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전복"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궁중기록화관 Top icon}} {{복식정보 |이미지= |대표명칭= 전복(戰服) |이칭별칭= - |착용신분= 왕실, 문무백관 |착용성별= 남성 |복식구분=...)
 
잔글 (내용)
 
(사용자 5명의 중간 판 14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궁중기록화관 Top icon}}
 
{{궁중기록화관 Top icon}}
 
{{복식정보
 
{{복식정보
|이미지=  
+
|사진= 궁중기록화 복식 전복02 민속박물관.jpg
|대표명칭= 전복(戰服)
+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이칭별칭= -
+
|대표명칭= 전복
|착용신분= 왕실, 문무백관
+
|한자표기= 戰服
 +
|이칭별칭=  
 +
|구분= 의복
 +
|착용신분= [[왕]], [[왕세자]], [[왕세손]], [[백관]]
 
|착용성별= 남성
 
|착용성별= 남성
|복식구분= 의복
 
|관련복식= [[동다리]], [[전대]], [[두루마기]]
 
|필드수= 7
 
 
}}
 
}}
  
==정의==
+
=='''정의'''==
* 전복은 한자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군관이 착용한 옷 중 협수(狹袖) 위에 덧입었던 소매 없는 옷.<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32쪽.</ref>
+
조선 후기에 왕, 왕세자와 대한제국의 황제, 황태자가 포 위에 덧입은 옷이다.
  
==복식구성==
+
=='''내용'''==
 +
조선 후기에 나타난 반소매 옷인 [[답호]]의 일종으로, 깃과 소매ㆍ섶이 없는 형태가 특징이다. 왕실 남성들과 백관이 착용하였으며 대한제국 시기까지 계속되었다.<ref>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329쪽.</ref> [[전복|전복戰服]]은 한자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과 관련이 있는데,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전후로 [[백관]] 중 무관이 착용한 옷 중 소매가 좁은 협수(狹袖) 위에 덧입었던 소매 없는 옷이다. 왕실 남성들도 군사와 관련한 일이 있거나 능에 행차할 때 [[전복]]을 갖추어 착용하였다. 깃과 소매가 없이 양옆에 무가 달리고 앞길이 대금형(對襟形)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양 옆선 일부와 등솔기의 진동선 이하에 트임이 있어 활동적이다. 조선후기 [[두루마기]], [[도포]] 등 평상시에 착용하는 포(袍) 위에 착용하였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08쪽.</ref> 조선 말기인 1884년(고종 21) [[갑신의제개혁]] 때 사복(私服) 제도를 고쳐 [[도포]], [[직령]], [[창의]], [[중치막]]처럼 소매가 넓은 옷을 폐지하였다. 관리들은 소매가 좁은 [[두루마기]]에 [[전복]]을 입고 [[세조대]]를 띠도록 하여 [[전복]]을 평상복으로 입게 되었다. 그 해 6월에 [[전복]]의 명칭을 [[답호]]로 바꾸었다. 전쟁터에서 입는 옷으로 오해하여 입기를 꺼리는 등 반발이 있자 명칭을 바꾼 것으로, 당시 전복과 답호가 동일한 복식을 지칭하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ref>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26쪽.</ref>
  
==기본정보==
+
=='''지식 관계망'''==
 +
===관계정보===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
!style="width:30%"|항목A!!style="width:30%"|항목B!!style="width:25%"|관계!!style="width:15%"|비고
 +
|-
 +
| [[왕]] || 전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왕세자]] ||  전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백관]] ||  전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
| [[왕의 군복]] || 전복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
 +
| [[왕세자의 군복]]  ||  전복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
 +
| [[백관의 군복]] ||  전복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
 +
|  전복 || [[도포]] || A는 B와 함께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
 +
|  전복 || [[동다리]] || A는 B와 함께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
  
===착용신분===
+
===시간정보===
* [[황제]], [[황태자]]. [[왕]], [[왕세자]]
 
* [[문무백관]]
 
  
===착용상황===
+
===공간정보===
* 군복으로 착용
 
* 편복 위에 착용
 
  
===형태===
+
=='''시각자료'''==
* 포류 위에 깃과 소매가 없이 양옆에 무가 달리고 앞길이 대금형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또한 양 옆선 일부와 등솔기의 진동선 이하에 트임을 준 활동적인 옷이다.
+
===갤러리===
 +
<gallery mode=packed-hover heights=250px>
 +
파일: 김병기(1818~1875) 전복.JPG | .<ref>문화재청,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35쪽.</ref>
 +
파일:철종 어진.jpg|철종 왕의 군복 착용 어진.<ref>국립고궁박물관(http://www.gogung.go.kr/) 소장.</ref>
 +
파일:정원용(1783~1873)의 동다리와 전복.JPG | 정원용(1783~1873)의 동다리와 전복.<ref>문화재청,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40쪽.</ref>
 +
</gallery>
  
===기타===
+
===영상===
* 『인조장렬왕후가례도감의궤』에 왕비의 노의와 금원문의 형태가 그려져 있고 청연군주의 금원문이 찍혀있는 노의 유물이 출토되어 그 형태와 옷의 문양을 파악할 수 있음.
 
* 역대 『가례도감의궤』에 따르면 왕비는 흉배금원문노의(胸背金圓紋露衣), 왕세자빈은 금원문노의(金圓紋露衣)라 기록되어 있어 노의에 금으로 된 원무늬가 들어감을 알 수 있고 왕비 노의에는 흉배가 달리는 것을 알 수 있음.<ref>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189쪽.</ref>
 
*『계사시월가례시의복발긔』에 군부인의 '다홍별문단부금원앙노의'라는 기록을 토대로 청연군주 노의에 찍혀 있는 금원문이 원앙임을 알 수 있음.
 
* 왕실 여성 노의의 색은 모두 홍색.
 
  
==관련항목==
+
=='''주석'''==
 +
<references/>
  
 
+
=='''참고문헌'''==
==참고문헌==
+
===인용 및 참조===
* 김아람, 「복식 고증을 통한 복온공주 혼례 친영반차도 구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 권오선, 「조선후기 동다리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
* 金正子, 「韓國軍服의 變遷硏究」, 『대한가정학회지』 제24권 4호, 대한가정학회, 1986.
==주석==
+
* 金賢舜, 「軍服에 對한 硏究 -具軍服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0.
 +
* 문광희, 「조선 후기 甲胄 및 具軍服에 관한 연구-부산 忠烈祠 소장 유물을 중심으로-」, 『한복문화』 제7권 1호, 한복문화학회, 2004.
 +
*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
* 박성실, 김향미, 「조선시대 기능적 馬上衣類의 실증적 고찰」, 『韓國服飾』 20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2.
 +
* 李成熙, 「軍服飾의 記號學的 分析-舊韓末 期陸軍服을 中心으로-」, 상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분류:궁중기록화]]
 
[[분류:궁중기록화]]
 
[[분류:복식]]
 
[[분류:복식]]

2017년 12월 18일 (월) 20:59 기준 최신판


전복
(戰服)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대표명칭 전복
한자표기 戰服
구분 의복
착용신분 , 왕세자, 왕세손, 백관
착용성별 남성



정의

조선 후기에 왕, 왕세자와 대한제국의 황제, 황태자가 포 위에 덧입은 옷이다.

내용

조선 후기에 나타난 반소매 옷인 답호의 일종으로, 깃과 소매ㆍ섶이 없는 형태가 특징이다. 왕실 남성들과 백관이 착용하였으며 대한제국 시기까지 계속되었다.[1] 전복戰服은 한자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과 관련이 있는데,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전후로 백관 중 무관이 착용한 옷 중 소매가 좁은 협수(狹袖) 위에 덧입었던 소매 없는 옷이다. 왕실 남성들도 군사와 관련한 일이 있거나 능에 행차할 때 전복을 갖추어 착용하였다. 깃과 소매가 없이 양옆에 무가 달리고 앞길이 대금형(對襟形)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양 옆선 일부와 등솔기의 진동선 이하에 트임이 있어 활동적이다. 조선후기 두루마기, 도포 등 평상시에 착용하는 포(袍) 위에 착용하였다.[2] 조선 말기인 1884년(고종 21) 갑신의제개혁 때 사복(私服) 제도를 고쳐 도포, 직령, 창의, 중치막처럼 소매가 넓은 옷을 폐지하였다. 관리들은 소매가 좁은 두루마기전복을 입고 세조대를 띠도록 하여 전복을 평상복으로 입게 되었다. 그 해 6월에 전복의 명칭을 답호로 바꾸었다. 전쟁터에서 입는 옷으로 오해하여 입기를 꺼리는 등 반발이 있자 명칭을 바꾼 것으로, 당시 전복과 답호가 동일한 복식을 지칭하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전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세자 전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백관 전복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의 군복 전복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왕세자의 군복 전복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군복 전복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전복 도포 A는 B와 함께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전복 동다리 A는 B와 함께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329쪽.
  2.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08쪽.
  3.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26쪽.
  4. 문화재청,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35쪽.
  5. 국립고궁박물관(http://www.gogung.go.kr/) 소장.
  6. 문화재청, 문화재대관-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40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권오선, 「조선후기 동다리에 관한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 金正子, 「韓國軍服의 變遷硏究」, 『대한가정학회지』 제24권 4호, 대한가정학회, 1986.
  • 金賢舜, 「軍服에 對한 硏究 -具軍服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0.
  • 문광희, 「조선 후기 甲胄 및 具軍服에 관한 연구-부산 忠烈祠 소장 유물을 중심으로-」, 『한복문화』 제7권 1호, 한복문화학회, 2004.
  • 박가영, 「조선시대의 갑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 박성실, 김향미, 「조선시대 기능적 馬上衣類의 실증적 고찰」, 『韓國服飾』 20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2.
  • 李成熙, 「軍服飾의 記號學的 分析-舊韓末 期陸軍服을 中心으로-」, 상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