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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1795년 [[혜경궁 홍씨]]의 주갑을 경축하기 위하여 [[조선 정조]]가 지은 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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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혜경궁 홍씨]]의 주갑을 경축하기 위하여 [[조선 정조 | 정조]]가 지은 악장이다.
  
 
==내용==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1795년 [[혜경궁 홍씨]]의 주갑(환갑, 회갑)을 경축하기 위하여 [[조선 정조]]가 지은 악장이다. [[조선 정조]]는 [[혜경궁 홍씨]]를 위하여 [[화성행궁 봉수당]]과 [[창경궁 명정전]]에서 두 차례 연회를 베풀고, 각 연회를 위하여 『[[자궁임화성행궁진찬악장|자궁임화성행궁진찬악장(慈宮臨華城行宮進饌樂章)]]』과 『[[자궁주갑진찬악장|자궁주갑진찬악장(慈宮周甲進饌樂章)]]』을 지었다. 그리고 그 한문본과 한글본을 함께 엮어서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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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갑은 환갑, 회갑을 말한다. [[조선 정조 | 정조]]는 [[혜경궁 홍씨]]를 위하여 [[화성행궁 봉수당]]과 [[창경궁 명정전]]에서 두 차례 연회를 베풀고, 각 연회를 위하여 『[[자궁임화성행궁진찬악장|자궁임화성행궁진찬악장(慈宮臨華城行宮進饌樂章)]]』과 『[[자궁주갑진찬악장|자궁주갑진찬악장(慈宮周甲進饌樂章)]]』을 지었다. 그리고 그 한문본과 한글본을 함께 엮어서 간행하였다.
『[[자궁임화성행궁진찬악장]]』은 [[화성행궁 봉수당]] 연회에서 불렀다. 이 악장은 한나라 태후의 처소인 [[장락궁]]의 이름을 따서 [[화성행궁]]의 혜경궁 침전을 ‘장락당’이라 부르며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장락장(長樂章), 새로 건설한 화성을 바라보며 태평치세의 덕업과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관화장(觀華章) 등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궁주갑진찬악장 은 [[창경궁 명정전]] 연회에서 불렀다. 이 악장은 노부모를 위해 색동옷을 입었던 노래자(老萊子)의 마음을 담아 장수를 축원하는 노래의(老萊衣), 자궁의 덕으로 태평성대와 자손번성을 축원하는 만년장(萬年章) 등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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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임화성행궁진찬악장]]』은 [[화성행궁 봉수당]] 연회에서 불렀다. 이 악장은 한나라 태후의 처소인 [[장락궁]]의 이름을 따서 [[화성행궁]]의 혜경궁 침전을 '장락당'이라 부르며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장락장(長樂章), 새로 건설한 화성을 바라보며 태평치세의 덕업과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관화장(觀華章) 등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궁주갑진찬악장』은 [[창경궁 명정전]] 연회에서 불렀다. 이 악장은 노부모를 위해 색동옷을 입었던 노래자(老萊子)의 마음을 담아 장수를 축원하는 노래의(老萊衣), 자궁의 덕으로 태평성대와 자손번성을 축원하는 만년장(萬年章) 등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악장의 판본은 [[정유자|정유자(丁酉字)]]와 [[정리자|정리자(整理字)]] 두 종류가 전해지는데, 정유자본이 훨씬 크고 지질도 우수하다. 또 정유자본은 한자와 한글을 함께 병기한 반면, 정리자본은 한자와 한글을 따로 분리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정리자본은 정유자본을 바탕으로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한 분상용으로 별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장서각 소장 자료는 정리자 한글활자로 인출한 것이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2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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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악장의 판본은 [[정유자|정유자(丁酉字)]]와 [[정리자|정리자(整理字)]] 두 종류가 전해지는데, 정유자본이 훨씬 크고 지질도 우수하다. 또 정유자본은 한자와 한글을 함께 병기한 반면, 정리자본은 한자와 한글을 따로 분리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정리자본은 정유자본을 바탕으로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한 분상용으로 별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장서각 소장 자료는 정리자 한글활자로 인출한 것이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2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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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음악===
 
===정조와 음악===
 
예(禮)와 악(樂)의 균형은 조선의 역대 왕들이 추구한 정치이념이었다. [[조선 정조|정조]]는 "예와 악이 무너져 근본을 잃은" 당시의 현실을 감지하고 집권 초반부터 악(樂)의 정비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예(禮)와 악(樂)의 균형은 조선의 역대 왕들이 추구한 정치이념이었다. [[조선 정조|정조]]는 "예와 악이 무너져 근본을 잃은" 당시의 현실을 감지하고 집권 초반부터 악(樂)의 정비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ref>송지원, 「정조의 음악정책」, 『민족문화』23, 한국고전번역원, 2000, 117-118쪽.</ref>
 
<ref>송지원, 「정조의 음악정책」, 『민족문화』23, 한국고전번역원, 2000, 117-118쪽.</ref>
[[조선 정조|정조]]는 [[서명응]]을 비롯한 신하들에게 『[[국조시악|국조시악(國朝詩樂)]]』, 『[[시악화성|시악화성(詩樂和聲]])』, 『[[원음약|원음약(元音鑰)]]』등의 악서를 편찬하고, 제례악과 관련하여『[[경모궁의궤|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景慕宮樂器造成廳儀軌)]]』, 『[[사직서의궤|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정조병오소회등록|정조병오소회등록(正祖丙午所懷謄錄)]]』, 『[[원행을묘정리의궤|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춘관통고|춘관통고(春官通考)]]』등을 편찬해 조선 후기 음악 문화를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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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정조]]는 [[서명응]]을 비롯한 신하들에게 명하여 『[[국조시악|국조시악(國朝詩樂)]]』, 『[[시악화성|시악화성(詩樂和聲]])』, 『[[원음약|원음약(元音鑰)]]』등의 악서를 편찬하고, 제례악과 관련하여『[[경모궁의궤|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景慕宮樂器造成廳儀軌)]]』, 『[[사직서의궤|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정조병오소회등록|정조병오소회등록(正祖丙午所懷謄錄)]]』, 『[[원행을묘정리의궤|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춘관통고|춘관통고(春官通考)]]』등을 편찬해 조선 후기 음악 문화를 꽃피웠다.
 
<ref>강민영, 「奉壽堂 進饌과 洛南軒 養老宴의 音樂的 考察 : 園幸乙卯整理儀軌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2쪽.</ref>
 
<ref>강민영, 「奉壽堂 進饌과 洛南軒 養老宴의 音樂的 考察 : 園幸乙卯整理儀軌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2쪽.</ref>
[[어제악장]]이와 같은 정조의 음악에 대한 관심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 대한 효심이 만나 창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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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악장]]』도 이와 같은 정조의 음악에 대한 관심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 대한 효심이 만나 창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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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 회갑연]]===
 
===[[혜경궁 홍씨 회갑연]]===
1795년에 [[조선 정조|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맞이하여 행한 여러 행사 중에 중심이 되었던 것은 [[화성행궁 봉수당|봉수당]]에서 행한 진찬과 낙남헌에서 행한 양로연(養老宴)이다. 이는 조선시대 처음 있던 자궁(慈宮:조선 시대 임금의 후궁 또는 왕세자빈(王世子嬪)이 출생한 아들이 왕위에 오른 경우, 그 임금의 생모를 임금이나 신료들이 지칭하는 용어)의 회갑 행사였다. 게다가 행사가 궁궐 밖의 화성에서 행해졌다는 것과 혜경궁 홍씨가 왕비의 신분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ref>강민영, 「奉壽堂 進饌과 洛南軒 養老宴의 音樂的 考察 : 園幸乙卯整理儀軌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11-12쪽.</ref> 우선 내연과 외연의 구별이 없이 한 차례로 행해졌다. 그리고 편종, 편경 등의 아악기과 가야금, 거문고 등의 현악기가 사용되지 않았다.<ref>강민영, 「奉壽堂 進饌과 洛南軒 養老宴의 音樂的 考察 : 園幸乙卯整理儀軌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39-43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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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에 [[조선 정조|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맞이하여 행한 여러 행사 중에 중심이 되었던 것은 [[화성행궁 봉수당|봉수당]]에서 행한 진찬과 낙남헌에서 행한 양로연(養老宴)이다. 이는 조선시대 처음 있던 자궁(慈宮:조선 시대 임금의 후궁 또는 왕세자빈(王世子嬪)이 출생한 아들이 왕위에 오른 경우, 그 임금의 생모를 임금이나 신료들이 지칭하는 용어)의 회갑 행사였다. 게다가 행사가 궁궐 밖의 화성에서 행해졌다는 것과 혜경궁 홍씨가 왕비의 신분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ref>강민영, 「奉壽堂 進饌과 洛南軒 養老宴의 音樂的 考察 : 園幸乙卯整理儀軌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11-12쪽.</ref> 우선 내연과 외연의 구별이 없이 한 차례로 행해졌다. 그리고 편종, 편경 등의 아악기와 가야금, 거문고 등의 현악기가 사용되지 않았다.<ref>강민영, 「奉壽堂 進饌과 洛南軒 養老宴의 音樂的 考察 : 園幸乙卯整理儀軌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39-43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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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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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기, "[http://kyujanggak.snu.ac.kr/home/index.do?idx=06&siteCd=KYU&topMenuId=206&targetId=379&gotourl=http://kyujanggak.snu.ac.kr/home/HEJ/HEJ_LANGVIEW.jsp?setid=2327438^pos=0^type=HEJ^ptype=list^subtype=am^lclass=al^ntype=al^cn=GK01474_00 어제자궁림화성행궁진찬악장(御製慈宮臨華城行宮進饌樂章))]", <html><online style="color:purple">『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sup>online</sup></online></html>,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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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엽, "[http://kyujanggak.snu.ac.kr/home/index.do?idx=06&siteCd=KYU&topMenuId=206&targetId=379&gotourl=http://kyujanggak.snu.ac.kr/home/MOK/CONVIEW.jsp?type=HEJ^ptype=list^subtype=am^lclass=al^mclass=^sclass=^ntype=mh^cn=GK07084_00 어제자궁림화성행궁진찬시악장(御製慈宮臨華城行宮進饌時樂章)]", 원문자료 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sup>online</sup></online></html>,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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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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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2일 (화) 21:20 기준 최신판

어제악장
한글팀 어제악장01 어제악장01.jpg
한자명칭 御製樂章
영문명칭 A music piece to celebrate Hyegyeonggung Hong's 60th birthday
작자 미상
간행시기 1795년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4-6775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31.0×19.0cm
판본 목활자본(정리자 한글활자)
수량 1책
표기문자 한글


정의

1795년 혜경궁 홍씨의 주갑을 경축하기 위하여 정조가 지은 악장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주갑은 환갑, 회갑을 말한다. 정조혜경궁 홍씨를 위하여 화성행궁 봉수당창경궁 명정전에서 두 차례 연회를 베풀고, 각 연회를 위하여 『자궁임화성행궁진찬악장(慈宮臨華城行宮進饌樂章)』과 『자궁주갑진찬악장(慈宮周甲進饌樂章)』을 지었다. 그리고 그 한문본과 한글본을 함께 엮어서 간행하였다. 『자궁임화성행궁진찬악장』은 화성행궁 봉수당 연회에서 불렀다. 이 악장은 한나라 태후의 처소인 장락궁의 이름을 따서 화성행궁의 혜경궁 침전을 '장락당'이라 부르며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장락장(長樂章), 새로 건설한 화성을 바라보며 태평치세의 덕업과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관화장(觀華章) 등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궁주갑진찬악장』은 창경궁 명정전 연회에서 불렀다. 이 악장은 노부모를 위해 색동옷을 입었던 노래자(老萊子)의 마음을 담아 장수를 축원하는 노래의(老萊衣), 자궁의 덕으로 태평성대와 자손번성을 축원하는 만년장(萬年章) 등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악장의 판본은 정유자(丁酉字)정리자(整理字) 두 종류가 전해지는데, 정유자본이 훨씬 크고 지질도 우수하다. 또 정유자본은 한자와 한글을 함께 병기한 반면, 정리자본은 한자와 한글을 따로 분리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정리자본은 정유자본을 바탕으로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한 분상용으로 별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장서각 소장 자료는 정리자 한글활자로 인출한 것이다. [1]

정조와 음악

예(禮)와 악(樂)의 균형은 조선의 역대 왕들이 추구한 정치이념이었다. 정조는 "예와 악이 무너져 근본을 잃은" 당시의 현실을 감지하고 집권 초반부터 악(樂)의 정비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2] 정조서명응을 비롯한 신하들에게 명하여 『국조시악(國朝詩樂)』, 『시악화성(詩樂和聲)』, 『원음약(元音鑰)』등의 악서를 편찬하고, 제례악과 관련하여『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景慕宮樂器造成廳儀軌)』,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정조병오소회등록(正祖丙午所懷謄錄)』,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춘관통고(春官通考)』등을 편찬해 조선 후기 음악 문화를 꽃피웠다. [3]어제악장』도 이와 같은 정조의 음악에 대한 관심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 대한 효심이 만나 창작된 것이었다.

혜경궁 홍씨 회갑연

1795년에 정조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맞이하여 행한 여러 행사 중에 중심이 되었던 것은 봉수당에서 행한 진찬과 낙남헌에서 행한 양로연(養老宴)이다. 이는 조선시대 처음 있던 자궁(慈宮:조선 시대 임금의 후궁 또는 왕세자빈(王世子嬪)이 출생한 아들이 왕위에 오른 경우, 그 임금의 생모를 임금이나 신료들이 지칭하는 용어)의 회갑 행사였다. 게다가 행사가 궁궐 밖의 화성에서 행해졌다는 것과 혜경궁 홍씨가 왕비의 신분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여러 특징이 나타난다.[4] 우선 내연과 외연의 구별이 없이 한 차례로 행해졌다. 그리고 편종, 편경 등의 아악기와 가야금, 거문고 등의 현악기가 사용되지 않았다.[5]

지식 관계망

  • 어제악장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혜경궁 홍씨 회갑연 어제악장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자궁임화성행궁진찬악장 어제악장 A는 B에 포함된다 A dcterms:isPartOf B
자궁주갑진찬악장 어제악장 A는 B에 포함된다 A dcterms:isPartOf B
원행을묘정리의궤 어제악장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어제악장 정조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화성행궁 봉수당 자궁임화성행궁진찬악장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화성행궁 봉수당 화성행궁 A는 B에 위치한다 A dcterms:isPartOf B
창경궁 명정전 자궁주갑진찬악장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창경궁 명정전 창경궁 A는 B에 위치한다 A dcterms:isPartOf B
정조 혜경궁 홍씨 A는 어머니 B가 있다 A ekc:hasMother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거행되었다
1795년 정조어제악장을 저술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78740 126.994880 창경궁 명정전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거행되었다
37.281974 127.013000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거행되었다
37.39197 127.054387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어제악장을 소장하였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26쪽.
  2. 송지원, 「정조의 음악정책」, 『민족문화』23, 한국고전번역원, 2000, 117-118쪽.
  3. 강민영, 「奉壽堂 進饌과 洛南軒 養老宴의 音樂的 考察 : 園幸乙卯整理儀軌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2쪽.
  4. 강민영, 「奉壽堂 進饌과 洛南軒 養老宴의 音樂的 考察 : 園幸乙卯整理儀軌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11-12쪽.
  5. 강민영, 「奉壽堂 進饌과 洛南軒 養老宴의 音樂的 考察 : 園幸乙卯整理儀軌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39-43쪽.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