세기 초 무렵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ref>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100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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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국 무기체계의 특징 === | ||
+ | 조선의 화기는 중국과 일본과 다르게 火車가 비중 있게 발달되어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보편적인 연구자들의 생각은 화포의 명중률과 실효성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의 경우, 화약 연료인 염초가 내지에서 생산되고 다양한 조공 제도를 통하여 유황이 수입되고 있어, 원하는 대로 화약을 제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중국은 이를 이용하여 엄청나게 많은 수의 화기인 총포(銃砲)를 보유하고 대량의 포탄 세례를 퍼붓는 방식으로 적을 제압했다. 그래서 그들 입장에서는 화차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반면 조선의 경우는 염초 생산량이 제한되어 있었고, 유황의 수입 경로도 제한적이었다. 많은 수량의 화약을 만들 수 없었고 중국처럼 대량의 화약과 포탄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조선으로서는 대량의 포탄 세례보다는 넓은 범위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화차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조총(鳥銃)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일본 전국시대|전국시대]] 시기(1460년대~1600년대) 이 무기가 제일 효과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일본의 군대는 평야지역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기병과 보병으로 양분되었는데, 이 때 도입된 조총이 집중된 전근대 회전(會戰) 방식에서 큰 효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도 조선처럼 화약이 많이 나는 지역이 아니었다. 화산이 많아서 화약 재료인 유황은 생산되었지만, 너무 습한 기후 때문에 염초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였다.<ref>王兆春, 『中國火器史』, 軍事科學出版社, 1991.</ref> | ||
+ | <ref>이창섭, 「明朝 硫黃의 관리와 需給體系의 변화」,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ref> | ||
+ | <ref>정지연, 「朝鮮前期 對日 私貿易 硏究-太祖~成宗代를 中心으로」, 『한일관계사연구』, Vol 24, 2006, 27~68쪽.</ref> | ||
+ | <ref>김병륜, 「망함 火車의 구조적 특성과 실효성」, 『孔子學』, Vol 21, 2011, 65~105쪽.</ref> | ||
+ | |||
+ | ===화차의 발달 과정=== | ||
+ | 화차의 발달 과정을 보면, 초기에는 수레 위에 여러 개의 [[총통|총통(銃筒)]]을 얹는 방식으로 [[조선 문종|문종(文宗, 1450~1452)]]이 개발하였다. 이를 [[사전총통]]이라 하는데 대부분 화살형 발사체인 [[세전]]을 [[총통]] 안에 넣고 화약 폭발력으로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50문에 4발씩 [[세전]]을 장전하여 발사 할 수 있었으니 약 200발이 동시에 나가는 화력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세전]] 발사체뿐만 아니라 중형 [[신기전|신기전(神機箭]])을 탑재하여 발사하는 방식의 화차도 있었다. 이후 화차는 [[세전]]이나 [[신기전]] 발사 방식에서 벗어나 [[승자총통]] 40문을 화차에 탑재하고 발사체도 탄환으로 바꾸는 형태가 된다. 바로 이 화차가 임진왜란 시기에 나온 [[망암화차|망암화차(望菴火車)]] 이다.<ref>김병륜, 「망함 火車의 구조적 특성과 실효성」, 『孔子學』, Vol 21, 2011, 69~77쪽. | ||
+ | </ref> | ||
+ | |||
+ | ===[[화포식언해]]의 장점=== | ||
+ | 『[[화포식언해]]』는 화약무기 전문서적으로서, 화기 운용의 대상을 군관에만 한정한 것이 아니라, 일반 병사까지도 습득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물론 중국에서도 화기 사용법에 대한 설명서인 『[[무비지]]』가 있으나, 당시 일반 사람들이 구입하기도 어려웠고, 일반 병사들은 문맹률이 높아서 습득하기도 어려웠다.<ref>王兆春, 『中國火器史』, 軍事科學出版社, 1991, 1~34쪽. | ||
+ | </ref> | ||
− | == | + | =='''지식 관계망'''== |
+ | * '''화포식언해 지식관계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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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crip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script> | ||
+ | <input type="button" value="Graph" onclick="reload();"> | ||
+ | <iframe width="100%" height="670px" src="http://dh.aks.ac.kr/Encyves/Graph/A042/A042.ht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
+ | </html> | ||
+ | ===관련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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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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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포식언해]]||[[이서]]||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A dcterms:creator 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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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파일:한글팀 화포식언해 02 책1.jpg | 화포식언해 책1 |
− | + | 파일:한글팀 화포식언해 03 책2.jpg | 화포식언해 책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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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주석'''== |
+ | <references/> | ||
− | == | + | =='''참고문헌'''== |
− | + | ===더 읽을 거리=== | |
+ | *단행본 | ||
+ | **王兆春, 『中國火器史』, 軍事科學出版社, 1991. | ||
+ | *논문 | ||
+ | **이창섭, 「明朝 硫黃의 관리와 需給體系의 변화」,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 ||
+ | **김병륜, 「망함 火車의 구조적 특성과 실효성」, 『孔子學』, Vol 21, 2011, 65~105쪽. | ||
+ |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총 571쪽. | ||
+ | **정지연, 「朝鮮前期 對日 私貿易 硏究-太祖~成宗代를 中心으로」, 『한일관계사연구』, Vol 24, 2006, 27~68쪽. | ||
+ | **許善道, 「朝鮮中期 火器의 發達-상-」, 『歷史學報』, 30, 1966, 47~107쪽. | ||
+ | **許善道, 「朝鮮中期 火器의 發達-하-」, 『歷史學報』, 31, 1966, 67~127쪽. | ||
− | [[분류: | + | [[분류:한글고문서]] |
− | [[분류: | + | [[분류:전시자료]] [[분류:문헌]] |
− | |||
− | [[분류: |
2018년 3월 29일 (목) 00:42 기준 최신판
화포식언해 | |
한자명칭 | 火砲式諺解 |
---|---|
영문명칭 | A Korean translation of Hwaposik which is an instruction manual of guns and gunpowder manufacturing. |
작자 | 이서 |
작성시기 | 1635년 |
간행시기 | 조선후기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3-311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33.3×21.8㎝ |
판본 | 목판본 |
수량 | 1冊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목차
정의
이서가 인조 대에 각종 총포의 사용법과 화약 제조법을 기술하여 간행한 『화포식(火砲式)』의 한글 언해본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이서(李曙,1580-1637)는 이 책에서 먼저 제반 총통(銃筒)의 일반적인 용약법(用藥法)을 기술한 다음 천자총통(天字銃筒)·지자총통(地字銃筒)·별황자총통(別黃字銃筒)·대완구(大碗口) 등 각종 화약병기의 용약법과 발사물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중신기 화차(中神機 火車)> 항목에는 현대 다연장로켓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중신기전 1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중신기화차와 주자총통 50문을 탑재할 수 있는 화차 등이 수록되어 있다. 본 장서각 소장본은 책 후반부에 『신전자취염초방언해(新傳煮取焰硝方諺解)』가 합철되어 있고, 책 끝에 최명길(崔鳴吉,1586-1647)의 발문이 실려 있는데, 1685년(숙종 11)에 황해 병영(黃海兵營)에서 중간한 목판본이다. 이 책은 조총류(鳥銃類)를 수록하지 않은 점과 사거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당시에 사용된 화약병기의 종류와용약법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본 간의 비교를 통해 17세기 국어 표기법의 변화과정을 엿볼 수 있다.[1]
화포식언해 판본에 대해서
『화포식언해』는 본래 최명길의 발문에 언급된 것처럼 처음부터 『신전자취염초방언해(新傳煮取焰硝方諺解)』와 합철되어 간행된 것이 분명하다. 현재 남아있는 『화포식언해』는 제본 상태에 따라서 약 5가지로 압축 된다.[2]
첫 번째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와 합철된 판본이다. 이 책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서강대학교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장서각에 보존된 것은 『신전자취염초방언해』 권 말 최명길 발문 끝에 숭정8년(1635) 간행 간기만 붙어 있어 이시기 초간본으로 보인다. 서강대에 소장된 것은 끝에 한 장을 더 추가하여 1685년에 다시 간행한 중간본임을 알 수 있다.[3]
두 번째 형태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 앞에 필사본인 『매화법』이 추가된 것이다. 『매화법』 필사 시기는 정확하지 않고 합철된 『신전자취염초방언해』가 있으니 서강대 소장본과 같은 1685년 형태라 볼 수 있겠다.[4]
세 번째 형태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 뒤에 『신전자초방』이 추가된 본이다. 이 『신전자초방』의 기록은 『비변사등록』의 기록에서 1796년 5월 12일 기사로 밝혀지고 있어 간행 년도를 1796년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판본과 비교해 보아도 내용이 워낙 비슷하며, 『신전자취염초방언해』 끝에 ‘監校官副司果金益粲’란 부분이 희미하게 남아있어 후대 보다는 1685년 중간본으로 보는 것이 확실할 것이다. 현재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5]
네 번째 형태는 『신전자취염초방언해』 대신 『신전자초방』이 합철된 것이다.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책의 상태나 함께 묶인 『신전자초방』의 간기(刊記)를 보아도 후대에 따로 묶었다기 보다는 1709년에 함께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6]
마지막 형태는 오로지 『화포식언해』만 있는 경우이다. 유일하게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판본의 간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추측한다면 『신전자취염초방언해』가 소용없게 된 시점 인 18세기 초 무렵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7]
3국 무기체계의 특징
조선의 화기는 중국과 일본과 다르게 火車가 비중 있게 발달되어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보편적인 연구자들의 생각은 화포의 명중률과 실효성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의 경우, 화약 연료인 염초가 내지에서 생산되고 다양한 조공 제도를 통하여 유황이 수입되고 있어, 원하는 대로 화약을 제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중국은 이를 이용하여 엄청나게 많은 수의 화기인 총포(銃砲)를 보유하고 대량의 포탄 세례를 퍼붓는 방식으로 적을 제압했다. 그래서 그들 입장에서는 화차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반면 조선의 경우는 염초 생산량이 제한되어 있었고, 유황의 수입 경로도 제한적이었다. 많은 수량의 화약을 만들 수 없었고 중국처럼 대량의 화약과 포탄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조선으로서는 대량의 포탄 세례보다는 넓은 범위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화차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조총(鳥銃)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전국시대 시기(1460년대~1600년대) 이 무기가 제일 효과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일본의 군대는 평야지역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기병과 보병으로 양분되었는데, 이 때 도입된 조총이 집중된 전근대 회전(會戰) 방식에서 큰 효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도 조선처럼 화약이 많이 나는 지역이 아니었다. 화산이 많아서 화약 재료인 유황은 생산되었지만, 너무 습한 기후 때문에 염초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였다.[8] [9] [10] [11]
화차의 발달 과정
화차의 발달 과정을 보면, 초기에는 수레 위에 여러 개의 총통(銃筒)을 얹는 방식으로 문종(文宗, 1450~1452)이 개발하였다. 이를 사전총통이라 하는데 대부분 화살형 발사체인 세전을 총통 안에 넣고 화약 폭발력으로 발사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50문에 4발씩 세전을 장전하여 발사 할 수 있었으니 약 200발이 동시에 나가는 화력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세전 발사체뿐만 아니라 중형 신기전(神機箭)을 탑재하여 발사하는 방식의 화차도 있었다. 이후 화차는 세전이나 신기전 발사 방식에서 벗어나 승자총통 40문을 화차에 탑재하고 발사체도 탄환으로 바꾸는 형태가 된다. 바로 이 화차가 임진왜란 시기에 나온 망암화차(望菴火車) 이다.[12]
화포식언해의 장점
『화포식언해』는 화약무기 전문서적으로서, 화기 운용의 대상을 군관에만 한정한 것이 아니라, 일반 병사까지도 습득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물론 중국에서도 화기 사용법에 대한 설명서인 『무비지』가 있으나, 당시 일반 사람들이 구입하기도 어려웠고, 일반 병사들은 문맹률이 높아서 습득하기도 어려웠다.[13]
지식 관계망
- 화포식언해 지식관계망
관련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화포식언해 | 이서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화포식언해 | 화약병기 용약법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화포식언해 | 화약병기 발사체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화포식언해 | 신전자취염초방언해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화포식언해 | 최명길 발문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화포식언해 | 신전자초방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화포식언해 | 매화법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화포식언해 | 무비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화포식언해 | 중신기화차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화포식언해 | 신기전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화포식언해 | 총통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화포식언해 | 화차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총통 | 승자총통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화차 | 중신기화차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화차 | 사전총통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화차 | 망암화차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사전총통 | 세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화포식언해 | 황해 병영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화포식언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화포식언해 | 서강대학교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화포식언해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화포식언해 | 국립중앙도서관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635년 | 이서가 화포식언해를 저술하였다 |
1685년 | 화포식언해는 황해 병영에 소장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197 | 127.054387 | 화포식언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었다 |
37.551388 | 126.940731 | 화포식언해은 서강대학교에 소장되었다 |
35.857418 | 128.485539 | 화포식언해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었다. |
37.497757 | 127.003681 | 화포식언해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98쪽.
- ↑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8쪽.
- ↑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 ↑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 ↑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 ↑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99쪽.
- ↑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100쪽.
- ↑ 王兆春, 『中國火器史』, 軍事科學出版社, 1991.
- ↑ 이창섭, 「明朝 硫黃의 관리와 需給體系의 변화」,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 ↑ 정지연, 「朝鮮前期 對日 私貿易 硏究-太祖~成宗代를 中心으로」, 『한일관계사연구』, Vol 24, 2006, 27~68쪽.
- ↑ 김병륜, 「망함 火車의 구조적 특성과 실효성」, 『孔子學』, Vol 21, 2011, 65~105쪽.
- ↑ 김병륜, 「망함 火車의 구조적 특성과 실효성」, 『孔子學』, Vol 21, 2011, 69~77쪽.
- ↑ 王兆春, 『中國火器史』, 軍事科學出版社, 1991, 1~34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王兆春, 『中國火器史』, 軍事科學出版社, 1991.
- 논문
- 이창섭, 「明朝 硫黃의 관리와 需給體系의 변화」,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 김병륜, 「망함 火車의 구조적 특성과 실효성」, 『孔子學』, Vol 21, 2011, 65~105쪽.
- 이진호, 「17~18세기 《병서》 언해 연구」, 계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9, 총 571쪽.
- 정지연, 「朝鮮前期 對日 私貿易 硏究-太祖~成宗代를 中心으로」, 『한일관계사연구』, Vol 24, 2006, 27~68쪽.
- 許善道, 「朝鮮中期 火器의 發達-상-」, 『歷史學報』, 30, 1966, 47~107쪽.
- 許善道, 「朝鮮中期 火器의 發達-하-」, 『歷史學報』, 31, 1966, 67~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