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복 하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잔글 (→내용) |
|||
(다른 사용자 한 명의 중간 판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 |||
2번째 줄: | 2번째 줄: | ||
{{복식정보 | {{복식정보 | ||
|사진= 궁중기록화 복식 의복 면복하상03 김아람.png | |사진= 궁중기록화 복식 의복 면복하상03 김아람.png | ||
− | |사진출처= | + | |사진출처= |
|대표명칭= 면복 하상 | |대표명칭= 면복 하상 | ||
|한자표기= 冕服 下裳 | |한자표기= 冕服 下裳 | ||
15번째 줄: | 15번째 줄: | ||
=='''내용'''== | =='''내용'''== | ||
− | 조선시대에는 1402년(조선 태종 2년, 명나라 영락 원년)에 건문제(建文帝)로부터 사여받은 [[9장문]]이 그려진 [[왕의 대례복|면복(冕服)]]을 기본 규정으로 국가의 [[길례]], [[가례]], [[흉례]] 등의 의례에 착용하는 복식이다. 즉위 시에는 물론 [[종묘]]와 [[사직단|사직]]에 제사 지낼 때, 설날이나 동지 등의 하례식이나 절일(節日), 망궐례(望闕禮), [[가례]]의 일부 의식 등에서 착용했다. [[흉례]]에서는 [[대렴]]을 행할 때 | + | 조선시대에는 1402년(조선 태종 2년, 명나라 영락 원년)에 건문제(建文帝)로부터 사여받은 [[9장문]]이 그려진 [[왕의 대례복|면복(冕服)]]을 기본 규정으로 국가의 [[길례]], [[가례]], [[흉례]] 등의 의례에 착용하는 복식이다. 즉위 시에는 물론 [[종묘]]와 [[사직단|사직]]에 제사 지낼 때, 설날이나 동지 등의 하례식이나 절일(節日), 망궐례(望闕禮), [[가례]]의 일부 의식 등에서 착용했다. [[흉례]]에서는 [[대렴]]을 행할 때 입혀졌다. [[면복 하상]]은 앞에 두르는 전상(前裳)이 3폭, 뒤에 두르는 후상(後裳)이 4폭으로 합계 7폭이다. 전후 총 7폭으로 [[면복 하상]]을 만들면 폭이 지나치게 넓어 허리에 두를 수 없기 때문에 착용자의 몸에 맞게 허리 부분에 주름을 많이 잡아야 한다. 처음에는 전상과 후상이 완전히 분리되어 각각 허리말기를 달아 따로 입었다. 나중에는 전상과 후상을 따로 만들되 하나의 허리말기에 붙여 간편하게 입기도 하였다. 더 후대로 오면 하상은 전상과 후상의 폭이 완전히 연결되어 휘장처럼 변하였다. [[면복 상의]]는 양(陽)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림[畵]을 그리고, [[면복 하상]]은 음(陰)을 상징하기 때문에 수(繡)를 놓았다. [[왕]]과 [[왕세자]]는 전상의 첫번째 폭과 세번째 폭에 4개의 무늬를 수 놓았다.<ref>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45쪽.</ref> |
'''무늬''' | '''무늬''' | ||
74번째 줄: | 74번째 줄: | ||
===인용 및 참조=== | ===인용 및 참조=== | ||
* 고광림, 『한국의 관복』, 화성사, 1995. | * 고광림, 『한국의 관복』, 화성사, 1995. | ||
+ | *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
* 金明淑,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國葬都監儀軌 服玩圖說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 金明淑,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國葬都監儀軌 服玩圖說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
− | * 金明淑,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 + | * 金明淑,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服飾』 18권, 한국복식학회, 1992. |
− | * 金明淑, 「朝鮮後期 冕服의 變遷-國葬都監儀軌 服玩圖設을 통한 考察-」, | + | * 金明淑, 「朝鮮後期 冕服의 變遷-國葬都監儀軌 服玩圖設을 통한 考察-」, 『服飾』 7권, 한국복식학회, 1983. |
* 金明淑, 「한국과 중국의 袞冕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 金明淑, 「한국과 중국의 袞冕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
* 유희경, 「冕服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2. | * 유희경, 「冕服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2. | ||
− |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 + |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
* 이은진, 조효진, 「조선말기 왕실복식 소재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 11권 3호, 한복문화학회, 2008. | * 이은진, 조효진, 「조선말기 왕실복식 소재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 11권 3호, 한복문화학회, 2008. | ||
* 이혜경,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복문화』 4권 4호, 한복문화학회, 2001 | * 이혜경,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복문화』 4권 4호, 한복문화학회, 2001 | ||
− | * 인윤실, 「조선왕조시대 금박에 관한 연구」, | + | * 인윤실, 「조선왕조시대 금박에 관한 연구」, 『服飾』 2권, 한국복식학회, 1978. |
* 전혜숙,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의의를 중심으로」, 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 전혜숙,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의의를 중심으로」, 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
− |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
− | |||
− | |||
[[분류:궁중기록화]] | [[분류:궁중기록화]] | ||
[[분류:복식]] | [[분류:복식]] |
2017년 12월 18일 (월) 00:55 기준 최신판
면복 하상 (冕服 下裳) |
|
대표명칭 | 면복 하상 |
---|---|
한자표기 | 冕服 下裳 |
착용신분 | 왕실 |
착용성별 | 남성 |
정의
왕과 왕세자, 왕세손, 대한제국 황제와 황태자가 가례, 제례 등의 국가 의례를 행할 때 하체에 입는 옷이다.[1]
내용
조선시대에는 1402년(조선 태종 2년, 명나라 영락 원년)에 건문제(建文帝)로부터 사여받은 9장문이 그려진 면복(冕服)을 기본 규정으로 국가의 길례, 가례, 흉례 등의 의례에 착용하는 복식이다. 즉위 시에는 물론 종묘와 사직에 제사 지낼 때, 설날이나 동지 등의 하례식이나 절일(節日), 망궐례(望闕禮), 가례의 일부 의식 등에서 착용했다. 흉례에서는 대렴을 행할 때 입혀졌다. 면복 하상은 앞에 두르는 전상(前裳)이 3폭, 뒤에 두르는 후상(後裳)이 4폭으로 합계 7폭이다. 전후 총 7폭으로 면복 하상을 만들면 폭이 지나치게 넓어 허리에 두를 수 없기 때문에 착용자의 몸에 맞게 허리 부분에 주름을 많이 잡아야 한다. 처음에는 전상과 후상이 완전히 분리되어 각각 허리말기를 달아 따로 입었다. 나중에는 전상과 후상을 따로 만들되 하나의 허리말기에 붙여 간편하게 입기도 하였다. 더 후대로 오면 하상은 전상과 후상의 폭이 완전히 연결되어 휘장처럼 변하였다. 면복 상의는 양(陽)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림[畵]을 그리고, 면복 하상은 음(陰)을 상징하기 때문에 수(繡)를 놓았다. 왕과 왕세자는 전상의 첫번째 폭과 세번째 폭에 4개의 무늬를 수 놓았다.[2]
무늬
- 황제: 종이(宗彝), 조(藻), 분미(粉米), 보(黼), 불(黻)을 수 놓음.
- 왕: 조(藻), 분미(粉米), 보(黼), 불(黻)을 수 놓음.
- 왕세자: 조(藻), 분미(粉米), 보(黼), 불(黻)을 수 놓음.
- 왕세손: 보(黼), 불(黻)을 수 놓음.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황제 | 면복 하상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태자 | 면복 하상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 | 면복 하상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 | 면복 하상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 | 면복 하상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제의 대례복 | 면복 하상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황태자의 대례복 | 면복 하상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의 대례복 | 면복 하상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자의 대례복 | 면복 하상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왕세손의 대례복 | 면복 하상 | A는 B의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면복 하상 | 의궤 |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 A ekc:mentions B |
면복 하상 | 상의원 | A는 B에서 제작되였다 | A dcterms:creator B |
면복 하상 | 면복각 | A는 B에 보관되었다 | A edm:formerLocation B |
면복 하상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고광림, 『한국의 관복』, 화성사, 1995.
-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1.
- 金明淑, 「朝鮮時代 冕服의 考察-國葬都監儀軌 服玩圖說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金明淑, 「朝鮮時代 王世子 冕服」, 『服飾』 18권, 한국복식학회, 1992.
- 金明淑, 「朝鮮後期 冕服의 變遷-國葬都監儀軌 服玩圖設을 통한 考察-」, 『服飾』 7권, 한국복식학회, 1983.
- 金明淑, 「한국과 중국의 袞冕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유희경, 「冕服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72.
- 이민주,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 이은진, 조효진, 「조선말기 왕실복식 소재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 11권 3호, 한복문화학회, 2008.
- 이혜경,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복문화』 4권 4호, 한복문화학회, 2001
- 인윤실, 「조선왕조시대 금박에 관한 연구」, 『服飾』 2권, 한국복식학회, 1978.
- 전혜숙, 「면복의 십이장문에 관한 연구-상징의의를 중심으로」, 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