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역서화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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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書畫家)의 사적과 평전을 수록한 사서(辭書). | + |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書畫家)의 사적과 평전을 수록한 사서(辭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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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기는 A5판, 수량은 324면이다. 1917년 [[오세창|오세창(吳世昌)]]이 편집하여, 1928년 [[계명구락부|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서 출판하였다. 기록에 나타난 역대 서화가를 신라, 고려, 조선의 상·중·하 5편으로 나누고, 이를 출생연도순으로 배열하였다. 서술방법은 성명에 이어 자·호·본관·가세(家世)·출생연도·수학(受學)·관직·사망연도 등의 대강을 소개한 다음, 그의 예술에 대한 기록과 논평을 싣고 그 서목을 밝혔으며, 유전되는 작품의 명칭과 소재를 적었다. 비록 그 예술성은 뛰어나지 못하더라도 기록에 보이는 자는 모두 수록하였으며, 혹 성명은 전하지만 연대를 알 수 없거나 자 또는 호만 전하는 자도 ‘대고록(待考錄)’이라 하여 | + | 크기는 A5판, 수량은 324면이다. 1917년 [[오세창|오세창(吳世昌)]]이 편집하여, 1928년 [[계명구락부|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서 출판하였다. 기록에 나타난 역대 서화가를 신라, 고려, 조선의 상·중·하 5편으로 나누고, 이를 출생연도순으로 배열하였다. 서술방법은 성명에 이어 자·호·본관·가세(家世)·출생연도·수학(受學)·관직·사망연도 등의 대강을 소개한 다음, 그의 예술에 대한 기록과 논평을 싣고 그 서목을 밝혔으며, 유전되는 작품의 명칭과 소재를 적었다. 비록 그 예술성은 뛰어나지 못하더라도 기록에 보이는 자는 모두 수록하였으며, 혹 성명은 전하지만 연대를 알 수 없거나 자 또는 호만 전하는 자도 ‘대고록(待考錄)’이라 하여 혹시라도 후에 알게 될 때를 위하여 부기(附記)하였다. 또한 1917년 탈고한 뒤 1928년 간행되기까지 수집된 서화가는 ‘증록(增錄)’으로 덧붙였다. 열람에 편리하도록 성명과 호의 색인을 마련하였다. 권두에는 채용서목과 인명목록을 실었다. 채용한 서목은 270종으로 이밖에 읍지·족보·비명·서화제발(書畫題跋)이 있으며, 수록된 인명수는 1,117인이다.<ref>김응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7436 근역서화징]",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근역서화징]]의 의의=== | ===[[근역서화징]]의 의의=== | ||
− | 이와 같이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서화가들에 대한 편자의 품평을 | + | 이와 같이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서화가들에 대한 편자의 품평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오세창]]의 업적은 높게 평가된다. 또한, [[오세창]]은 서화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오경석|경석(慶錫)]]으로부터 가업이라 할만큼 이 방면의 연구에 대하여 물려받은 바 많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높다. 이 책은 우리나라 역대의 서화가를 평가하는 가장 권위 있는 문헌으로 한국서화가연구의 기본서가 되었으며, 광복 이후 출간된 『[[한국서화인명사전]]』 등은 모두 『[[근역서화징]]』을 인용하게 되었다.<ref>김응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7436 근역서화징]",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지식 관계망'''== | =='''지식 관계망'''== |
2018년 1월 4일 (목) 15:13 판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 |
대표명칭 | 근역서화징 |
---|---|
한자표기 | 槿域書畵徵 |
이칭 | 근역서화서 |
유형 | 문헌 |
저자 | 오세창 |
편자 | 오세창 |
저술시기 | 1917년 |
간행시기 | 1928년 |
간행처 | 계명구락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수량 | 1책 324면 |
목차
정의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書畫家)의 사적과 평전을 수록한 사서(辭書)이다.
내용
근역서화징의 구성과 내용
크기는 A5판, 수량은 324면이다. 1917년 오세창(吳世昌)이 편집하여, 1928년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에서 출판하였다. 기록에 나타난 역대 서화가를 신라, 고려, 조선의 상·중·하 5편으로 나누고, 이를 출생연도순으로 배열하였다. 서술방법은 성명에 이어 자·호·본관·가세(家世)·출생연도·수학(受學)·관직·사망연도 등의 대강을 소개한 다음, 그의 예술에 대한 기록과 논평을 싣고 그 서목을 밝혔으며, 유전되는 작품의 명칭과 소재를 적었다. 비록 그 예술성은 뛰어나지 못하더라도 기록에 보이는 자는 모두 수록하였으며, 혹 성명은 전하지만 연대를 알 수 없거나 자 또는 호만 전하는 자도 ‘대고록(待考錄)’이라 하여 혹시라도 후에 알게 될 때를 위하여 부기(附記)하였다. 또한 1917년 탈고한 뒤 1928년 간행되기까지 수집된 서화가는 ‘증록(增錄)’으로 덧붙였다. 열람에 편리하도록 성명과 호의 색인을 마련하였다. 권두에는 채용서목과 인명목록을 실었다. 채용한 서목은 270종으로 이밖에 읍지·족보·비명·서화제발(書畫題跋)이 있으며, 수록된 인명수는 1,117인이다.[1]
근역서화징의 의의
이와 같이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서화가들에 대한 편자의 품평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오세창의 업적은 높게 평가된다. 또한, 오세창은 서화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경석(慶錫)으로부터 가업이라 할만큼 이 방면의 연구에 대하여 물려받은 바 많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높다. 이 책은 우리나라 역대의 서화가를 평가하는 가장 권위 있는 문헌으로 한국서화가연구의 기본서가 되었으며, 광복 이후 출간된 『한국서화인명사전』 등은 모두 『근역서화징』을 인용하게 되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근역서화징 | 오세창 |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오경석 | 오세창 | A는 B의 아버지이다 | A ekc:hasSon B |
근역서화징 | 계명구락부 | A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 A dcterms:publisher B |
한국서화인명사전 | 근역서화징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영잉군 초상 | 박동보 |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김응서 초상 | 이팔룡 |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917년 | 오세창은 근역서화징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
1928년 | 근역서화징은 계명구락부에서 간행도되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홍선표, 「《근역서화사》의 편찬과 《근역서화징》의 출판」, 『인물미술사학회』 4, 인물미술사학회, 2008, 291-308쪽.
- 웹자원
- 김응현, "근역서화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응현, "근역서화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